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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五書) 읽기/논어주소(論語注疏)

[논어주소(論語注疏) 팔일(八佾) 3-24] 천장이부자위목탁(天將以夫子爲木鐸): 장차 세상의 목탁이 될 것이다

by मोक्ष 2025.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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儀封人請見, [鄭曰: "儀, 蓋衞邑. 封人, 官名."] 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從者見之. [包曰: "從者, 弟子隨孔子行者, 通使得見."] 出曰: "二三子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孔曰: "語諸弟子言, 何患於夫子聖德之將喪亡邪? 天下之無道已久矣, 極衰必盛."] 天將以夫子爲木鐸." [孔曰: "木鐸, 施政敎時所振也. 言天將命孔子制作法度, 以號令於天下."]

의 땅의(儀) 문지기가(封人) 만나기를 청하면서(請見), [鄭曰: "의는(儀), 아마 위나라 읍이다(蓋衞邑). 봉인은 관직 이름이다(封人, 官名)."] 말하길(曰): "군자가(君子之) 이곳에 이르면(至於斯也), 내가(吾) 일찍이(未嘗) 만나지 못한 적이 없다(不得見也)."라고 했다. 종자가(從者) 그를 만나도록 했다(見之). [包曰: "종자는(從者), 제자 가운데(弟子) 공자의 행실을 따르는 사람인데(隨孔子行者), 통해서(通) 뵙도록 한 것이다(使得見)."] 나와서 말하길(出曰): "제자들은(二三子) 어찌(何) 잃을 것을 걱정하는가(患於喪乎)? 천하에(天下之) 도가 없어진 것이(無道也) 오래되었고(久矣), [孔曰: "제자들에게 말한 것으로(語諸弟子言), 어찌(何) 부자의 성덕을(於夫子聖德之) 잃을까(將喪亡) 걱정하는가(邪)? 천하에(天下之) 도가 없어진 것이(無道) 이미 오래되었고(已久矣), 매우 쇠하면(極衰) 반드시 왕성해질 것이다(必盛)."] 하늘이(天) 장차(將) 부자를(以夫子) 목탁으로 삼을 것이다(爲木鐸)."라고 했다. [孔曰: "목탁은(木鐸), 정교를 펼 때(施政敎時) 흔드는 것이다(所振也). 하늘이(天) 장차(將) 공자에게 명하여(命孔子) 법도를 만들어(制作法度, 以) 천하에 호령하도록(號令於天下) 할 것이라는 말이다(言)."]

【疏】「儀封」至「木鐸」. ○正義曰: 此章明夫子之德, 天將命之使其定禮樂也. 

【疏】의봉에서 목탁까지(「儀封」至「木鐸」).

○正義曰: 이 장은(此章) 부자의 덕이 밝아서(明夫子之德), 하늘이(天) 장차(將) 그에게 명하여(命之) 그 예악을 제정하도록 할 것이다(使其定禮樂也). 

 

「儀封人請見」衞, 國儀邑典封疆之人請告於孔子從者欲見孔子也. 

의봉인청견은(「儀封人請見」), 위나라(衞國) 의읍의(儀邑) 국경을 지키는 사람이(典封疆之人) 종자에게(從者) 공자를 만나고 싶다는 것을(欲見孔子) 공자에게 고해줄 것을(告於孔子) 청한 것이다(也). 

 

「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者, 此所請辭也. 嘗, 曾也. 言往者有德之君子至於我斯地也, 吾嘗得見之, 未曾有不得見者也.

왈 군자지지어사야 오미상부득견야란(「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者), 이것은(此) 요청한 말이다(所請辭也). 상은 일찍이다(嘗, 曾也). 오는 사람 가운데(往者) 덕이 있는 군자가(有德之君子) 나의 이 땅에 이르면(至於我斯地也), 내가(吾) 일찍이 만났고(嘗得見之), 일찍이 만나지 못한 사람이 있지 않다는(未曾有不得見者) 말이다(也).

 

「從者見之」者, 從者, 謂弟子隨孔子行者. 既見其請, 故爲之紹介通使得見也.

종자견지란(「從者見之」者), 종자는(從者), 제자 가운데(弟子) 공자의 행실을 따르는 사람을(隨孔子行者) 말한다(謂). 이미(既) 그 청을 받았고(見其請), 그러므로(故) 그를 위하여(爲之) 소개하고(紹介) 통해서(通) 만나도록 한 것이다(使得見也).

 

「出曰: 二三子何患於喪乎」者, 儀封人請既見夫子, 出門乃語諸弟子曰: "二三子何須憂患於夫子聖德之將喪亡乎?"

출왈 이삼자하환어상자란(「出曰: 二三子何患於喪乎」者), 의 봉인이(儀封人) 공자 만나기를 청하고(請既見夫子), 문을 나와서(出門) 제자들에게 말하길(乃語諸弟子曰): "제자들은(二三子) 어찌(何) 반드시(須) 부자의 성덕이 장차 없어질 것을(於夫子聖德之將喪亡) 걱정하는가(憂患乎?")라고 했다.

 

「天下之無道也久矣」者, 此封人又說孔子聖德不喪之由也. 言事不常一, 盛必有衰, 衰極必盛. 今天下之衰亂無道亦已久矣, 言拯弱興衰屬在夫子.

천하지무도야구의란(「天下之無道也久矣」者), 이 문지기가(此封人) 또(又) 공자의 성덕을(孔子聖德) 잃지 않을 까닭을(不喪之由) 설명한 것이다(也). 일은(事) 하나로 일정하지 않고(不常一), 왕성하면(盛) 반드시 쇠퇴함이 있고(必有衰), 쇠퇴함이 지극하면(衰極) 반드시 왕성해진다는 것을(必盛) 말했다(言). 지금(今) 천하가 쇠퇴하고 혼란스럽고(天下之衰亂) 도가 없는 것이(無道) 또한 이미 오래되었으니(亦已久矣), 약한 것을 구하고(拯弱) 쇠퇴한 것을 일으키는 것 따위가(興衰屬) 부자에게 달렸다는(在夫子) 말이다(言).

 

「天將以夫子爲木鐸」者, 木鐸, 金鈴木舌, 施政敎時所振也. 言天將命孔子制作法度, 以號令於天下, 如木鐸以振文敎也.

천장이부자위목탁이란(「天將以夫子爲木鐸」者), 목탁은(木鐸), 쇠 방울과(金鈴) 나무 혀이고(木舌), 정교를 펼 때(施政敎時) 흔드는 것이다(所振也). 하늘이 장차(天將) 공자에게 명해서(命孔子) 법도를 제작하고(制作法度, 以) 천하에 호령하도록 할 것이니(號令於天下), 목탁으로(木鐸以) 문과 가르침을 떨치는 것과 같다고(振文敎) 말한 것이다(也).

 

○注「鄭曰儀蓋」至「官名」. ○正義曰: 云「儀, 蓋衞邑」者, 以《左傳》衞「侯入於夷儀」, 疑與此是一, 故云「蓋衞邑」也.

○주 정왈의개부터 관명까지(注「鄭曰儀蓋」至「官名」).

○正義曰: 의 개위읍이라고 말한 것은(云「儀, 蓋衞邑」者), 춘추좌씨전에(《左傳》) 위나라 제후가 이의에 들어갔다는 것으로(衞侯入於夷儀」), 이것과 같다고 생각했고(疑與此是一), 그러므로(故) 아마도 위나라 읍이다라고 했다(云「蓋衞邑」也).

 

云「封人, 官名」者, 《周禮》: "封人掌爲畿封而樹之." 鄭玄云: "畿上有封, 若今時界也. 天子封人職典封疆, 則知諸侯封人亦然也. 《左傳》言潁谷封人, 祭仲足爲祭封人, 宋高哀爲蕭封人, 此云儀封人, 皆以地名. 封人蓋職典封疆, 居在邊邑, 潁谷·儀·祭皆是國之邊邑也.

봉인 관명이라고 한 것은(云「封人, 官名」者), 주례에(《周禮》): "봉인은(封人) 기내를 봉지로 삼고(爲畿封而) 그곳에 나무를 심는 것을(樹之) 관장한다(掌)."라고 했다.

鄭玄云: "왕기의 위에(畿上) 봉지가 있고(有封), 지금의 경계와 같다(若今時界也)"라고 했다. 천자의 봉인은(天子封人) 봉지의 강역을(封疆) 관장하고(職典, 則) 제후의 봉인도(諸侯封人) 또한 그러한 것을(亦然) 알 수 있다(也). 좌전에서(《左傳》) 응곡봉인이라고 말했고(言潁谷封人), 채중족이(祭仲足) 제의 봉인이 되었다고 했고(爲祭封人), 송나라 고애가(宋高哀) 숙의 봉인이 되었다고 했고(爲蕭封人), 여기서(此) 의봉인을 말했으니(云儀封人), 모두(皆) 지명이다(以地名). 봉인은(封人) 대체로(蓋) 직책이(職) 봉토 강역을 맡고(典封疆), 머무는 것은(居) 변방 읍에 있으니(在邊邑), 능곡과 의, 제가 모두(潁谷·儀·祭皆) 바로(是) 나라의 변방 읍이다(國之邊邑也).

 

○注「包曰」至「得見」. ○正義曰: 云「通使得見」者, 見, 謂爲之紹介, 使之見也. 若《左傳》云「乃見鱄設諸焉」, 「齊豹見宗魯於公孟」亦然.

○주 포오라부터 득견까지(注「包曰」至「得見」).

○正義曰: 통사득견이라고 말한 것은(云「通使得見」者), 견은(見), 그를 위하여 소개하고(爲之紹介), 그로 하여금 뵙도록 한 것을(使之見) 말한다(也). 좌전에서(若《左傳》) 이에 전설제를 뵙도록 했다(「乃見鱄設諸焉」), 제표가(「齊豹) 종로를(宗魯) 공맹에게 뵙도록 했다(見於公孟」)라고 말한 것이(云) 또한 그렇다(亦然).

 

○注「孔曰」至「天下」. ○正義曰: 云「木鐸, 施政敎時所振也」者, 禮有金鐸·木鐸·鐸是鈴也, 其體以金爲之, 明舌有金·木之異, 知木鐸, 是木舌也. 《周禮》敎鼓人「以金鐸通鼓」. 《大司馬》: "敎振旅, 兩司馬執鐸." 《明堂位》云: "振木鐸於朝." 是武事振金鐸, 文事振木鐸. 此云「木鐸, 施政敎時所振」者, 所以振文敎是也. 

○주 공왈부터 천하까지(注「孔曰」至「天下」).

○正義曰: 목탁 시정교시소진야라고 한 것은(云「木鐸, 施政敎時所振也」者), 예에(禮) 금탁과 목탁이 있는데(有金鐸·木鐸) 탁은(鐸) 바로 방울이고(是鈴也), 그 몸체는(其體) 쇠로 만들었고(以金爲之), 혀에는(舌) 나무와 쇠의 다름이 있음을(有金·木之異) 밝혔고(明), 목탁은(木鐸), 바록(是) 나무 혀인 것을(木舌) 알 수 있다(也).

주례에(《周禮》) 북 치는 사람이(鼓人) 금탁으로(「以金鐸) 북 치는 것을(通鼓) 가르친다(敎)」라고 했다.

대사마에(《大司馬》): "떨치는 것을 가르칠 때(敎振旅), 두 사마가(兩司馬) 탁을 잡는다(執鐸)."라고 했다.

명당위에 이르길(《明堂位》云): "조정에서(於朝) 목탁을 흔든다(振木鐸)."라고 했다. 이것은(是) 무의 일에는(武事) 금탁을 흔들고(振金鐸), 문의 일에는(文事) 목탁을 흔드는 것이다(振木鐸). 여기서(此) 목탁 시정교시소진이라고 한 것은(云「木鐸, 施政敎時所振」者), 문의 가르침을 흔드는 까닭이(所以振文敎) 이것이다(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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