或問子産. 子曰: “惠人也.”(혹문자산 자왈 혜인야)
누군가(或) 자산을 물었다(問子産).
선생님이 말씀하시길(子曰): “은혜로운 사람이다(惠人也).”라고 했다.
子産之政, 不專於寬, 然其心則一以愛人爲主. 故孔子以爲惠人, 蓋擧其重而言也.
자산의 정치는(子産之政), 관대함을(於寬) 오로지 하지 않았지만(不專), 그러나(然) 그 마음은(其心則) 한결같이(一) 애인을(以愛人) 위주로 했다(爲主). 그러므로(故) 공자가(孔子) 은혜로운 사람이라고 여겼고(以爲惠人), 대개(蓋) 그 중요한 것을 들어서(擧其重而) 말한 것이다(言也).
問子西. 曰: “彼哉! 彼哉!”(문자서 왈 피재 피재)
자서를 물었다(問子西).
말씀하시길(曰): “저런 사람이(彼哉)! 저런 사람이(彼哉)!”
子西, 楚公子申, 能遜楚國, 立昭王, 而改紀其政, 亦賢大夫也. 然不能革其僭王之號, 昭王欲用孔子, 又沮止之. 其後卒召白公以致禍亂, 則其爲人可知矣. 彼哉者, 外之之辭.
자서는(子西), 초나라 공자 신이고(楚公子申), 초나라를 양보해서(能遜楚國), 소왕을 세우고(立昭王, 而) 기강과 그 정치를 고쳤고(改紀其政), 또한(亦) 현명한 대부다(賢大夫也). 그러나(然) 그 왕을 참칭하는 호칭을(其僭王之號) 바꾸지 못했고(不能革), 소왕이(昭王) 공자를 등용하려고 했지만(欲用孔子), 또한(又) 그것을 막았다(沮止之). 그뒤(其後) 마침내(卒) 백공을 불러들여(召白公以) 화란에 이르렀고(致禍亂, 則) 그 사람 됨을(其爲人) 알 수 있다(可知矣). 피재란(彼哉者), 외면하는 말이다(外之之辭).
問管仲. 曰: “人也. 奪伯氏騈邑三百, 飯疏食, 沒齒無怨言.”(문관중 왈 인야 탈백씨병읍삼백 반소사 몰치무원언)
관중을 물었다(問管仲).
말씀하시길(曰): “이 사람은(人也), 백씨의(伯氏) 병읍 300을(騈邑三百) 빼앗았는데(奪), 거친 밥을 먹으면서(飯疏食), 평생토록(沒齒)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無怨言).”
人也, 猶言此人也. 伯氏, 齊大夫. 騈邑, 地名. 齒, 年也. 蓋桓公奪伯氏之邑以與管仲, 伯氏自知己罪, 而心服管仲之功, 故窮約以終身而無怨言. 荀卿所謂“與之書社三百, 而富人莫之敢拒” 者, 卽此事也.
인야는(人也), 이 사람과 같다(猶言此人也). 백씨는(伯氏), 제나라 대부다(齊大夫). 병읍은(騈邑), 지명이다(地名). 치는(齒), 나이다(年也). 대개(蓋) 환공이(桓公) 백씨의 읍을 빼앗아서(奪伯氏之邑以) 관중에게 주었는데(與管仲), 백씨가(伯氏) 스스로(自) 자기 죄를 알고(知己罪, 而) 관중의 공덕에(管仲之功) 마음으로 복종했고(心服), 그러므로(故) 궁핍하게(窮約以) 몸을 마쳤는데(終身而)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無怨言). 순경이(荀卿) 이른바(所謂) “서사 300을 주었지만(與之書社三百, 而) 부유한 사람 가운데(富人) 누구도(莫) 감히 그에게 맞서지 못했다(之敢拒)”란 것이(者), 바로(卽) 이 일이다(此事也).
○ 或問: “管仲ㆍ子産孰優?” 曰: “管仲之德, 不勝其才. 子産之才, 不勝其德. 然於聖人之學, 則槪乎其未有聞也.”
○ 누군가 묻기를(或問): “관중가 자산 가운데(管仲ㆍ子産) 누가 더 뛰어난 가요(孰優)?”라고 했다.
말하길(曰): “관중의 덕은(管仲之德), 그 재주를 이기지 못했다(不勝其才). 자산의 재주는(子産之才), 그 덕을 이기지 못했다(不勝其德). 그러나(然) 성인의 학문에서라면(於聖人之學, 則) 대개(槪) 그 들은 것이 있지 않다(乎其未有聞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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