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子曰: “吾子所及者, 請問其行.” 子貢對曰: “夫能夙興夜寐, 諷誦崇禮, 行不貳過, 稱言不苟, 是顔回之行也. 孔子說之以詩曰: ‘媚茲一人, 應侯愼德, 永言孝思, 孝思惟則.’ 若逢有德之君, 世受顯命, 不失厥名, 以御于天子, 則王者之相也. 在貧如客, 使其臣如借, 不遷怒, 不深怨, 不錄舊罪, 是冉雍之行也, 孔子論其材曰: ‘有土之君子也, 有衆使也, 有刑用也, 然後稱怒焉.’ 孔子告之以詩曰: ‘靡不有初, 鮮克有終.’ 疋夫不怒, 唯以亡其身, 不畏强禦, 不侮矜寡, 其言循性, 循其性也, 其都以富, 材任治戎, 是仲由之行也. 孔子和之以文, 說之以詩曰: ‘受小拱大拱而爲下國駿龐, 荷天子之龍, 不戁不悚, 敷奏其勇, 强乎武哉, 文不勝其質.’
문자가 말하길(文子曰): “그대가(吾子) 만난 사람에 대해(所及者), 그 행실을 묻기를 청합니다(請問其行).”라고 했다.
자공이 대답하길(子貢對曰):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자며(夫能夙興夜寐), 시를 외고(諷誦) 예를 숭상하고(崇禮), 행실에(行)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不貳過), 말이 구차하지 않은 것은(稱言不苟), 바로(是) 안회의 행실입니다(顔回之行也).孔子說之以) 시를 말하길(詩曰): ‘아름다운(媚茲) 한 사람(一人), 오직(應侯) 덕을 삼갔고(愼德), 말을 길게 하여(永言) 효도를 생각하고(孝思), 효도를 생각한 것이(孝思) 법이 되었다(惟則).’라고 했으니, 만약(若) 덕 있는 임금을(有德之君) 만나(逢), 세상에(世) 명을 받아(受顯命), 그 이름을 잃지 않고(不失厥名), 천자에게 다스림을 받는다면(以御于天子, 則) 왕자를 보좌할 것이다(王者之相也).
가난함에 있으면서(在貧) 손님처럼 하고(如客), 그 신하를 부리는 것은(使其臣) 빌려온 것처럼 하고(如借),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不遷怒), 깊이 원망하지 않고(不深怨), 옛날의 잘못을 기억하지 않는 것은(不錄舊罪), 이것은(是) 염옹의 행실이고(冉雍之行也), 공자가(孔子) 그 재주를 논하기를(論其材曰): ‘땅을 가질 수 있는(有土之) 군자이니(君子也), 무리가 있으면(有衆) 부리고(使也), 형벌이 있으면(有刑) 쓰고 나서(用也, 然後) 노여움에 걸맞게 할 것이다(稱怒焉.)’라고 했습니다.
공자가(孔子) 시로 그에게 일러주길(告之以詩曰): ‘처음이 있지 않은 것은(不有初) 아니지만(靡), 끝을 잘 가지는 사람은(克有終) 드물다(鮮).’라고 했으니, 필부가(疋夫) 노하지 않는 것은(不怒), 오직(唯) 그 몸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며(以亡其身), 강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不畏强禦), 미천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고(不侮矜寡), 그 말은(其言) 본성을 따르고(循性), 그 쌓음으로(其都以) 부유하게 되고(富), 재주는(材) 군대를 다스리는 것을 맡길 수 있는 것은(任治戎), 이것은(是) 중유의 행실입니다(仲由之行也). 공자가(孔子) 그것에 화답해서(和之以) 글을 짓고(文), 그에게 시로써 설명하길(說之以詩曰): ‘작은 법과 큰 법을(小拱大拱) 받아서(受而) 나라를 다스려(爲下國) 부유하게 만들고(駿龐), 천자의 총애를 받고(荷天子之龍), 두려움도 없고(不戁) 어려움도 없고(不悚), 그 용맹을 아뢰니(敷奏其勇), 강하구나(强乎) 무용이(武哉), 문이(文) 그 바탕을 앞서지 못한다(不勝其質.)’라고 했습니다.
* 夙興夜寐(숙흥야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잔다.’는 뜻으로, 부지런히 일함을 이르는 말.
* 敷奏(부주): 윗사람에게 아룀.
恭老卹幼, 不忘賓旅, 好學博藝, 省物而勤也, 是冉求之行也. 孔子因而語之曰: ‘好學則智, 卹孤則惠, 恭則近禮, 勤則有繼, 堯舜篤恭以王天下, 其稱之也, 曰宜爲國老.’ 齊莊而能肅, 志通而好禮, 擯相兩君之事, 篤雅有節, 是公西赤之行也子曰: ‘禮經三百, 可勉能也, 威儀三千則難也’, 公西赤問曰: ‘何謂也?’子曰: ‘貌以儐禮, 禮以儐辭, 是謂難焉’, 衆人聞之, 以爲成也. 孔子語人曰: ‘當賓客之事, 則達矣.’ 謂門人曰: ‘二三子之欲學賓客之禮者, 其於赤也.’
노인을 공경하고(恭老) 어린아이를 구휼하고(卹幼), 멀리서 온 손님을 잊지 않고(不忘賓旅), 많은 기예 배우기를 좋아하고(好學博藝), 만물을 살펴(省物而) 부지런히 힘쓰는 것은(勤也), 이것은(是) 염구의 행실입니다(冉求之行也). 공자가(孔子) 이에(因而) 그에게 말하길(語之曰): ‘배움을 좋아하면(好學則) 지혜롭고(智), 고아를 구휼하면 은혜롭고(卹孤則惠), 공경하면 예에 가깝고(恭則近禮), 부지런하면 계속함이 있으니(勤則有繼), 요순이(堯舜) 공경을 돈독히 해서(篤恭以) 천하에서 왕 노릇했으니(王天下), 그를 칭찬하는 것을(其稱之也), 마땅히 국로라고 할 것이다(曰宜爲國老.)’라고 했습니다.
장엄하고 엄숙하며(齊莊而能肅), 뜻이 통하고(志通而) 예를 좋아하고(好禮), 두 임금의 만남을 처리하는 것이(擯相兩君之事), 독실하고 우아해서(篤雅) 절도가 있는 것은(有節), 바로(是) 공서적의 행실입니다(公西赤之行也). 선생님이 말씀하시길(子曰): ‘예의 벼리가(禮經) 3백 가지인데(三百), 힘쓸 수 있지만(可勉能也), 위의 3천 가지는(威儀三千則) 행하기 어렵다(難也)’라고 하니, 공서적이 묻기를(公西赤問曰):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요(何謂也)?’라고 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길(子曰): ‘표정 지어(貌以) 예를 갖추고(儐禮), 예로써(禮以) 말을 이끄니(儐辭), 이것을(是) 어렵다고 말한 것이다(謂難焉).’라고 했습니다. 여러 사람이(衆人) 그것을 듣고(聞之), <공서적이> 이루었다고 여겼다(以爲成也). 선생님이(孔子) 사람들에게 말하길(語人曰): ‘빈객의 일을 맡아서는(當賓客之事, 則) 통달했다(達矣.)’라고 하시며, 문인들에게 말하길(謂門人曰): ‘제자들 가운데(二三子之) 빈객의 예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欲學賓客之禮者), 그것이(其) 공서적에게 있다(於赤也.)’라고 했습니다.
* 賓旅(빈려): 딴 나라에서 온 나그네.
滿而不盈, 實而如虛, 過之如不及, 先王難之. 博無不學, 其貌恭, 其德敦, 其言於人也, 無所不信, 其驕於人也, 常以浩浩, 是以眉壽, 是曾參之行也. 孔子曰: ‘孝, 德之始也; 悌, 德之序也; 信, 德之厚也; 忠, 德之正也. 參中夫四德者也, 以此稱之.’ 美功不伐, 貴位不善, 不侮不佚, 不傲無告, 是顓孫師之行也. 孔子言之曰: ‘其不伐, 則猶可能也, 其不弊百姓, 則仁也, 詩云: 愷悌君子, 民之父母.’ 夫子以其仁爲大學之深.
가득 찼지만(滿而) 차지 않은 듯하고(不盈), 충실한데도(實而) 빈듯하고(如虛), 지나치지만(過之) 미치지 못하는 듯한 것은(如不及), 선왕도 어렵게 여겼다(先王難之). 넓지만(博) 배우지 않은 것이 없고(無不學), 그 모습이 공손하고(其貌恭), 그 덕이 돈독하고(其德敦), 그(其) 남에게 말하는 것에(言於人也),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이 없고(無所不信), 그 남에게 교만을 부리는 것도(其驕於人也), 늘(常) 넓고 넓어서(以浩浩), 이 때문에(是以) 눈썹이 희도록 장수했으니(眉壽), 이것은(是) 증자의 행실입니다(曾參之行也).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효는(孝), 덕의 시작이고(德之始也); 제는 덕의 순서이고(悌, 德之序也); 신은 덕의 두터움이며(信, 德之厚也); 충은 덕의 바름이다(忠, 德之正也). 증삼은(參) 이 네 덕에(夫四德者) 들어맞았다(中也)’라고 했으니, 이것으로(以此) 칭찬한 것이다(稱之).
아름다운 공적을(美功) 자랑하지 않고(不伐), 귀한 지위를(貴位) 좋게 여기지 않고(不善), 업신여기지 않고(不侮) 나태하지 않으며(不佚), 하소연할 곳 없는 사람에게(無告) 거만하게 굴지 않는 것은(不傲), 이것은(是) 단손사의 행실이다(顓孫師之行也). 공자가(孔子) 그에게 말하길(言之曰): ‘그 자랑하지 않는 것이라면(其不伐, 則) 오히려(猶) 그럴 수 있지만(可能也), 그(其) 백성에게 폐단이 없게 하는 것은(不弊百姓, 則) 인이니(仁也), 시에 이르길(詩云): 단아하고 화평한 군자는(愷悌君子), 백성의 부모다(民之父母).’라고 했으니, 선생님께서(夫子) 그 인함을(以其仁) 대학의 깊은 뜻으로 여기셨다(爲大學之深).
* 愷悌(개제): 용모(容貌)가 단아(端雅)하고 기상(氣像)이 화평(和平)함.
送迎必敬, 上交下接若截焉, 是卜商之行也. 孔子說之以詩曰: ‘式夷式已, 無小人殆.’ 若商也, 其可謂不險矣. 貴之不喜, 賤之不怒, 苟利於民矣, 廉於行己, 其事上也以佑其下, 是澹臺滅明之行也. 孔子曰: ‘獨貴獨富, 君子助之, 夫也中之矣.’ 先成其慮, 及事而用之, 故動則不妄, 是言偃之行也. 孔子曰: ‘欲能則學, 欲知則問, 欲善則詳, 欲給則豫, 偃也得之矣.’ 獨居思仁, 公言仁義, 其於詩也, 則一日三覆白圭之玷, 是宮縚之行也. 孔子信其能仁, 以爲異士. 自見孔子, 出入於戶, 未嘗越禮, 徃來過之, 足不履影, 言其夢來常跡故跡不履影也啓蟄不殺, 春分當發蟄蟲啓戶咸出於此時不殺生也方長不折, 春夏生長養時草木不折執親之喪, 未嘗見齒, 是高柴之行也孔子曰: ‘柴於親喪, 則難能也, 啓蟄不殺, 則順人道, 方長不折, 則恕仁也, 成湯恭而以恕, 是以日隮’ 隮升也成湯行恭而能恕出見博鳥焉四面絶網乃去其三面詩曰湯降不遲聖敬日隮言湯疾行下人之道其聖敬之德日升聞也
凡此諸子, 賜之所親睹者也, 吾子有命而訊賜, 訊問賜也固不足以知賢” 文子曰: “吾聞之也, 國有道則賢人興焉, 中人用焉中庸之人爲時用也乃百姓歸之, 若吾子之論, 旣富茂矣, 壹諸侯之相也, 壹皆抑世未有明君, 所以不遇也”
보내고 맞이할 때는(送迎) 반드시(必) 공경하고(敬), 윗사람과 교류하고(上交) 아랫사람을 대하는 것은(下接) 끊는 것처럼 하는 것은(若截焉), 이것은(是) 복상의 행실이다(卜商之行也). 공자가(孔子) 그것을 기뻐하며(說之以) 시로 말하길(詩曰): ‘공평하게 해서(式夷) 그치게 하니(式已), 소인의 위태로움이 없다(無小人殆).’라고 했으니, 복상과 같으면(若商也), 아마(其) 위험함이 없다고 할 수 있다(可謂不險矣)라고 했습니다.
귀하게 여겨지는 것을(貴之) 기뻐하지 않고(不喜), 천하게 여겨지는 것을(賤之) 원망하지 않고(不怒), 진실로(苟) 백성에게 이익이 있으면(利於民矣), 몸가짐에 청렴하게 하고(廉於行己), 그 윗사람 모시는 것으로(其事上也以) 아랫사람을 도운 것은(佑其下), 이것은(是) 담대멸명의 행실이다(澹臺滅明之行也).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홀로 귀하고(獨貴) 홀로 부유하며(獨富), 군자가 그를 도우니(君子助之), 이 사람은(夫也) 그것에 맞는 사람이다(中之矣).’라고 했다.
그 염려를 먼저 하고(先成其慮), 일에 이르러서(及事而) 쓰고(用之), 그러므로(故) 움직이면(動則) 망령되지 않은 것은(不妄), 이것은(是) 언의 행실을 말한 것이다(言偃之行也).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능하려면 배워야 하고(欲能則學), 지혜로우려면 물어야 하고(欲知則問), 잘하려고 하면 자상해야 하고(欲善則詳), 넉넉하려면 예측해야 하는 것이니(欲給則豫), 언이(偃也) 그것을 얻었다(得之矣).’라고 했다.
홀로 머물면서(獨居) 인을 생각하고(思仁), 공중에서(公) 인의를 말하고(言仁義), 그 시에 있어서(其於詩也, 則) 하루에(一日) 백규지점을(白圭之玷) 세 번 반복한 것은(三覆), 이것은(是) 궁도의 행실입니다(宮縚之行也). 공자가(孔子) 그가 인할 수 있음을 믿고(信其能仁), 기이한 사로 여겼다(以爲異士).
공자를 만나고부터(自見孔子), 문에 드나들 때(出入於戶), 일찍이 예를 넘어선 적이 없고(未嘗越禮), 왕래하고 지나가며(徃來過之), 발이(足) 그림자를 밟지 않고(不履影), 겨울잠 깬 벌레를 죽이지 않고(啓蟄不殺), 막 자라는 가지를 꺾지 않고(方長不折), 어버이 상을 치르면서(執親之喪), 일찍이 이를 보이지 않은 것은(未嘗見齒), 이것은(是) 고시의 행실입니다(高柴之行也).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시가(柴) 어버이 상에 대해서(於親喪, 則) 잘하기 어려운 것이었고(難能也), 겨울잠 깬 벌레를 죽이 않은 것은(啓蟄不殺, 則) 인도를 따른 것이고(順人道), 막 자라는 가지를 꺾지 않는 것은(方長不折, 則) 서와 인이니(恕仁也), 성왕과 탕왕은(成湯) 공손하고 잘 용서했으니(恭而以恕), 이 때문에(是以) 날로 높아졌다(日隮)’라고 했습니다.
凡此諸子, 賜之所親睹者也, 吾子有命而訊賜, 訊問賜也固不足以知賢.” 文子曰: “吾聞之也, 國有道則賢人興焉, 中人用焉, 乃百姓歸之, 若吾子之論, 旣富茂矣, 壹諸侯之相也, 抑世未有明君, 所以不遇也.”
모든(凡) 이 제자들은(此諸子), 내가(賜之) 직접 본 사람들이고(所親睹者也), 그대에게(吾子) 명이 있어(有命而) 나에게 물었지만(訊賜), 저는(賜也) 참으로(固) 어진 사람을 알 수 없습니다(不足以知賢).”라고 했다.
문자가 말하길(文子曰): “내가 들은 것은(吾聞之也), 나라에(國) 도가 있으면(有道則) 현인이 일어나어(賢人興焉), 그 사람에 맞도록(中人) 등용되어(用焉), 이에(乃) 백성이 돌아간다고 하니(百姓歸之), 만약(若) 그대의 논함과 같다면(吾子之論), 이미(旣) <재주가> 많고 넉넉해서(富茂矣), 한결같이(壹) 제후의 상이 될 수 있는데(諸侯之相也), 세상을 눌러(抑世) 아직 명군이 있지 않으니(未有明君), 불우한 까닭이다(所以不遇也).”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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