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맹의 뒤안길/공자가어(孔子家語)

[공자가어(孔子家語) 변정(辯政) 14-4] 초왕장유형대(楚王將遊荊臺) - 100세 뒤의 의 일을 억제했다

by मोक्ष 2025. 1. 22.
반응형

楚王將遊荊臺, 司馬子祺諫, 王怒之. 令尹子西賀於殿下, 諫曰: “今荊臺之觀, 不可失也.” 王喜拊子西之背曰: “與子共樂之矣.” 子西步馬十里, 引轡而止, 曰: “臣願言有道, 王肯聽之乎?” 王曰: “子其言之.” 子西曰: “臣聞爲人臣而忠其君者, 爵祿不足以賞也; 諛其君者, 刑罰不足以誅也. 夫子祺者, 忠臣也, 而臣者, 諛臣也, 願王賞忠而誅諛焉.” 王曰: “我今聽司馬之諫, 是獨能禁我耳, 若後世遊之, 何也?” 子西曰: “禁後世易耳, 大王萬歲之後, 起山陵於荊臺之上, 則子孫必不忍遊於父祖之墓, 以爲歡樂也.” 王曰: “善.” 乃還. 孔子聞之曰: “至哉子西之諫也, 入之於千里之上, 抑之於百世之後者也.”

초왕이(楚王) 형대로 놀러 가려고 했는데(將遊荊臺), 사마자기가 간하자(司馬子祺諫), 왕이 노여워했다(王怒之). 영윤 자서가(令尹子西) 대전 아래서 축하하고(賀於殿下), 간하길(諫曰): “지금(今) 형대의 볼거리를(荊臺之觀), 놓칠 수 없습니다(不可失也).”라고 했다.

왕이(王) 기뻐하고(喜) 자서의 등을 두드리며 말하길(拊子西之背曰): “그대와 함께(與子) 같이 즐기자(共樂之矣).”라고 했다.

자서가(子西) 말을 타고(步馬) 십 리를 가서(十里), 고삐를 당기며(引轡而) 세우고(止), 말하길(曰): “신이 원컨대(臣願) 말에(言) 도리가 있으니(有道), 왕께서(王) 기꺼이 들으시겠습니까(肯聽之乎)?”라고 했다.

왕이 말하길(王曰): “그대는(子) 그것을 말해보아라(其言之).”라고 했다.

자서가 말하길(子西曰): “신이 듣기로(臣聞) 신하가 되어(爲人臣而) 그 임금에게 충성하는 사람은(忠其君者), 작록으로(爵祿) 상을 주기에도 부족하고(不足以賞也); 그 임금에게 아첨하는 사람은(諛其君者), 형벌로(刑罰) 죽이기에도 부족하다(不足以誅也)라고 했습니다. 무릇(夫) 사마자기는(子祺者), 충신이고(忠臣也, 而) 신은(臣者), 아첨하는 신하이니(諛臣也), 원컨대(願) 왕께서(王) 충신에게 상을 주고(賞忠而) 아첨하는 사람을 죽이시기 바랍니다(誅諛焉).”라고 했다.

왕이 말하길(王曰): “내가(我) 지금(今) 사마자기의 간언을 들어준다면(聽司馬之諫), 바로(是) 오직(獨) 나를 금하는 것일 뿐인데(能禁我耳), 만약(若) 후세 왕이 거기에서 논다면(後世遊之), 어찌하는가(何也)?”라고 했다.

자서가 말하길(子西曰): “후세를 금하는 것은(禁後世) 쉬우니(易耳), 대왕께서(大王) 만세의 뒤에(죽은 뒤에)(萬歲之後), 형대 위에(於荊臺之上) 왕릉을 만들면(起山陵, 則) 자손이(子孫) 반드시(必) 차마(不忍) 조상의 묘 위에서 놀고(遊於父祖之墓, 以) 환락을 즐기미 못합니다(爲歡樂也).”라고 했다.

왕이 말하길(王曰): “훌륭하다(善).”라고 했다. 이에 되돌아왔다(乃還).

공자가 그것을 듣고(孔子聞之) 말하길(曰): “지극하구나(至哉) 자서의 간언이(子西之諫也), 십리에 들어서서(入之於千里之上), 백세 뒤의 일을 억제했다(抑之於百世之後者也).”라고 했다.

 

* 山陵(산릉): 산과 언덕, 임금의 무덤. 왕릉().

* 千里之上(천리지상): ' 千'은 '十'의 오기로 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