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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五書) 읽기/논어집주(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술이(述而) 7-8] 일우삼반(一隅三反) / 배우는 사람의 자세

by मोक्ष 2024.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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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不憤不啓,(불분불계)

子曰: “마음으로 통하기를 구해서 애태우지 않으면(不憤) <막힌 것을> 열어주지 않고(不啓),

 

○ 憤者, 心求通而未得之意. 啓, 謂開其意.

○ 분이란(憤者), 마음이 통하기를 구하지만(心求通而)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未得之意). 계는(啓), 그 뜻을 열어주는 것을 말한다(謂開其意).

不悱不發,(불비불발)

<입으로> 말하지 못해서 애태우면(不悱) <말문을> 열어주지 않고(不發),

 

○ 悱者, 口欲言而未能之貌. 發, 謂達其辭.

○ 비란(悱者), 입으로 말하고 싶지만(口欲言而) 잘하지 못하는 모습이다(未能之貌). 발은(發), 그 말을 잘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謂達其辭).

擧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거일우불이삼우반 즉불부야)

한 모퉁이를 들어(擧一隅) 그것으로 세 모퉁이를 알지 못하면(不以三隅反, 則) 다시 가르치지 않는다(不復也).”


○ 物之有四隅者, 擧一可知其三. 反者, 還以相證之義. 復, 再告也. 上章已言聖人誨人不倦之意, 因幷記此, 欲學者勉於用力, 以爲受敎之地也.

○ 만물에(物之) 네 모퉁이가 있는 것은(有四隅者), 하나를 들면(擧一) 그 셋을 알 수 있다(可知其三). 반이란(反者), 되돌려서(還以) 서로 증명한다는 뜻이다(相證之義). 부는(復), 다시 일러줌이다(再告也). 윗장은(上章) 이미(已) 성인이(聖人) 남을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뜻을(誨人不倦之意) 말했고(言), 이것을 함께 기록함으로써(因幷記此), 학자가 힘쓰는 것에 열심히 해서(學者勉於用力, 以) 가르침 받을 바탕을 만들도록 하려는 것이다(爲受敎之地也).


○ 程子曰: “憤悱, 誠意之見於色辭者也. 待其誠至而後告之. 旣告之, 又必待其自得, 乃復告爾.”

○ 程子曰: “분비는(憤悱), 진실한 마음이(誠意之) 얼굴과 말에 드러는 것이다(見於色辭者也). 그 정성이 지극하기를 기다리고 나서(待其誠至而後) 일러준다(告之). 이미 일러주었으면(旣告之), 또(又) 반드시(必) 스스로 얻기를 기다리고(待其自得), 이에(乃) 다시 일러줄 뿐이다(復告爾).”


又曰: “不待憤悱而發, 則知之不能堅固; 待其憤悱而後發, 則沛然矣.”

又曰: “분비하기를 기다리지 않고(不待憤悱而) 틔워주면(發, 則) 아는 것이(知之) 견고할 수 없고(不能堅固); 그 분비를 기다리고 나서(待其憤悱而後) 틔워주면(發, 則) 세차게 내리는 비와 같다(沛然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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