柴也愚,(시야우)
시는(柴也) 어리석고(愚),
柴, 孔子弟子, 姓高, 字子羔. 愚者, 知不足而厚有餘. 『家語』記其“足不履影, 啓蟄不殺, 方長不折. 執親之喪, 泣血三年, 未嘗見齒. 避難而行, 不徑不竇”. 可以見其爲人矣.
시는(柴), 공자 제자로(孔子弟子), 성은 고이고(姓高), 자는 자고다(字子羔). 어리석은 것은(愚者), 지혜가 부족하지만(知不足而) 두터움에(厚) 넉넉함이 있는 것이다(有餘). 가어에(『家語』) 그는(其) “발로(足) 그림자를 밟지 않고(不履影), 잠에서 깬 동물은(啓蟄) 죽이지 않고(不殺), 막 자라는 것은(方長) 꺽지 않았다(不折). 부모의 상을 치르면서(執親之喪), 눈물을 흘린 것이 3년이고(泣血三年), 일찍이 이빨을 보이지 않았다(未嘗見齒). 난리를 피해서(避難而) 가면서도(行), 지름길로 가지 않고(不徑) 구멍으로 나가지 않았다(不竇)”라고 기록했다(記). 그 사람됨을(其爲人) 알 수 있다(可以見矣).
參也魯,(삼야노)
삼은(參也) 둔하고(魯),
魯, 鈍也.
노는(魯), 둔함이다(鈍也).
程子曰: “參也竟以魯得之.”
程子曰: “삼은(參也) 마침내(竟) 노둔함으로(以魯) 얻었다(得之).”
又曰: “曾子之學, 誠篤而已. 聖門學者, 聰明才辯, 不爲不多, 而卒傳其道, 乃質魯之人爾. 故學以誠實爲貴也.”
又曰: “증자의 학문이(曾子之學), 성독일 뿐이다(誠篤而已). 성문의 학자 가운데(聖門學者), 총명하고(聰明) 말 잘하는 사람이(才辯), 많지 않은 것이 아니었지만(不爲不多, 而) 마침내(卒) 그 도를 전한 것은(傳其道), 바로(乃) 질박하고 노둔한(質魯之) 사람일 뿐이다(人爾). 그러므로(故) 배움은(學) 성실함을(以誠實) 귀한 것으로 여긴다(爲貴也).”
尹氏曰: “曾子之才魯, 故其學也確, 所以能深造乎道也.”
尹氏曰: “증자의 재주가(曾子之才) 노둔했고(魯), 그러므로(故) 그 배움이(其學也) 확고해서(確), 도에 깊이 나아갈 수 있었다(所以能深造乎道也).”
師也辟,(사야벽)
사는(師也) 치우쳤고(辟),
○ 辟, 便辟也. 謂習於容止, 少誠實也.
○ 벽은(辟), 치우친 것이다(便辟也). 용지에 익숙해서(習於容止), 성실함이 적은 것을(少誠實) 말한다(謂也).
由也喭.(유야안)
유는(由也) 거칠었다(喭).
○ 喭, 粗俗也. 傳稱喭者, 謂俗論也.
○ 안은(喭), 거칠고 세속적인 것이다(粗俗也). 전에(傳) 안이라고 말한 것은(稱喭者), 세속의 의논을 말한다(謂俗論也).
○ 楊氏曰: “四者性之偏, 語之使知自勵也.”
○ 楊氏曰: “네 가지 품성의 치우침은(四者性之偏), 그것을 말해서(語之) 스스로 면려해야 함을(自勵) 알도록 하려는 것이다(使知也).”
吳氏曰: “此章之首, 脫‘子曰’二字.” 或疑下章‘子曰’, 當在此章之首, 而通爲一章.
吳氏曰: “이 장의 머리에(此章之首), 자왈 두 글자가 빠졌다(脫‘子曰’二字.”) 혹(或) 아랫장의 자왈이(下章‘子曰’), 마땅히(當) 이 장의 머리에 있어서(在此章之首, 而) 전체가(通) 하나의 장이 되는 것이(爲一章) 아닌가 싶다(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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