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游曰: “子夏之門人小子, 當洒掃, 應對, 進退, 則可矣.(자하지문인소자 당소쇄 응대 진퇴 즉가의) 抑末也, 本之則無. 如之何?”(억미야 본지즉무 여지하)
자유가 말하길(子游曰): “자하의 문인 가운데(子夏之門人) 젊은이들이(小子), 물 뿌리고 마당 쓸고(洒掃), 응대하고 답변하고(應對), 나아가고 물러는 것을(進退) 담당하면(當, 則) 괜찮다(可矣). 하지만(抑) 말단이니(末也), 근본이라면(本之則) 없다(無). 어찌해야 하는가(如之何)?”
○ 子游譏子夏弟子, 於威儀容節之間則可矣. 然此「小學」之末耳, 推其本, 如「大學」正心誠意之事, 則無有.
○ 자유가(子游) 자하의 제자를 비난하기를(譏子夏弟子), 몸가짐과 용절의 사이에 대해서는(於威儀容節之間則) 잘한다(可矣). 그러나(然) 이것은(此) 소학의 말단일 뿐이고(「小學」之末耳), 그 근본을 미루어보면(推其本), 대학의(「大學」) 정심성의의 일과 같은 것은(如正心誠意之事, 則) 잘하는 것이 있지 않다(無有)라고 했다.
子夏聞之曰: “噫! 言游過矣!(자하문지왈 희언유과의) 君子之道, 孰先傳焉?(군자지도 숙선전언) 孰後倦焉?(숙후권언) 譬諸草木, 區以別矣.(비저초목 구이별의) 君子之道, 焉可誣也?(군자지도 언가무야) 有始有卒者, 其惟聖人乎!”(유시유졸자 기유성인호)
자하가(子夏) 그것을 듣고 말하길(聞之曰): “아(噫)! 언유가(言游) 지나치구나(過矣)! 군자의 도는(君子之道), 무엇이(孰) 먼저 전할 것이겠는가(先傳焉)? 무엇이(孰) 뒤로 미루어 게을리할 것이겠는가(後倦焉)? 초목에 비유하자면(譬諸草木), 구획을 나누고(區以) 구별하는 것이다(別矣). 군자의 도가(君子之道), 어찌(焉) 속일 수 있겠는가(可誣也)? 시작이 있고(有始) 끝이 있는 사람은(有卒者), 아마도(其) 오직(惟) 성인일 것이다(聖人乎)!”
○ 倦, 如‘誨人不倦’之倦. 區, 猶類也. 言君子之道, 非以其末爲先而傳之, 非以其本爲後而倦敎. 但學者所至, 自有淺深, 如草木之有大小, 其類固有別矣. 若不量其淺深, 不問其生熟, 而槪以高且遠者强而語之, 則是誣之而已. 君子之道, 豈可如此? 若夫始終本末一以貫之, 則惟聖人爲然, 豈可責之門人小子乎?
○ 권은(倦), 회인불권의 권과 같다(如‘誨人不倦’之倦). 구는(區), 종류와 같다(猶類也). 군자의 도는(言君子之道), 그 말단을(以其末) 우선으로 삼아(爲先而) 전해주는 것도(傳之) 아니고(非), 그 근본을(以其本) 뒤로 미루어(爲後而) 가르치기를 게을리하는 것도(倦敎) 아니다(非). 다만(但) 배우는 사람이 이르는 것에(學者所至), 본래(自) 얕고 깊음이 있어서(有淺深), 초목에(草木之) 크고 작음이 있는 것과 같고(如有大小), 그 부류에(其類) 참으로(固) 구별이 있다(有別矣). 만약(若) 그 깊고 얕음을(其淺深) 헤아리지 않고(不量), 그 익지 않은 것과 익은 것을 따지지 않고(不問其生熟, 而) 모두(槪) 높고 먼 것으로(以高且遠者) 억지로(强而) 말하면(語之, 則) 이것은(是) 그들을 속이는 것이다(誣之而已). 군자의 도가(君子之道), 어찌(豈) 이와 같겠는가(可如此)? 만약(若) 시종과 본말이(夫始終本末) 하나로(一以) 꿰인다면(貫之, 則) 오직(惟) 성인이 그렇게 할 수 있으니(聖人爲然), 어찌(豈) 문인의 젊은이에게(門人小子) 책임 지울 수 있겠는가(可責之乎)?
○ 程子曰: “君子敎人有序, 先傳以小者近者, 而後敎以大者遠者. 非先傳以近小, 而後不敎以遠大也.”
○ 程子曰: “군자가(君子) 남을 가르치는 것에(敎人) 순서가 있고(有序), 먼저(先) 작고 가까운 것을(以小者近者) 전하고 나서(傳, 而後) 크고 먼 것을 가르친다(敎以大者遠者). 가깝고 작은 것을(以近小) 먼저 전하지 않고 나서(非先傳, 而後) 크고 먼 것을(以遠大) 가르칠 수 없다(不敎也).”
又曰: “洒掃應對, 便是形而上者, 理無大小故也. 故君子只在愼獨.”
又曰: “쇄소응대는(洒掃應對), 바로(便是) 형이상인 것이고(形而上者), 이치에(理) 크고 작음이 없기(無大小) 때문이다(故也). 그러므로(故) 군자는(君子) 다만(只) 신독에 있다(在愼獨).”
又曰: “聖人之道, 更無精粗. 從洒掃應對, 與精義入神貫通只一理. 雖洒掃應對, 只看所以然如何.”
又曰: “성인의 도가(聖人之道), 곧(更) 정조가 없다(無精粗). 쇄소응대를 따라(從洒掃應對), 정의입신까지(與精義入神) 꿰고 있는 것은(貫通) 다만(只) 한 가치 이치다(一理). 비록(雖) 쇄소응대라도(洒掃應對), 다만(只) 그러한 것이 무엇인지를(所以然如何) 본다(看).”
又曰: “凡物有本末, 不可分本末爲兩段事. 洒掃應對是其然, 必有所以然.”
又曰: “모든 사물에(凡物) 본말이 있고(有本末), 본말을 나누어(分本末) 양 끝의 일을 만들 수 없다(不可爲兩段事). 쇄소응대가(洒掃應對) 이것이(是) 그러한 것이니(其然), 반드시(必) 그러한 까닭이 있다(有所以然).”
又曰: “自洒掃應對上, 便可到聖人事.”
又曰: “쇄소응대로부터(自洒掃應對) 위로 가면(上), 바로(便) 성인의 일에 이를 수 있다(可到聖人事).”
愚按: 程子第一條, 說此章文意, 最爲詳盡. 其後四條, 皆以明精粗本末, 其分雖殊, 而理則一. 學者當循序而漸進, 不可厭末而求本. 蓋與第一條之意, 實相表裏. 非謂末卽是本, 但學其末而本便在此也.
내가 생각건대(愚按): 정자의(程子) 첫 조목은(第一條), 이 장 글뜻을 설면한 것이(說此章文意), 가장(最) 상세하고 극진하다(爲詳盡). 그 뒤 네 조목은(其後四條), 모두(皆) 정조와 본말이(精粗本末), 그 나뉨이(其分) 비록 다르지만(雖殊, 而) 이치는(理則) 하나인 거을(一) 밝혔고(以明), 학자는(學者) 마땅히(當) 차례를 따라(循序而) 천천히 나아가야 하고(漸進), 말단을 싫어하고(厭末而) 근본을 구할 수 없다(不可求本). 대체로(蓋) 첫 조목의 뜻과 더불어(與第一條之意), 실제는(實) 서로 표리가 된다(相表裏). 非謂末卽是本, 但學其末而本便在此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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