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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五經) 읽기/춘추좌전(春秋左傳)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노은공 4년(魯隱公 四年)] (壬戌 B.C. 719) 위나라가 공자 진을 세운 것은 백성의 뜻이다

by मोक्ष 2024.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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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
四年, 春, 王二月, 莒人伐杞, 取牟婁.

4년(四年), 봄(春), 2월에(王二月), 려인이(莒人) 기나라를 쳐서(伐杞), 모루를 취했다(取牟婁). 

 

* 取라고 기록한 것은 힘들이지 않고 쉽게 얻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也)


戊申, 衛州吁弒其君完. 

무신일에(戊申), 위나라(衛) 주우가(州吁) 그 임금을 시해했다(弒其君完). 

夏, 公及宋公遇于清. 

여름에(夏), 공과(公及) 송공이(宋公) 청에서 만났다(遇于清).

 

* 遇는 갑자기 만나는 것이다. 두 나라가 각기 그 禮節을 간소히 하여 道路에서 우연히 서로 만난 것처럼 한 것이다.(   也)

 

宋公, 陳侯, 蔡人, 衛人, 伐鄭. 

송공과 진후, 채인, 정인이 <함께>(宋公, 陳侯, 蔡人, 衛人), 정나라를 정벌했다(伐鄭). 

 

* 이것이 諸侯 聯合하여 한 나라를 토벌한 시초이고, 또 東方 諸侯들이 편을 가른 시초이기도 하다.(   始)

 

秋, 翬帥師會宋公, 陳侯, 蔡人, 衛人, 伐鄭. 

가을에(秋), 휘가(翬) 군대를 이끌고(帥師) 송공, 진호, 채인, 위인을 만나(會宋公, 陳侯, 蔡人, 衛人), 정나라를 정벌했다(伐鄭). 

 

* 이것이 大夫가 제멋대로 군사를 거느린 시초이다. 이때 翬가 兵權을 잡아 점차 세력을 키워 임금을 시해하는 데 이르렀다.(林曰 此大夫專將之始 於是翬得兵而循至於弑君)

 

九月, 衛人殺州吁于濮.

9월에(九月), 위나라 사람들이(衛人) 복에서(于濮) 주우를 죽였다(殺州吁).

 

冬, 十有二月, 衛人立晉.

겨울(冬), 12월에(十有二月), 위나라 사람들이(衛人) 진을 <임금으로> 세웠다(立晉).

 

[傳]

四年, 春, 衛州吁弒桓公而立, 公與宋公為會, 將尋宿之盟, 未及期, 衛人來告亂. 

4년 봄에(四年, 春), 위나라 주우가(衛州吁) 환공이 시해하고(弒桓公而) 자리에 올라서(立), 공과 송공이(公與宋公) 회합해서(為會), 숙에서 있었던 결맹을(宿之盟) 계승하여 거듭하려고 했는데(將尋), 기일에 이르지 못해서(未及期), 위나라 사람들이(衛人) 와서(來) 변란을 고했다(告亂). 

 

夏, 公及宋公遇于清.

여름에(夏), 공과 송공이(公及宋公) 청에서 만났다(遇于清).

 

宋殤公之即位也, 公子馮出奔鄭, 鄭人欲納之, 及衛州吁立, 將脩先君之怨於鄭, 而求寵於諸侯, 以和其民, 使告於宋曰, 君若伐鄭, 以除君害, 君為主, 敝邑以賦, 與陳蔡從, 則衛國之願也, 宋人許之, 於是陳蔡方睦於衛, 故宋公, 陳侯, 蔡人, 衛人, 伐鄭, 圍其東門, 五日而還. 公問於眾仲曰, 衛州吁其成乎. 對曰, 臣聞以德和民, 不聞以亂, 以亂, 猶治絲而棼之也, 夫州吁阻兵而安忍, 阻兵無眾, 安忍無親, 眾叛親離, 難以濟矣. 夫兵, 猶火也. 弗戢, 將自焚也, 夫州吁弒其君, 而虐用其民, 於是乎不務令德, 而欲以亂成, 必不免矣.

송 상공이(宋殤公之) 즉위하고(即位也), 공자 풍이(公子馮) 정나라로 달아났는데(出奔鄭), 정나라 사람들이(鄭人) 그를 들여보내 임금이 되게 하려고 했다(欲納之). 위나라 주우가 즉위하자(及衛州吁立), 정나라에(於鄭) 선군의 원한을 씻고(將脩先君之怨 , 而) 제후에게 총애를 구하여(求寵於諸侯, 以) 그 백성을 화합하게 하려했다(和其民). 사신을 보내(使) 송나라에 고하여 말하길(告於宋曰), 군께서(君) 만약(若) 정나라를 치고(伐鄭, 以) 임금의 해악을 없앤다면(除君害), 군을(君) 맹주로 여기고(為主), 우리가(敝邑) 군대를 써서(以賦), 진나라, 채나라와 함께(與陳蔡) 따른다면(從, 則) 위나라가(衛國之) 바라는 것입니다(願也). 송나라가(宋人) 이것을 허락하고(許之), 이에(於是) 진과 채가(陳蔡) 바야흐로(方) 위나라와 화목하게 지냈고(睦於衛), 그러므로(故) 송공과 진후, 채인, 위인이(宋公, 陳侯, 蔡人, 衛人), 정나라를 쳐서(伐鄭), 그 동문을 포위했다가(圍其東門), 5일 만에 돌아왔다(五日而還).

은공이(公) 중중에게 물어 말하길(問於眾仲曰), 위나라 주우가(衛州吁) 성공하겠는가(其成乎)라고 했다. 대답하여 말하길(對曰), 신은(臣) 덕으로(以德) 백성을 화목하게 하는 것을(和民) 들었지만(聞), 변란으로 하는 것은 듣지 못했고(不聞以亂), 변란으로 하는 것은(以亂), <엉킨> 실을 바로잡으려다가(治絲而) 얽히게 하는 것과 같으니(棼之也), 주우가(夫州吁) 군대를 믿고(阻兵而) 편안하게 잔인한 짓을 하니(安忍), 군대를 믿으면(阻兵) 백성을 잃고(無眾), 편안하게 잔인한 짓을 하면(安忍) 친한 사람을 잃고(無親), 백성이 배반하고(眾叛) 친한 사람이 떠나서(親離), 이루기 어렵습니다(難以濟矣). 무릇 군대는(夫兵), 불과 같습니다(猶火也). 단속하지 않으면(弗戢), 장차(將) 자기를 태우니(自焚也), 주우가(夫州吁) 임금을 시해하고(弒其君, 而) 그 백성을(其民) 잔악하게 부리면서(虐用), 이에(於是) 아름다운 덕에 힘쓰지 않고(乎不務令德, 而) 혼란으로써 이루려고 하니(欲以亂成), 반드시(必) 벗아나지 못할 것입니다(不免矣).

 

秋諸侯復伐鄭, 宋公使來乞師, 公辭之, 羽父請以師會之, 公弗許, 固請而行, 故書曰, 翬帥師, 疾之也, 諸侯之師, 敗鄭徒兵, 取其禾而還.

가을에(秋) 제후가(諸侯) 다시(復) 정나라를 치고(伐鄭), 송공의 사신이(宋公使) 와서(來) 군대를 요구하자(乞師), 공이 사양했고(公辭之), 우보가(羽父) 군대를 써서(以師) 함께하기를(會之) 청하니(請), 공이 허락하지 않았지만(公弗許), 굳이 청하여(固請而) 갔으니(行), 그러므로(故) 서에서 말하길(書曰), 휘가 군대를 인솔했다고(翬帥師) 하여, 그를 미워한 것이고(疾之也), 제후의 군대가(諸侯之師), 정나라를 물리치고(敗鄭徒兵), 그 벼를 베어가지고(取其禾而) 돌아왔다(還).

 

州吁未能和其民, 厚問定君於石子, 石子曰, 王覲為可, 曰, 何以得覲, 曰, 陳桓公方有寵於王, 陳衛方睦, 若朝陳使請, 必可得也, 厚從州吁如陳, 石碏使告于陳曰, 衛國褊小, 老夫耄矣, 無能為也, 此二人者, 實弒寡君, 敢即圖之, 陳人執之, 而請蒞于衛, 九月, 衛人使右宰醜, 蒞殺州吁于濮, 石碏使其宰獳羊肩, 蒞殺石厚于陳, 君子曰, 石碏, 純臣也, 惡州吁而厚與焉, 大義滅親, 其是之謂乎. 

주우가(州吁) 백성을 화목하게 하는 것을 잘하지 못하고(未能和其民), 후가(厚) 석자에게(於石子) 군을 안정시킬 방법을 물었고(問定君), 석자가 말하길(石子曰), 왕을 만나는 것이(王覲) 좋을 듯하다(為可)라고 했다.

<석후가> 말하길(曰), 어찌하면 친조할 수 있는가(何以得覲)라고 하니,

<석우가> 말하길(曰), 진 환공에게(陳桓公) 바야흐로(方) 왕에게 총애를 받음이 있고(有寵於王), 진나라와 위나라가(陳衛) 화목하니(方睦), 만약(若) 진나라에 조회하고(朝陳) 사신이 청한다면(使請), 반드시(必) 가능할 것이다(可得也)라고 하니, 석후가(厚) 주우를 따라(從州吁) 진나라에 갔다(如陳).

석작이(石碏) 사신을 보내(使) 진나라에 고하여 말하길(告于陳曰), 위나라가(衛國) 좁고 작으며(褊小), 노부가 늙어서(老夫耄矣), 할 수있는 것이 없지만(無能為也), 이 두 사람은(此二人者), 실로(實) 임금을 시해한 자들이니(弒寡君), 감이(敢) 바로 도모하라고(即圖之) 말하니, 진나라가(陳人) 그들을 붙잡아 두고(執之, 而) 위나라에(于衛) 처리할 것을 청했다(請蒞).

9월에(九月), 위나라 사람들이(衛人) 우재추를 시켜(使右宰醜), 복에서(于濮) 주우를 다스려 죽이고(蒞殺州吁), 석작이(石碏) 자기 재유앙견을 시켜(使其宰獳羊肩), 진에서(于陳) 석후를 다스려 죽였다(蒞殺石厚). 군자가 말하길(君子曰), 석작은(石碏), 깨긋한 신하이고(純臣也), 주우를 미워하여(惡州吁而) 석후까지 거기에 함께 했으니(죽였으니)(厚與焉), 대의멸친이(大義滅親), 아마(其) 이것을 말하는 것인가(是之謂乎)라고 했다. 

衛人逆公子晉于邢, 冬十二月, 宣公即位, 書曰, 衛人立晉, 眾也. 

위나라 사람들이(衛人) 형에서(于邢) 공자 진을 맞이하고(逆公子晉), 겨울 12월에(冬十二月), 선공이 즉위하니(宣公即位), 서에 이르길(書曰), 위나라 사람들이(衛人) 진을 세운 것은(立晉), 백성의 뜻이다(眾也)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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