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
五年, 春, 公矢魚于棠.
5년 봄에(五年, 春), 공이(公) 상에서(于棠) 물고기 잡는 장비를 펴고 구경했다(矢魚).
夏, 四月, 葬衛桓公.
여름 4월에(夏, 四月), 위 환공을(衛桓公) 장사 지냈다(葬).
秋, 衛師入郕.
가을에(秋), 위나라 군대가(衛師) 성 땅에 <쳐들어> 갔다(入郕).
九月, 考仲子之宮, 初獻六羽.
9월에(九月), 중자의 궁을(仲子之宮) 짓고(考), 처음으로(初) 육우를 바쳤다(獻六羽).
* 惠公은 仲子의 手文(손의 무늬) 때문에 그를 맞이하여 夫人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제후는 두 嫡夫人을 둘 수 없기 때문에 그를 嫡夫人으로 삼지 못하고 죽었다. 隱公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주기 위해 따로 仲子의 宮을 세운 것이다.(惠公以仲子手文 娶之 欲以爲夫人 諸侯無二嫡 蓋隱公成父之志 爲別立宮也)
* 六羽(육우): 고대 諸侯의 樂舞. 여섯 사람씩 여섯열(列)을 지어 추는데 손에 깃을 든다.
邾人, 鄭人, 伐宋.
주나라와 정나라가(邾人, 鄭人), 송나라를 쳤다(伐宋).
螟.
해충이 있었다(螟).
冬, 十有二月, 辛巳, 公子彄卒.
겨울 12월(冬, 十有二月), 신사일에(辛巳), 공자 구가 죽었다(公子彄卒).
宋人伐鄭, 圍長葛.
송나라가(宋人) 정나라를 치고(伐鄭), 장갈을 포위했다(圍長葛).
[傳]
五年, 春, 公將如棠觀魚者, 臧僖伯諫曰, 凡物不足以講大事, 其材不足以備器用, 則君不舉焉, 君將納民於軌物者也, 故講事以度軌量謂之軌, 取材以章物采謂之物, 不軌不物, 謂之亂政, 亂政亟行, 所以敗也, 故春蒐, 夏苗, 秋獮, 冬狩, 皆於農隙以講事也, 三年而治兵, 入而振旅, 歸而飲至, 以數軍實昭文章, 明貴賤, 辨等列, 順少長, 習威儀也, 鳥獸之肉, 不登於俎, 皮革, 齒牙, 骨角, 毛, 羽, 不登於器, 則公不射, 古之制也. 若夫山林川澤之實, 器用之資, 皁隸之事, 官司之守, 非君所及也. 公曰, 吾將略地焉, 遂往陳魚而觀之, 僖伯稱疾不從, 書曰, 公矢魚于棠, 非禮也, 且言遠地也.
5년 봄에(五年, 春), 공이(公) 장차 상으로 가서(將如棠) 물고기 잡이를 구경하려고 했는데(觀魚者), 장희백이 간하여 말하길(臧僖伯諫曰), 무릇(凡) 물건이(物) 대사를 강하기에 부족하거나(不足以講大事), 그 재목이(其材) 기기와 용기를 갖추기에 부족하면(不足以備器用, 則) 임금이(君) 거동하지 않고(不舉焉), 임금은(君) 장차(將) 백성을 궤와 물에 들도록 하는(納民於軌物) 사람입니다(者也).
그러므로(故) 대사를 강습해서(講事以) 궤량을 헤아리는 것을(度軌量) 궤라 하고(謂之軌), 재목을 취해서(取材以) 물채를 드러내는 것을(章物采) 물이라 하고(謂之物), 궤와 물에 맞지 않는 것을(不軌不物), 혼란한 정치라 하고(謂之亂政), 혼란한 정치가 자주 행해지는 것은(亂政亟行), 패망의 원인이 됩니다(所以敗也).
그러므로(故) 봄 사냥과 여름 사냥, 가을 사냥, 겨울 사냥은(春蒐, 夏苗, 秋獮, 冬狩), 모두(皆) 농한기에하여(於農隙以) 대사를 강습합니다(講事也). 三年而治兵, 入而振旅, 歸而飲至, 以數軍實昭文章, 明貴賤, 辨等列, 順少長, 習威儀也, 鳥獸之肉, 不登於俎, 皮革, 齒牙, 骨角, 毛, 羽, 不登於器, 則公不射, 古之制也. 若夫山林川澤之實, 器用之資, 皁隸之事, 官司之守, 非君所及也. 公曰, 吾將略地焉, 遂往陳魚而觀之, 僖伯稱疾不從, 書曰, 公矢魚于棠, 非禮也, 且言遠地也.
* 納民於軌物: 軌는 法이고 物은 采이다. 법이 될 만한 것을 軌라 하고, 采가 될 만한 것을 物이라 한다.(軌 法也 物 采也 可法謂之軌 可采謂之物)
* 講事以度軌量謂之軌: 度는 헤아림이고, 軌量은 法度이다. 법도를 헤아린다는 것은 治兵‧祭祀의 법도를 익힘을 이름이다.
* 取材以章物采謂之物: 章은 밝힘이고, 物采는 器具의 빛깔이다. 物采를 드러낸다는 것은 鳥獸를 사냥해 그 材料를 취하여 軍國의 器具를 밝게 장식하는 것이다.
曲沃莊伯, 以鄭人, 邢人, 伐翼, 王使尹氏武氏助之, 翼侯奔隨.
곡옥장백이(曲沃莊伯), 정인과형인으로(以鄭人, 邢人), 익을 치니(伐翼), 왕이(王) 윤씨와 무씨를 시켜(使尹氏武氏) 그를 돕도록 했고(助之), 익후가(翼侯) 수로 도망쳤다(奔隨).
夏葬衛桓公, 衛亂, 是以緩.
여름에(夏) 위환공을 장사 지냈는데(葬衛桓公), 위나라에 난리가 있었고(衛亂), 이 때문에(是以) 늦었다(緩).
四月, 鄭人侵衛牧, 以報東門之役, 衛人以燕師伐鄭, 鄭祭足, 原繁, 洩駕, 以三軍軍其前, 使曼伯與子元, 潛軍軍其後, 燕人畏鄭三軍, 而不虞制人, 六月, 鄭二公子以制人, 敗燕師于北制, 君子曰, 不備不虞, 不可以師.
4월에(四月), 정나라가(鄭人) 위나라 목을 침입해서(侵衛牧, 以) 동문에서의 전쟁을(東門之役) 보복하고(報), 위나라가(衛人) 연나라 군대로(以燕師) 정나라를 치니(伐鄭), 정나라의(鄭) 제족, 원번, 설가각(祭足, 原繁, 洩駕), 삼군을 거느리고(以三軍) 그 앞을 공격하고(軍其前), 만백과 자원으로 하여금(使曼伯與子元), 군사를 은밀하게 하여(潛軍) 그 뒤를 치니(軍其後), 연나라가(燕人) 정나라의 삼군을 두려워하여(畏鄭三軍, 而) 제인을 생각하지 못하고(不虞制人), 6월에(六月), 정나라(鄭) 두 공자가(二公子) 제인으로(以制人), 북제에서(于北制) 연나라 군대를 물리치니(敗燕師), 군자가 말하길(君子曰), 대비하지 못하고(不備) 헤아리지 못했으니(不虞), 군대를 쓰지 못한 것이다(不可以師).
曲沃叛王, 秋, 王命虢公伐曲沃, 而立哀侯于翼.
곡옥이(曲沃) 주왕을 배반하자(叛王), 가을에(秋), 왕이(王) 괵공에게 명하여(命虢公) 곡옥을 치고(伐曲沃, 而) 익에(于翼) 애후를 세웠다(立哀侯).
衛之亂也, 郕人侵衛, 故衛師入郕.
위나라의 변란에(衛之亂也), 성이(郕人) 위나라를 침략했고(侵衛), 그러므로(故) 위나라 군대가(衛師) 성에 들어갔다(入郕).
九月, 考仲子之宮將萬焉, 公問羽數於眾仲, 對曰, 天子用八, 諸侯用六, 大夫四, 士二, 夫舞所以節八音, 而行八風, 故自八以下, 公從之, 於是初獻六羽, 始用六佾也.
9월에(九月), 중자의 집을 짓고(考仲子之宮) 만무를 추려고 하며(將萬焉), 공이(公) 중공에게(於眾仲) 우수를 묻자(問羽數), 대답하기를(對曰), 천자는 8개를 쓰고(天子用八), 제후는 6개를 쓰고(諸侯用六), 대부는 4개를 쓰고(大夫四), 사는 2개를 쓰니(士二), 춤이(夫舞) 8음으로 절주로 삼아(節八音, 而) 8풍을 행하기 때문이고(所以 行八風), 그러므로(故) 8개 아래로는(自八以下), 공이 그것을 따르니(公從之), 이에(於是) 처음(初) 6우를 올리고(獻六羽), 처음(始) 6일을 사용한 것이다(用六佾也).
* 六羽(육우): 여섯 사람씩 列을 지어 6列로 늘어서서 손에 새깃을 들고 춤추던 제후의 樂舞이다.
宋人取邾田, 邾人告於鄭曰, 請君釋憾於宋, 敝邑為道, 鄭人以王師會之, 伐宋, 入其郛, 以報東門之役, 宋人使來告命, 公聞其入郛也, 將救之, 問於使者曰, 師何及, 對曰, 未及國, 公怒, 乃止, 辭, 使者曰, 君命寡人, 同恤社稷之難, 今問諸使者, 曰, 師未及國, 非寡人之所敢知也.
송나라가(宋人) 주나라 땅을 빼앗으니(取邾田), 주나라가(邾人) 정나라에 고하여 말하길(告於鄭曰), 청컨대(請) 군께서(君) 송나라에 대해(於宋) 원한을 풀겠다면(釋憾), 우리가(敝邑) 길이 되려고 한다고 하니(為道), 정나라가(鄭人) 왕의 군대로(以王師) 연합하여(會之), 송나라를 치고(伐宋), 그 외성에 들어가(入其郛, 以) 동문의 전쟁을 보복하니(報東門之役), 송나라가(宋人) 사신을 보내(使) 와서 명을 고하니(來告命), 공이(公) 그들이 외곽에 들어왔다는 것을(其入郛也) 듣고(聞), 장차 송나라를 구원하려고 하며(將救之), 사자에게 물어 말하길(問於使者曰), 군대가 어디에 이르렀는가(師何及)하니, 대답하여 말하길(對曰), 국에 이르지 않았습니다(未及國)라고 했고, 은공이 노하여(公怒), 이에 중지하고(乃止), 거절하며(辭), 사신에게 말하길(使者曰), 임금이(君) 과인에게 명하여(命寡人), 사직의 어려움을(社稷之難) 함께 구휼하자고 했는데(同恤), 지금(今) 사자에게 물으니(問諸使者), 말하길(曰), 군대가(師) 아직 나라에 이르지 않았다고하니(未及國), 과인이(寡人之) 감히 알 것이(所敢知) 아니다(非也)라고 했다.
冬十二月, 辛巳, 臧僖伯卒, 公曰, 叔父有憾於寡人, 寡人弗敢忘, 葬之加一等.
겨울 12월(冬十二月), 신사일에(辛巳), 장희백이 죽자(臧僖伯卒), 공이 말하길(公曰), 숙부가(叔父) 과인에게(於寡人) 원한이 있던 것을(有憾), 과인이(寡人) 잊을 수 없으니(弗敢忘), 그를 장사 지내는 것을(葬之) 한 등급을 더해라(加一等).
宋人伐鄭, 圍長葛, 以報入郛之役也.
송나라가(宋人) 정나라를 치고(伐鄭), 장갈을 포위하고(圍長葛, 以) 외곽에 들어왔던 전쟁을(入郛之役) 보복했다(報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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