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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五書) 읽기/논어집주(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학이(學而) 1-15] 작은 것에 만족하지 말고 나아가라 / 여절여차 여탁여마(如切如磋 如琢如磨)

by मोक्ष 2024.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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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빈이무첨 부이무례 하여)

子貢曰: “가난하지만(貧而) 아첨하지 않고(無諂), 부유하지만(富而) 교만하지 않으면(無驕), 어떻습니까(何如)?”라고 했다.

 

* 何如(하여): 어떤가. 의문문에서 대사 목적어가 동사 앞에 놓인 것으로 如何(여하)와 같다.

 

○ 諂, 卑屈也. 驕, 矜肆也. 常人溺於貧富之中, 而不知所以自守, 故必有二者之病. 無諂無驕, 則知自守矣, 而未能超乎貧富之外也.

○ 첨은(諂), 낮추고 굽히는 것이다(卑屈也). 교는(驕), 뽐내고 으스대는 것이다(矜肆也). 보통사람은(常人) 가난하고 부유한 가운데 빠지면(溺於貧富之中, 而) 자기를 지키는 법을 알지 못하고(不知所以自守), 그러므로(故) 반드시(必) 2가지 병이 있다(有二者之病). 아첨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면(無諂無驕, 則) 자키를 지킬 줄 아는 것이지만(知自守矣, 而) 아직 빈부의 바깥으로(乎貧富之外) 벗어날 수 없다(未能超也).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가야 미약빈이락 부이호례자야)

子曰: “괜찮다(可也). 가난하지만 즐기고(貧而樂), 부유하지만(富而) 예를 좋아하는(好禮者) 것보다 못하다(未若也).”라고 했다.

凡曰可者, 僅可而有所未盡之辭也. 樂則心廣體胖而忘其貧, 好禮則安處善, 樂循理, 亦不自知其富矣. 子貢貨殖, 蓋先貧後富, 而嘗用力於自守者, 故以此爲問. 而夫子答之如此, 蓋許其所已能, 而勉其所未至也.

보통(凡) 가라고 말한 것은(曰可者), 겨우 괜찮지만(僅可而) 아직 다하지 못한 것이 있다는(有所未盡之) 말이다(辭也). 즐거우면(樂則)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져서(心廣體胖而) 그 가난함을 잊고(忘其貧), 예를 좋아하면(好禮則) 편안하게 선에 머무르고(安處善), 순리를 즐기니(樂循理), 또한(亦) 스스로 그 부유함을 알지 못한다(不自知其富矣). 자공이(子貢) 재물을 잘 늘렸고(貨殖), 대체로(蓋) 처음에 가난했다가(先貧) 나중에 부유하게 되어(後富, 而) 일찍이(嘗) 자기를 지키는 것에 힘썼고(用力於自守者), 그러므로(故) 이것으로 질문했다(以此爲問). 그러나(而) 선생님이(夫子) 답한 것이 이와 같으니(答之如此), 대개(蓋) 그 잘하는 것을 인정하고(許其所已能, 而) 그 미치지 못하는 것을 격려했다(勉其所未至也).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시운 여절여차 여탁여마 기사지위여)

子貢曰: “시에 이르길(『詩』云): ‘자른 듯 가는 듯(如切如磋), 쪼갠 듯 문지른 듯(如琢如磨).’이라고 했는데, 아마(其) 이것을 말한 것인가요(斯之謂與)?”라고 했다.

 

* 其斯之謂與(기사지위여): 其(기)는 아마라는 뜻으로 추측을 표시하는 부사, 斯(사)는 앞에 나온 공자의 말을 가리키는 지시대사, 之(지)는 강조 효과를 위하여 목적어를 동사 앞에 놓을 경우 목적어와 동사 사이에 쓰는 구조조사다.

 

○ 『詩』衛風「淇澳」之篇, 言治骨角者, 旣切之而復磋之; 治玉石者, 旣琢之而復磨之, 治之已精, 而益求其精也. 子貢自以無諂無驕爲至矣, 聞夫子之言, 又知義理之無窮, 雖有得焉, 而未可遽自足也, 故引是詩以明之.

○ 시(『詩』) 위풍 기욱 편이고(衛風「淇澳」之篇), 뼈와 뿔을 다스리는 사람은(言治骨角者), 이미(旣) 그것을 자르고도(切之而) 다시 그것을 갈고(復磋之); 옥과 돌을 다스리는 사람은(治玉石者), 이미 그것을 쪼고 나서(旣琢之而) 다시 그것을 문지르니(復磨之), 그것을 다스린 것이(治之) 이미 정밀하지만(已精, 而) 더욱(益) 그 정밀함을 구한 것이다(求其精也). 자공이(子貢) 스스로(自) 아첨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 것을(無諂無驕) 지극하다고 여겼지만(爲至矣),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聞夫子之言), 또(又) 의리가 무궁함을 알았지만(知義理之無窮), 비록(雖) 얻은 것이 있더라도(有得焉, 而) 바로(遽) 스스로 만족할 수 없음을 알았고(未可自足也), 그러므로(故) 이 시를 끌어다가(引是詩以) 그것을 밝혔다(明之).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사야 시가여언시이의) 告諸往而知來者.”(고저왕이지래자)

子曰: “사야(賜也), 비로소(始) 너와 함께(與) 시를 말할 수 있겠구나(言詩已矣)! 지나간 것을 일러주니(告諸往而) 올 것을 아는구나(知來者).”라고 했다.

 

* 賜也始可與言『詩』已矣(사야시가여언시이의): 與(여) 다음에 목적어로서 賜(사)를 가리키는 인칭대사 之(지)가 생략된 형태다. 전치사 '與(여)' '以(이)' '爲(위)'는 왕왕 그다음에 오는 목적어가 생략된다.

* 告諸往(고저왕): 諸(저)는 之(지)와 같은 대사로 賜(사)를 가리킨다.

 

往者, 其所已言者. 來者, 其所未言者.

왕이란(往者), 이미 말한 것이다(其所已言者). 래란(來者), 말하지 않는 것이다(其所未言者).

 

○ 愚按: 此章問答, 其淺深高下, 固不待辨說而明矣. 然不切則磋無所施, 不琢則磨無所措. 故學者雖不可安於小成, 而不求造道之極致; 亦不可騖於虛遠, 而不察切己之實病也.

○ 내가 살피건대(愚按): 이 장의 문답은(此章問答), 그 깊고 얕음과(其淺) 높고 낮음이(深高下), 진실로(固) 변설을 기다리지 않아도(不待辨說而) 분명하다(明矣). 그러나(然) 자르지 않으면(不切則) 가는 것에(磋) 시행할 것이 없고(無所施), 쪼아내지 않으면(不琢則) 문지를 것에(磨) 베풀 것이 없다(無所措). 그러므로(故) 학자는(學者) 비록(雖) 작은 이룸에 안주하여(安於小成, 而) 도를 이루는 극치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고(不可不求造道之極致); 또한(亦) 헛되고 먼 것에 달려가서(騖於虛遠, 而) 자기에게 절실한 실제 병통을(切己之實病)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不可不察 也).

 

* 辨說(변설): 옳고 그름을 가려서 설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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