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子自衛反魯, 息駕于河梁而觀焉河水無梁莊周書說孔子於閭梁言事者通渭水爲河也有懸水三十仞, 八尺曰仞懸二十四丈者也圜流九十里, 圜流迴流也水深急則然魚鱉不能導, 黿鼉不能居道行有一丈夫方將厲之, 厲渡孔子使人並涯止之曰: “此懸水三十仞, 圜流九十里, 魚鱉黿鼉不能居也, 意者難可濟也” 丈夫不以措意, 遂渡而出孔子問之, 曰: “子乎有道術乎, 所以能入而出者, 何也?” 丈夫對曰: “始吾之入也, 先以忠信, 及吾之出也, 又從以忠信, 忠信措吾軀於波流, 而吾不敢以用私, 所以能入而復出也” 孔子謂弟子曰: “二三子識之, 水且猶可以忠信成身親之, 而況於人乎!”
공자가(孔子) 위나라로부터(自衛) 노나라로 돌아오는데(反魯), 작은 다리에서(于河梁) 마차를 세워 쉬며(息駕而) 구경했다(觀焉). 폭포가 하나 있어(有懸水) 30 길이나 되고(三十仞), 둘러싸고 흐르는 것이(圜流) 90 리이며(九十里), 물고기와 자라도(魚鱉) 갈 수 없고(不能導), 큰 자라와 악어도(黿鼉) 살 수 없었다(不能居). 한 장부가 있어(有一丈夫), 막(方) 그것을 건너려고 하니(將厲之), 사람을 시켜(使人) 언덕에 서서(並涯) 그를 막도록 하며 말하길(止之曰): “이 폭포는(此懸水) 30 길이고(三十仞), 물 둘레가 90 리나 되어(圜流九十里), 물고기와 자라, 큰 자라와 악어도 살 수 없는 곳이니(魚鱉黿鼉不能居也), 생각건대(意者) 건너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難可濟也).”라고 했다.
장부가(丈夫) 뜻을 두지 않고(개의치 않고)(不以措意), 마침내(遂) 건너서 나왔다(渡而出).
공자가 그에게 물어 말하길(孔子問之, 曰): “그대에게(子乎) 도술이 있는 것인가(有道術乎),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을(所以能入而出者), 어찌한 것인가(何也)?”라고 했다.
장부가 대답하길(丈夫對曰): “처음에(始) 내가 들어갈 때는(吾之入也), 충과 신으로 먼저 하고(先以忠信), 내가 나올 때도(及吾之出也), 또한(又) 충과 신을 따르니(從以忠信), 충신으로(忠信) 내 몸을(吾軀) 물결에 맡기고(措於波流, 而) 내가(吾) 감히 사사로움을 쓰지 않는 것이(不敢以用私), 쉽게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방법입니다(所以能入而復出也).”라고 했다.
공자가(孔子) 자제들에게 말하길(謂弟子曰): “제자들은(二三子) 이것을 기억해야 하니(識之), 물도 또한(水且) 오히려(猶) 충신이라면(忠信) 몸을 친하게 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데(可以成身親之, 而) 하물며(況) 사람에 있어서는 어떻겠는가(於人乎)!”라고 했다.
* 河梁(하량): 하천(河川)에 놓은 작은 다리.
'공맹의 뒤안길 > 공자가어(孔子家語)'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 8-13] 초왕도강(楚王渡江) - 초왕이 강을 건너다 평실을 얻었다 (0) | 2025.01.06 |
---|---|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 8-12] 공자장행(孔子將行) - 공자의 우산 (0) | 2025.01.06 |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 8-10] 공자지담(孔子之郯) - 공자가 담에 가는 길에 정자를 만났다 (0) | 2025.01.06 |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 8-9] 자로부미(子路負米) / 백리부미(百里負米) - 자로가 부모를 모시는 일에 힘을 다했다 (0) | 2025.01.06 |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 8-8] 종일불권(終日不倦) - 종일토록 싫증 나지 않는 것은 학문 뿐이다 (0) | 2025.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