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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五書) 읽기/맹자집주(孟子集註)

[맹자집주(孟子集註) 맹자서설(孟子序說)] 맹자라는 사람과 책에 대하여

by मोक्ष 2024.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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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史記列傳曰: "孟軻, 《趙氏曰: "孟子, 魯公族孟孫之後." 漢書注云: "字子車." 一說: "字子輿."》 騶人也, 騶亦作鄒, 本邾國也. 受業子思之門人. 子思, 孔子之孫, 名伋. 索隱云: "王劭以人爲衍字." 而趙氏注及孔叢子等書亦皆云: "孟子親受業於子思." 未知是否? 道既通, 趙氏曰: "孟子通五經, 尤長於詩書." 程子曰: "孟子曰: '可以仕則仕, 可以止則止, 可以久則久, 可以速則速.' 『孔子聖之時者也.' 故知易者莫如孟子. 又曰: '王者之跡熄而詩亡, 詩亡然後春秋作.' 又曰: '春秋無義戰.' 又曰: '春秋天子之事』, 故知春秋者莫如孟子." 尹氏曰: "以此而言, 則趙氏謂孟子長於詩書而已, 豈知孟子者哉?" 游事齊宣王, 宣王不能用. 適梁, 梁惠王不果所言, 則見以爲迂遠而闊於事情. 按史記: "梁惠王之三十五年乙酉, 孟子始至梁. 其後二十三年, 當齊湣王之十年丁未, 齊人伐燕, 而孟子在齊." 故古史謂「孟子先事齊宣王後乃見梁惠王·襄王·齊湣王." 獨孟子以伐燕爲宣王時事, 與史記·荀子等書皆不合. 而通鑑以伐燕之歲, 爲宣王十九年, 則是孟子先游梁而後至齊見宣王矣. 然考異亦無他據, 又未知孰是也. 當是之時, 秦用商鞅, 楚魏用吳起, 齊用孫子·田忌. 天下方務於合從連衡, 以攻伐爲賢. 而孟軻乃述唐·虞·三代之德, 是以所如者不合. 退而與萬章之徒序詩書, 述仲尼之意, 作孟子七篇." 趙氏曰: "凡二百六十一章, 三萬四千六百八十五字." 韓子曰: "孟軻之書, 非軻自著. 軻既沒, 其徒萬章·公孫丑相與記軻所言焉耳." 愚按: 二說不同, 史記近是.

1 사기 열전에 이르길(史記列傳曰): "맹가는(孟軻), 

《趙氏曰: "맹자는(孟子), 노나라 공족(魯公族) 맹손의 후손이다(孟孫之後)." 한서 주에 이르길(漢書注云): "자는 자거이고(字子車)." 다른 설에(一說): "자가 자여라고 한다(字子輿)."

추나라 사람이고(騶人也), 

《추는(騶) 또한(亦) 추라고도 적고(作鄒), 본래() 주나라다(本邾國也).

자사의 문인에게 수업을 받았다(受業子思之門人). 

《자사는(子思), 공자의 후손으로(孔子之孫), 이름이 급이다(名伋). 색은에 이르길(索隱云): "왕소가(王劭) 인을(以人) 연자라고 했다(爲衍字)." 그리고(而) 조씨의 주와(趙氏注及) 공총자 등의 책에서(孔叢子等書) 또한(亦) 모두 이르길(皆云): "맹자가(孟子) 자사에게(於子思) 직접 배웠다(親受業)."라고 했다. 누가 옳은지 알 수 없다(未知是否)? 

도가(道) 이미 통하고 나서는(既通), 

趙氏曰: "맹자가(孟子) 오경에 통달했고(通五經), 시와 서에 더욱 뛰어났다(尤長於詩書)." 程子曰: "맹자가 말하길(孟子曰): '벼슬할만하면(可以仕則) 벼슬하고(仕), 그만둘만하면(可以止則) 그만두고(止), 오래 있을 수 있으면(可以久) 오래 있고(則久), 빨리 떠나야 하면(可以速則) 빨리 떠난다(速).'란 것은 '공자가(孔子) 성인인 때의 일이다(聖之時者也).'라고 했다. 그러므로(故) 주역을 안 사람은(知易者) 누구도(莫) 맹자보다 못하다(如孟子). 또 말하길(又曰): '왕자의 자취가 없어지고(王者之跡熄而) 시가 없어졌고(詩亡), 시가 없어지고 나서(詩亡然後) 춘주가 지어졌다(春秋作).'라고 했다. 또 말하길(又曰): '춘추에(春秋) 의로운 전쟁이 없다(無義戰).'라고 했다. 또 말하길(又曰): '춘추는 천자의 일이다(春秋天子之事)'라고 했고, 그러므로(故) 춘추를 아는 사람이(知春秋者) 누구도(莫) 맹자보다 못하다(如孟子)." 尹氏曰: "이것으로 말한다면(以此而言, 則) 조씨가(趙氏) 맹자가 시서에 뛰어났다고 말했을 뿐이니(謂孟子長於詩書而已), 어찌(豈) 맹자를 아는 사람이고 하겠는가(知孟子者哉)?"  

유세하여(游) 제나라 선왕을 섬겼지만(事齊宣王), 선왕이 쓰지 못했다(宣王不能用). 양나라에 가서(適梁), 양혜왕도(梁惠王) 말한 것을 실천하지 못했고(不果所言, 則) 방법이 현실과 거리가 멀고(迂遠而) 사정과 거리가 멀다고(闊於事情) 여김을 받았다(見以爲). 

《사기를 살펴보면(按史記): "양혜왕(梁惠王之) 35년 을유년에(三十五年乙酉), 맹자가(孟子) 비로소(始) 양나라에 이르렀다(至梁). 23년 뒤인(其後二十三年), 제나라 민왕 10년 정미년을 당하여(當齊湣王之十年丁未), 제나라가(齊人) 연나라를 쳤고(伐燕, 而) 맹자가 제나라에 있었다(孟子在齊)."라고 했다. 그러므로(故) 옛 역사책에 말하길(古史) 맹자가(「孟子) 먼저(先) 제선왕을 섬기고(事齊宣王) 나중에(後) 곧(乃) 양혜왕과 양양왕, 제민왕을 만났다(見梁惠王·襄王·齊湣王)라고 했다." 다만(獨) 맹자에서(孟子) 연나라를 친 것을(以伐燕) 제선왕 대의 일로 여기는 것은(爲宣王時事), 사기, 순자 등의 책과(與史記·荀子等書) 모두(皆) 맞지 않는다(不合). 그러나(而) 통감에서는(通鑑) 연나라를 친 때를(以伐燕之歲), 선왕 19년으로 보았고(爲宣王十九年, 則) 이것은(是) 맹자가(孟子) 양나라에서 먼저 유세하고 나서(先游梁而後) 제나라에 이르로(至齊) 선왕을 만나 것이다(見宣王矣). 그러나(然) 고이에(考異) 또(亦) 다른 근거가 없고(無他據), 또(又)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未知孰是也). 

당시에(當是之時), 진나라가(秦) 상앙을등용하고(用商鞅), 초나라와 위나라가(楚魏) 오기를 등용하고(用吳起), 제나라가(齊用) 손자와 전기를 등용했다(孫子·田忌). 천하가(天下) 바야흐로(方) 합종과 연횡에 힘썼고(務於合從連衡), 공격과 정벌을(以攻伐) 훌륭하다고 여겼다(爲賢). 그러나(而) 맹가는(孟軻) 이에(乃) 당우와 삼대의 덕을 기술했고(述唐·虞·三代之德), 이 때문에(是以) 가는 곳에서(所如者) <뜻이> 맞지 않았다(不合). 물러나서(退而) 만장의 무리와 더불어(與萬章之徒) 시와 서를 서술하고(序詩書), 중니의 뜻을 서술해서(述仲尼之意), 맹자 7편을 지었다(作孟子七篇)." 

趙氏曰: "모두(凡) 261장(二百六十一章), 34,685자다(三萬四千六百八十五字)."라고 했다. 한자가 말하길(韓子曰): "맹가의 책은(孟軻之書), 맹가가 혼자 지은 것이 아니다(非軻自著). 맹가가 죽은 뒤에(軻既沒), 그 무리인(其徒) 만장과 공손추가(萬章·公孫丑) 서로(相) 함께(與) 맹가가 말한 것을 기록했을 뿐이다(記軻所言焉耳)."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愚按): 두 설이 같지 않지만(二說不同), 사기가 옳은 듯하다(史記近是).

 

2 韓子曰: "堯以是傳之舜, 舜以是傳之禹, 禹以是傳之湯, 湯以是傳之文·武·周公, 文·武·周公傳之孔子, 孔子傳之孟軻, 軻之死不得其傳焉. 荀與揚也, 擇焉而不精, 語焉而不詳." 《程子曰「韓子此語, 非是蹈襲前人, 又非鑿空撰得出, 必有所見. 若無所見, 不知言所傳者何事.

2 한자가 말하길(韓子曰): "요임금이(堯) 이것을(以是) 순에게 전하고(傳之舜), 순임금이(舜) 이것을 우에게 전하고(以是傳之禹), 우임금이(禹) 이것을 탕에게 전하고(以是傳之湯), 탕임금이(湯) 이것을 문왕과 무왕, 주공에게 전하고(以是傳之文·武·周公), 문왕과 무왕, 주공이(文·武·周公) 공자에게 전했고(傳之孔子), 공자가(孔子) 맹자에게 전했는데(傳之孟軻), 맹자가 죽고(軻之死) 그 전함을 얻을 수 없었다(不得其傳焉). 순자와(荀與) 양웅(揚也), 선택한 것이 있지만(擇焉而) 정순하지 않고(不精), 말했지만(語焉而) 상세하지 않다(不詳)."라고 했다. 

《정자가 말하길(程子曰) 한자가 이것을 말한 것은(韓子此語), 이것이(是) 예전 사람을 답습한 것이 아니고(蹈襲前人), 또(又) 빈말을 꾸며서 나온 것이 아니니(非鑿空撰得出), 반드시(必) 본 것이 있을 것이다(有所見). 만약(若) 본 것이 없다면(無所見), 전한 것을 말한 것이(言所傳者) 무슨 일인지(何事) 알지 못한다(不知).

 

* 鑿空撰造(착공찬조): 터무니없는 빈 말을 꾸며서 만들어 냄.

 

3 又曰: "孟氏醇乎醇者也. 荀與揚, 大醇而小疵." 《程子曰「韓子論孟子甚善. 非見得孟子意, 亦道不到. 其論荀揚則非也. 荀子極偏駁, 只一句性惡, 大本已失. 揚子雖少過, 然亦不識性, 更說甚道."》

3 또 말하길(又曰): "맹씨가(孟氏) 순수하고(醇乎) 순수한 사람이고(醇者也). 순자와 양자가(荀與揚), 크게는 순수하지만(大醇而) 작은 하자가 있다(小疵)." 

《정자가 말하길(程子曰) 한자가(韓子) 맹자가 매우 선하다고 논했다(論孟子甚善). 맹자의 뜻을 얻어 본 것이 아니라면(非見得孟子意), 또한(亦) 말이 이를 수 없다(道不到). 그가(其) 순자와 양자를 논한 것은(論荀揚則) 잘못되었다(非也). 순자는(荀子) 매우(極) 치우치고 순수하지 않아서(偏駁), 단지(只) 성악 한 구절에서(一句性惡), 큰 근본이(大本) 이미 없어졌다(已失). 양자가(揚子) 비록(雖) 허물이 적지만(少過), 그러나(然) 또한(亦) 성을 알지 못했으니(不識性), 다시(更) 說甚道."》

 

4 又曰: "孔子之道大而能博, 門弟子不能遍觀而盡識也, 故學焉而皆得其性之所近. 其後離散, 分處諸侯之國, 又各以其所能授弟子, 源遠而末益分. 惟孟軻師子思, 而子思之學出於曾子. 自孔子沒, 獨孟軻氏之傳得其宗. 故求觀聖人之道者, 必自孟子始." 《程子曰: "孔子言參也魯. 然顏子沒後, 終得聖人之道者, 曾子也. 觀其啟手足時之言, 可以見矣. 所傳者子思·孟子, 皆其學也."》

4 또 말하길(又曰): "공자의 도가(孔子之道) 크지만 넓고(大而能博), 문하 제자가(門弟子) 두루 보고서 다 알 수 없었고(不能遍觀而盡識也), 그러므로(故) 배웠지만(學焉而) 모두(皆) 자기 본성이 가까운 것을 얻었다(得其性之所近). 그 뒤로(其後) 떠나고 흩어져(離散), 제후의 나라에 나뉘어 머물렀는데(分處諸侯之國), 또(又) 각자(各) 자기가 잘하는 것을(以其所能) 제자에게 전했으니(授弟子), 근원이 멀어져서(源遠而) 말단이 더욱 나뉘었다(末益分). 오직(惟) 맹자가(孟軻) 자사를 배웠고(師子思, 而) 자사의 학문이(子思之學) 증자에서 나왔다(出於曾子). 공자가 죽은 뒤로부터(自孔子沒), 오직(獨) 맹씨의 전함이(孟軻氏之傳) 그 으뜸을 얻었고(得其宗). 그러므로(故) 성인의 도를 보기 원하는 사람은(求觀聖人之道者), 반드시(必) 맹자로부터 시작해야 한다(自孟子始)." 

《정자가 말하길(程子曰): "공자가(孔子) 삼은 노둔하다고 말했다(言參也魯). 그러나(然) 안자가 죽은 뒤로(顏子沒後), 끝내(終) 성인의 도를 얻은 사람은(得聖人之道者), 증자다(曾子也). 그 열어서 손발을 보라고 한 말에서(觀其啟手足時之言), 알 수 있다(可以見矣). 전한 것이(所傳者) 자사와 맹자가(子思·孟子), 모두(皆) 그 학문이다(其學也)."라고 했다.》

 

5 又曰: "揚子雲曰: '古者楊墨塞路, 孟子辭而闢之, 廓如也.' 夫楊墨行, 正道廢. 孟子雖賢聖, 不得位. 空言無施, 雖切何補. 然賴其言, 而今之學者尚知宗孔氏, 崇仁義, 貴王賤霸而已. 其大經大法, 皆亡滅而不救, 壞爛而不收. 所謂存十一於千百, 安在其能廓如也?然向無孟氏, 則皆服左衽而言侏離矣. 故愈嘗推尊孟氏, 以爲功不在禹下者, 爲此也." 

5 또 말하길(又曰): "양자운이 말하길(揚子雲曰): '옛날(古者) 양주와 묵적이 길을 막았는데(楊墨塞路), 맹자가 꾸짖고(孟子辭而) 열어서(闢之), 넓혔다(廓如也).'라고 했다. 무릇(夫) 양주와 묵적이 행해지면(楊墨行), 정도가 막힌다(正道廢). 맹자가(孟子) 비록 성현이지만(雖賢聖), 지위를 얻지 못하고(不得位). 빈 말이어서(空言) 시행한 것이 없고(無施), 비록(雖) 간절한 것이(切)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何補). 그러나(然) 그 말을 의지해서(賴其言, 而) 지금의 학자가(今之學者) 아직(尚) 공씨를 종주로 알고(知宗孔氏), 인의를 높이고(崇仁義), 왕도를 귀하게 여기고(貴王) 패도를 천하게 여길 뿐이다(賤霸而已). 그(其) 큰 도리와 큰 법칙이(大經大法), 모두(皆) 없어져서(亡滅而) 구하지 못하고(不救), 무너져 거두지 못했다(壞爛而不收). 이른바(所謂) 천과 백에서(於千百) 열이나 하나가 남았으니(存十一), 그 환하게 넓힌 것은(其能廓如) 어디에 있는가(安在也)? 그러나(然) 이전에(向) 맹씨가 없었다면(無孟氏, 則) 모두(皆)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고(服左衽而) 오랑캐 말을 했을 것이다(言侏離矣). 그러므로(故) 일찍이(愈嘗) 맹씨를 추존하여(推尊孟氏), 공이 우임금 아래 잇지 않다고 여긴 것은(以爲功不在禹下者), 이것 때문이다(爲此也)."라고 했다. 

 

* 大經大法(대경대법):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원리(原理)와 법칙(法則).

* 壞爛(괴란): 무너지고 문드러짐.

 

6 或問於程子曰: "孟子還可謂聖人否?" 程子曰: "未敢便道他是聖人, 然學已到至處." 愚按: 至字, 恐當作聖字.》

6 누군가(或) 정자에게 물어 말하길(問於程子曰): "맹자도(孟子) 또한(還) 성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可謂聖人否)?"라고 했다. 정자가 말하길(程子曰): "감히(敢) 바로(便) 이 사람이 성인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道他是聖人), 그러나(然) 학문이(學) 이미(已) 지극한 곳에 이르렀다(到至處)." 

《내가 생각건대(愚按): 지란 글자는(至字), 마땅히(當) 성으로 써야하지 않을까 싶다(作聖字).》

 

7 程子又曰: "孟子有功於聖門, 不可勝言. 仲尼只說一箇仁字, 孟子開口便說仁義. 仲尼只說一箇志, 孟子便說許多養氣出來. 只此二字, 其功甚多." 

7 정자가 또 말하길(程子又曰): "맹자에게(孟子) 성문에 공이 있지만(有功於聖門), 말을 다할 수 없다(不可勝言). 중니는(仲尼) 다만(只) 인이란 글자 하나로 말했지만(說一箇仁字), 맹자는(孟子) 입을 열어(開口) 다시(便) 인의를 말했다(說仁義). 중니가(仲尼) 다만(只) 지 하나를 말했지만(說一箇志), 맹자가(孟子) 다시(便) 허다한 양기를 말해서(說許多養氣) 내보냈다(出來). 다만(只) 이 두 글자에서(此二字), 그 공로가 매우 많다(其功甚多)."라고 했다. 

 

8 又曰: "孟子有大功於世, 以其言性善也." 

8 또 말하길(又曰): "맹자에게(孟子) 세상에 큰 공이 있으니(有大功於世), 그가 성선을 말했기 때문이다(以其言性善也)."라고 했다.

 

9 又曰: "孟子性善·養氣之論, 皆前聖所未發." 

9 또 말하길(又曰): "맹자의(孟子) 성선과 양기론은(性善·養氣之論), 모두(皆) 앞선 성인이(前聖) 생각해내지 못한 것이다(所未發)."라고 했다. 

 

10 又曰: "學者全要識時. 若不識時, 不足以言學. 顏子陋巷自樂, 以有孔子在焉. 若孟子之時, 世既無人, 安可不以道自任." 

10 또 말하길(又曰): "배우는 사람은(學者) 온전하게(全) 때를 알아야 한다(要識時). 만약(若) 때를 알지 못하면(不識時), 배움을 말할 수 없다(不足以言學). 안자가(顏子) 비루한 거리에서(陋巷) 스스로 즐긴 것은(自樂), 공자가 있었기 때문이다(以有孔子在焉). 만약 맹자 시대라면(若孟子之時), 세상에(世) 이미 <그런> 사람이 없었으니(既無人), 어찌(安) 도로써(以道) 자임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可不自任)."라고 했다. 

 

11 又曰: "孟子有些英氣. 纔有英氣, 便有圭角, 英氣甚害事. 如顏子便渾厚不同, 顏子去聖人只豪髮閒. 孟子大賢, 亞聖之次也." 或曰: "英氣見於甚處?" 曰: "但以孔子之言比之, 便可見. 且如冰與水精非不光. 比之玉, 自是有溫潤含蓄氣象, 無許多光耀也." 

11 또 말하길(又曰): "맹자에게는(孟子) 작은 영기가 있었다(些英氣). 조금이라도(纔) 영기가 있으면(有英氣), 바로(便) 규각이 있고(有圭角), 영기는(英氣) 일에 매우 해롭다(甚害事). 안자와 같다면(如顏子) 바로(便) 혼후해서(渾厚) 같지 않으니(不同), 안자와 성인의 거리가(顏子去聖人) 단지(只) 터럭만큼의 차이다(豪髮閒). 맹자가(孟子) 대현이고(大賢), 아성의 다음이다(亞聖之次也)."라고 했다.

누군가 말하길(或曰): "영기가(英氣) 어느 곳에서 보입니까(見於甚處)?"라고 했다.

말하길(曰): "다만(但) 공자의 말로(以孔子之言) 견주어보면(比之), 바로 알 수 있다(便可見). 또(且) 얼음과 수정같다면(如冰與水精) 빛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非不光). 그것을 옥과 비교하면(比之玉), 바로(自是) 따뜻하고 윤택하며 기상을 품은 것이 있지만(有溫潤含蓄氣象), 허다한 광휘가 없다(無許多光耀也)."라고 했다.  

 

* 英氣(영기): 빼어난 기상.

* 圭角(규각): 말이나 행동()이나 뜻이 남과 서로 맞지 않고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모.

* 渾厚(혼후): 화기() 있고 인정()이 두터움.

 

12 楊氏曰: "孟子一書, 只是要正人心, 敎人存心養性, 收其放心. 至論仁·義·禮·智, 則以惻隱·善惡·辭讓·是非之心爲之端. 論邪說之害, 則曰: '生於其心, 害於其政.' 論事君, 則曰: '格君心之非』, 『一正君而國定』. 千變萬化, 只說從心上來. 人能正心, 則事無足爲者矣. 大學之脩身·齊家·治國·平天下, 其本只是正心·誠意而已. 心得其正, 然後知性之善. 故孟子遇人便道性善. 歐陽永叔卻言『聖人之敎人, 性非所先』, 可謂誤矣. 人性上不可添一物, 堯舜所以爲萬世法, 亦是率性而已. 所謂率性, 循天理是也. 外邊用計用數, 假饒立得功業, 只是人欲之私. 與聖賢作處, 天地懸隔." 

12 양씨가 말하길(楊氏曰): "맹자란 책 한 권은(孟子一書), 다만(只) 바로(是)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아(正人心), 사람을 가르쳐(敎人) 마음을 보존하고 성을 길러(存心養性), 그 방심을 거두려 했다(收其放心). 인의예지를 지극히 논함에 있어서(至論仁·義·禮·智, 則) 측은, 선악, 사양, 시비지심을(以惻隱·善惡·辭讓·是非之心) 단서로 삼았다(爲之端). 요사한 학설의 해로움을 논해서(論邪說之害, 則) 말하길(曰): '그 마음에서 생겨나서(生於其心), 그 정치에 해를 끼친다(害於其政).'라고 했다. 임금 모시는 것을 논하면서(論事君, 則) 말하길(曰): '임금 마음의 그릇된 것을 바로잡고(格君心之非)', 한 번(一)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으면(正君而) 나라가 안정된다(國定)'라고 했다. 천변만화는(千變萬化), 다만(只) 마음을 따라서 온다고 말했다(說從心上來). 사람이(人) 마음을 바르게 할 수 있다면(能正心, 則) 일에(事) 할 것이 없다(無足爲者矣). 대학의(大學之)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脩身·齊家·治國·平天下), 그 근본이(其本) 다만(只) 마음을 바르게 하고(是正心) 뜻을 성실하게 하는 것일 뿐이다(誠意而已). 마음이(心) 바름을 얻고 나서(得其正, 然後) 성이 선한 것을 안다(知性之善). 그러므로(故) 맹자가(孟子) 사람을 만나서(遇人) 곧(便) 성선을 말했다(道性善). 구양수가(歐陽永叔) '성인이 사람을 가르치는 것에서(聖人之敎人), 성은(性) 먼저 할 것이 아니다(非所先)'라고 했지만(卻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다(可謂誤矣). 사람의 성은(人性) 그 위에(上) 한 가지라도 더할 수 없고(不可添一物), 요순이(堯舜) 만세의 법이 되는 까닭도(所以爲萬世法), 또한(亦) 이(是) 솔성일 뿐이다(率性而已). 이른바(所謂) 솔성이란(率性), 천리를 따르는 것이(循天理) 이것이다(是也). 이 밖에(外邊) 계책을 쓰고(用計) 술수를 쓰는 것은(用數), 설사(假饒) 지위를 얻어(立) 공을 세우더라도(得功業), 다만(只) 이것은(是) 인욕의 사사로움이다(人欲之私). 성현이 처하여 짓는 것과 더불어(與聖賢作處), 하늘과 땅만큼(天地) 차이가 뚜렷하다(懸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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