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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五書) 읽기/중용장구(中庸章句)

[중용장구(中庸章句) 20 구경장(애공장)(九經章(哀公章)) 5/5] 박학지 심문지 신사지 명변지 독행지(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

by मोक्ष 2024.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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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박학지 심문지 신사지 명변지 독행지)

널리(博) 배우고(學之), 자세히 묻고(審問之), 신중하게 생각하고(愼思之), 명확하게 분별하고(明辨之), 돈독하게 행한다(篤行之).


此誠之之目也. 學·問·思·辨, 所以擇善而爲知, 學而知也. 篤行, 所以固執而爲仁, 利而行也. 程子曰: “五者廢其一, 非學也.”

이것은(此) 성해지려는 노력의(誠之之) 조목이다(目也). 학, 문, 사, 변은(學·問·思·辨), 선을 택해서(擇善而) 알게 되는(爲知) 방법이니(所以), 배워서 알게 된다(學而知也). 독행은(篤行), 굳게 잡아서 인을 행하는 방법이니(所以固執而爲仁), 이롭게 여겨서(利而) 행한다(行也).

정자가 말하길(程子曰): “다섯 가지 중에서(五者) 그 하나라도 없으면(廢其一), 배움이 아니다(非學也).”라고 했다.

有弗學, 學之弗能弗措也;(유불학 학지불능부조야) 有弗問, 問之弗知弗措也;(유불문 문지부지부조야) 有弗思, 思之弗得弗措也;(유불사 사지부득부조야) 有弗辨, 辨之弗明弗措也;(유불변 변지불명부조야) 有弗行, 行之弗篤弗措也.(유불행 행지부독부조야) 人一能之, 己百之;(일인능지 기백지) 人十能之, 己千之.(인십능지 기천지)

배우지 않음이 있을 수 있지만(有弗學), 배우면(學之) 잘하지 못하고서(弗能) 그만두지 않고(弗措也); 묻지 않음이 있을 수 있지만(有弗問), 물으면 알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고(問之弗知弗措也); 생각하지 않음이 있을 수 있지만(有弗思), 생각하면 얻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고(思之弗得弗措也); 변별하지 않음이 있을 수 있지만(有弗辨), 변별하면 밝아지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고(辨之弗明弗措也); 행하지 않음이 있을 수 있지만(有弗行), 행하면 돈독하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는다(行之弗篤弗措也). 남이(人) 한 번 할 수 있으면(一能之), 나는 백 번을 하고(己百之); 남이 열 번을 할 수 있으면(人十能之), 나는 천 번을 한다(己千之).


君子之學, 不爲則已, 爲則必要其成, 故常百倍其功. 此困而知·勉而行者也, 勇之事也.

군자의 배움은(君子之學), 하지 않으면(不爲則) 그만이지만(已), 한다면(爲則) 반드시(必) 그 이룸이 필요하고(要其成), 그러므로(故) 늘(常) 그 공부를 백 배로 한다(百倍其功). 이것은(此) 곤란해져서 알고(困而知) 힘써서 행하는 것이니(勉而行者也), 용의 일이다(勇之事也).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强.”(과능차도의 수우필명 수유필강)

과연(果) 이 도를 잘 할 수 있으면(能此道矣), 비록(雖) 어리석더라도(愚) 반드시 밝아지고(必明), 비록 연약하더라도(雖柔) 반드시 강해진다(必强).”


明者, 擇善之功. 强者, 固執之效. 呂氏曰: “君子所以學者, 爲能變化氣質而已. 德勝氣質, 則愚者可進於明, 柔者可進於强. 不能勝之, 則雖有志於學, 亦愚不能明, 柔不能立而已矣. 蓋均善而無惡者, 性也, 人所同也; 昏明强弱之稟不齊者, 才也, 人所異也. 誠之者, 所以反其同而變其異也. 夫以不美之質, 求變而美, 非百倍其功, 不足以致之. 今以鹵莽滅裂之學, 或作或輟, 以變其不美之質, 及不能變, 則曰天質不美, 非學所能變. 是果於自棄, 其爲不仁甚矣!”

명이란(明者), 선을 택하는 효과이다(擇善之功). 강이란(强者), 굳게 지키는 효과이다(固執之效).

여씨가 말하길(呂氏曰): “군자가(君子) 배우는 까닭은(所以學者),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어서 뿐이다(爲能變化氣質而已). 덕이(德) 기질을 이기면(勝氣質, 則) 어리석은 사람도(愚者) 밝음에 나아갈 수 있고(可進於明), 연약한 사람도(柔者) 강함에 나아갈 수 있다(可進於强). 이길 수 없다면(不能勝之, 則) 비록(雖) 배움에 뜻이 있더라도(有志於學), 또한(亦) 어리석은 사람이(愚) 밝아질 수 없고(不能明), 유약함=한 사람이(柔) 설 수 없을 뿐이다(不能立而已矣). 대체로(蓋) 선을 같이 하고(均善而) 악이 없는 것은(無惡者), 성이고(性也),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고(人所同也); 어둡고 밝으며(昏明) 강하고 약한(强弱之) 기품이 같지 않은 것은(稟不齊者), 재질이니(才也), 사람이(人) 다른 것이다(所異也). 성실하게 하는 것은(誠之者), 그 같음으로 돌아가서(反其同而) 그 다름을 변화시키는 것이다(所以變其異也). 무릇(夫) 좋지 못한 기질로(以不美之質), 변화를 구해서 좋게 되는 것은(求變而美), 그 공부를 백 배로 하지 않으면(非百倍其功), 이를 수 없다(不足以致之). 지금(今) 거칠고 간단한 배움으로(以鹵莽滅裂之學), 혹 시작하기도 하고(或作) 혹 그만두기도 하며(或輟), 그 아름답지 못한 기질을 변화시키다가(以變其不美之質), 변할 수 없음에 이르면(及不能變, 則) 타고난 자질이 아름답지 못한 것은(天質不美), 배움이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非學所能變)라고 한다(曰). 이것은(是) 스스로 포기하는 것에(於自棄) 과감한 것이니(果), 그 불인을 행하는 것이 심한 것 아니겠는가(其爲不仁甚矣)!”라고 했다.

 

* 鹵莽(노망): 거칠고 서투름. 

* 滅裂(멸렬): 찢기고 흩어져 없어짐. 


右第二十章. 此引孔子之言, 以繼大舜·文·武·周公之緖, 明其所傳之一致, 擧而措之, 亦猶是爾. 蓋包費隱, 兼小大, 以終十二章之意. 章內語誠始詳, 而所謂誠者, 實此篇之樞紐也.

이상은(右) 제12장이다(第二十章).

이것은(此) 공자의 말을 인용해서(引孔子之言), 대순, 문왕, 무왕, 주공의 단서를 이어(以繼大舜·文·武·周公之緖), 그 전한 것이 같고(其所傳之一致), 들어서(擧而) 놓으면(措之), 또한(亦) 이와 같을 뿐임을(猶是爾) 밝혔다(明). 대체로(蓋) 비은을 포함하고(包費隱), 소대를 겸해서(兼小大, 以) 12장의 뜻을 마쳤다(終十二章之意). 장 안에서(章內) 성을 말한 것이(語誠) 비로소 상세하니(始詳, 而) 이른바(所謂) 성이란(誠者), 실로(實) 이 편의 중요한 부분이다(此篇之樞紐也).


又按『孔子家語』亦載此章, 而其文尤詳. 成功一也之下, 有“公曰: 子之言美矣!至矣! 寡人實固不足以成之也.” 故其下復以‘子曰’起答辭. 今無此問辭, 而猶有‘子曰’二字, 蓋子思刪其繁文以附于篇, 而所刪有不盡者, 今當爲衍文也. 博學之以下, 『家語』無之, 意彼有闕文, 抑此或子思所補也歟?

또(又) 공자거어를 살펴보면(按『孔子家語』) 또한(亦) 이 장을 실었고(載此章, 而) 그 글이 더욱 상세하다(其文尤詳). 성공일야의 아래에(成功一也之下), 애공이(公曰): "그대의 말이 아름답구나(子之言美矣)! 지극하구나(至矣)! 과인이(寡人) 실로(實) 고루하여(固) 이룰 수가 없구나(不足以成之也).”라고 한 것이 있다(有). 그러므로(故) 그 아래에서(其下) 다시(復) 자왈로(以‘子曰’) 답한 말을 일으켰다(起答辭). 지금(今) 여기에는(此) 묻는 말이 없지만(問辭, 而) 자왈 두 글자가 있는 것과 같으니(猶有‘子曰’二字), 대개(蓋) 자사가(子思) 그 번잡한 글을 삭제하고(刪其繁文以) 편에 붙여서(附于篇, 而) 삭제한 것에(所刪) 다하지 못한 것이 있는 듯하고(有不盡者), 지금(今) 마땅히(當) 연문이 되어야 한다(爲衍文也). 박학지 이하는(博學之以下), 가어에(『家語』) 없고(無之), 짐작건대(意) 저기(가어)에(彼) 빠진 글이 있거나(有闕文), 아니면(抑) 여기에(此) 혹(或) 자사가 보충한 것이 있는 것인가(子思所補也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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