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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 뒤안길/효경주소(孝經注疏)

[효경주소(孝經注疏) 어제서병주(御製序并注) (9-3)] 성인의 시대와 멀어질수록 원류와 멀어졌다 [거성유원 원류익별(去聖逾遠 源流益別)]

by मोक्ष 2023.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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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魯史《春秋》, 學開五傳. (고노사춘추 학개오전)

그러므로(故) 노나라 역사 춘추는(魯史《春秋》), 학파가(學) 5개의 전으로 갈라졌고(開五傳). 


【疏】正義曰: 「故」者因上起下之語. 夫子約魯史《春秋》, 學開五傳者, 謂名專巳學, 以相敎授, 分經作傳, 凡有五家. 開則分也. 

【疏】正義曰: 고란(故者) 위를 이어받아(因上) 아래를 일으키는 말이다(起下之語). 부자께서(夫子) 노나라 역사 춘추를 집약하고(約魯史《春秋》), 학파가(學) 다섯 개의 전을 열었다는 것은(開五傳者), 각자(名) 자기가 배운 것에 전념하여(專巳學, 以) 서로 가르치고 받아서(相敎授), 경을 나누어(分經) 전을 지은 것이(作傳), 모두(凡) 5파가 있다는 말이다(有五家). 개란(開則) 나누었다는 뜻이다(分也).

 

五傳者, 案《漢書·藝文志》云: 《左氏傳》三十卷, 左丘明, 魯大史也. 《公羊傳》十一卷, 公羊子, 齊人, 名高, 受經於子夏. 《穀梁傳》十一卷, 穀梁子, 魯人, 名赤, 糜信云: 與秦孝公同時; 《七錄》云: 名俶, 字元始; 《風俗通》云: 子夏門人. 《鄒氏傳》十一卷, 《漢書》云: 王吉善《鄒氏春秋》. 《夾氏傳》十一卷, 有錄無書. 其鄒·夾二家, 鄒氏無師, 夾氏未有書, 故不顯于世, 葢王莽時亡失耳. 

오전이란(五傳者), 한서 예문지를 살펴보면(案《漢書·藝文志》云): 좌씨전이 30권이고(《左氏傳》三十卷), 좌구명은(左丘明), 노나라 태사다(魯大史也). 공양전이 11권이고(《公羊傳》十一卷), 공양자는(公羊子), 제나라 사람이고(齊人), 이름이 고이고(名高), 자하에게서(於子夏) 경을 받았다(受經). 곡량전은 11권이고(《穀梁傳》十一卷), 곡량자는(穀梁子), 노나라 사람이고(魯人), 이름이 적이고(名赤,) 미신이 말하길(糜信云): 진나라 효공과 더불어(與秦孝公) 같은 시대이고(同時); 칠록에서 말하길(《七錄》云): 이름은 숙이고(名俶), 자는 원시이고(字元始); 풍속통에서 말하길(《風俗通》云): 자하의 문인이라고 했다(子夏門人). 추씨전이 11권이고(《鄒氏傳》十一卷), 한서에 이르길(《漢書》云): 왕길선의(王吉善) 추씨춘추라고 했다(《鄒氏春秋》). 협씨전이 11권이고(《夾氏傳》十一卷), 기록은 있으나(有錄) 책이 없다(無書). 그(其) 추와 협 2가는(鄒·夾二家), 추씨에는(鄒氏) 스승이 없고(無師), 협씨에는(夾氏) 책이 있지 않고(未有書), 그러므로(故)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으니(不顯于世), 대체로(葢) 왕망 때(王莽時) 없어졌을 것이다(亡失耳). 

《國風》·《雅》·《頌》, 分爲四詩, 

《國風》·《雅》·《頌》, 分爲四詩, 


【疏】正義曰: 《詩》有《國風》·《小雅》·《大雅》·《周頌》·《魯頌》·《商頌》, 故曰《國風》·《雅》·《頌》. 四詩者, 《毛詩》·《韓詩》·《齊詩》·《魯詩》也. 《毛詩》自夫子授卜商, 傳至大毛公名享, 大毛公授毛萇, 趙人, 爲河間獻王博士. 先有子夏《詩傳》一卷, 萇各置其篇端, 存其作者. 
【疏】正義曰: 시에는(《詩》) 국풍, 소아, 대아, 주송, 노송, 상송이 있고(有《國風》·《小雅》·《大雅》·《周頌》·《魯頌》·《商頌》), 그러므로(故) 국풍, 아, 송이라고 한다(《國風》·《雅》·《頌》). 사시란(四詩者), 모시, 한시, 제시, 노시다(《毛詩》·《韓詩》·《齊詩》·《魯詩》也). 모시는(《毛詩》) 공자가(夫子) 상복에게 전하고(授卜商)부터(自), 전하여(傳) 대모공에 이르렀는데(至大毛公) 이름이 형이고(名享), 대모공이(大毛公) 모장에게 전하니(授毛萇), 조나라 사람으로(趙人), 하간헌왕의 박사가 되었다(爲河間獻王博士). 처음에(先) 자하 시전(子夏《詩傳》) 1권이 있었는데(一卷), 모장(萇) 각가(各) 그 편의 서두에 두어(置其篇端), 그 작가를 남겨두었다(存其作者).

 

至後漢大司農鄭玄爲之箋, 是曰《毛詩》. 《韓詩》者, 漢文帝時博士燕人韓嬰所傳, 武帝時與董仲舒論於上前, 仲舒不能難. 至晉無人傳習, 是曰《韓詩》. 《齊詩》者, 漢景帝時博士淸河太傅轅固生所傳, 號《齊詩》, 傳夏侯始昌, 昌授后蒼輩, 門人尢盛. 後漢陳元方亦傳之, 至西晉亡, 是曰《齊詩》. 《魯詩》者, 漢武帝時魯人申公所述, 以經爲訓詁敎之, 無傳, 疑者則闕, 號爲《魯詩》. 

후한(後漢) 대사농 정현에 이르러(大司農鄭玄) 그것에 주를 내었으니(爲之箋), 이것을(是) 모시라한다(曰《毛詩》). 한시란(《韓詩》者), 한 문제 때(漢文帝時) 박사인(博士) 연나라 사람 한영이(燕人韓嬰) 전을 지은 것으로(所傳), 무제 때(武帝時) 동중서와 더불어(與董仲舒) 임금 앞에서 논했는데(論於上前), 동중서가 논란(대적)하지 못했다(仲舒不能難). 진나라에 이르러(至晉) 전하여 익힌 사람이 없었는데(無人傳習), 이것을(是) 한시라 한다(曰《韓詩》). 제시란(《齊詩》者), 한나라 경제 때(漢景帝時) 박사인(博) 청하왕의 태전(淸河太傅) 원고생이 전한 것으로(轅固生所傳), 제시라고 불렀는데(號《齊詩》), 하후시창에게 전하고(傳夏侯始昌), 시창이(昌) 후창의 무리에게 전하고(授后蒼輩), 문인이(門人) 더욱 번성했다(尢盛). 후한의(後漢) 진원방도(陳元方) 또한 전했는데(亦傳之), 서진에 이르러 없어졌고(至西晉亡), 이것을(是) 제시라고 한다(曰《齊詩》). 노시란(《魯詩》者), 한나라 무제 때(漢武帝時) 노나라 사람(魯人) 신공이 기록한 것으로(申公所述), 경전을(以經) 훈고로 삼아(爲訓詁) 가르쳤는데(敎之), 전해진 것이 없고(無傳), 의심 나는 것은(疑者則) 비워두었으니(해석하지 않았으니)(闕), 호칭이(號) 노시다(爲《魯詩》). 



去聖逾遠, 源流益別. (거성유원 원류익별)

성인과의 거리가(去聖) 더욱 멀어지니(逾遠), 원류가(源流) 더욱(益) 갈라졌다(別). 


【疏】正義曰: 逾, 越也. 百川之木曰源, 水行曰流, 增多曰益. 言秦漢而下, 上去孔子聖越遠. 《孝經》本是一源, 諸家增益, 別爲衆流, 謂其文不同也. 

【疏】正義曰: 유(逾)는, 뛰어넘는다는 뜻이다(越也). 모든 물의 근본을(百川之木) 원이라 하고(曰源), 물이 흐르는 것을(水行) 류라 하고(曰流), 많아지는 것을(增多) 익이라 한다(曰益). 진한 이후로(言秦漢而下), 위로(上) 성인인 공자와의 거리가(去孔子聖) 더욱 멀어졌다(越遠). 효경이(《孝經》) 본래(本是) 한 근원이었는데(一源), 제가가(諸家) 더욱 많아지고(增益), 갈라짐이(別) 많은 흐름이 되니(爲衆流), 그 글이 같지 않다는 말이다(謂其文不同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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