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夏禮, 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 吾能言之, 宋不足徵也.(하례오능언지 기부족징야 은례오능언지 송부족징야) 《包曰: "徵, 成也. 杞·宋, 二國名, 夏·殷之後. 夏·殷之禮, 吾能說之, 杞·宋之君不足以成也."》 文獻不足故也. 足, 則吾能徵之矣."(문헌부족고야 족즉오능징지의) 《鄭曰: "獻, 猶賢也. 我不以禮成之者, 以此二國之君文章賢才不足故也."》
子曰: "하나라 예는(夏禮), 내가 말할 수 있지만(吾能言之), 기나라가(杞) 이루기에 부족하고(不足徵也). 은나라 예는(殷禮), 내가 말할 수 있지만(吾能言之), 송나라가 이루기에 부족하다(宋不足徵也). 《包曰: "징은(徵), 이룸이다(成也). 기와 송은(杞·宋), 두 나라의 이름이고(二國名), 하나라와 은나라의 후손이다(夏·殷之後). 하나라와 은나라의 예는(夏·殷之禮), 내가 말할 수 있지만(吾能說之), 기나라와 송나라의 임금이(杞·宋之君) 이룰 수 없다(不足以成也)."》 문장과 어진 사람이(文獻) 부족하기 때문이니(不足故也). 충분하다면(足, 則) 내가 그것을 이룰 수 있다(吾能徵之矣)." 《鄭曰: "헌은(獻), 어진 사람과 같다(猶賢也). 내가(我) 예로 그것을 이룰 수 없는 것은(不以禮成之者), 이 두 나라 임금의(以此二國之君) 문장과 현명함이(文章賢才) 부족하기 때문이다(不足故也)."》
[疏]‘子曰’至‘徵之矣’
○正義曰: 此章言夏‧商之後, 不能行先王之禮也.
○正義曰: 이 장은(此章) 하나라와 상나라의 후손이(夏‧商之後), 선왕의 예를 행하지 못하는 것을(不能行先王之禮) 말했다(言也).
‘夏禮 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 [吾能]言之 宋不足徵也’者, 徵, 成也, 杞‧宋二國, 言夏‧殷之後也. 孔子言夏‧殷之禮, 吾能說之, 但以杞‧宋之君闇弱, 不足以成之也.
[‘夏禮 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 [吾能]言之 宋不足徵也’者], 징은(徵), 이룸이니(成也), 기와 송 두 나라가(杞‧宋二國), 하나라와 상나라의 후손이라는 말이다(言夏‧殷之後也). 공자가(孔子) 하나라와 은나라의 예는(夏‧殷之禮), 내가 말할 수 있지만(吾能說之), 다만(但) 기나라와 송나라의 임금이(杞‧宋之君) 어둡고 나약하기 때문에(以闇弱),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不足以成之) 말이다(言也).
‘文獻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者, 此又言不足徵之意. 獻, 賢也. 孔子言我不以禮成之者, 以此二國之君, 文章賢才不足故也.
[‘文獻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者], 이것은(此) 또한(又) 증명하기에 부족하다는 뜻을 말했다(言不足徵之意). 헌은(獻), 어진 사람이다(賢也). 공자는(孔子) 내가(我) 예로써 이룰 수 없는 것은(不以禮成之者), 두 나라 임금의(以此二國之君), 문장과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文章賢才不足故) 말했다(言也).
[疏]○注 ‘包曰’至‘成也’
○正義曰: ‘徵 成’ 釋詁文. 云 ‘杞宋 二國名 夏殷之後’者 樂記云 “武王克殷, 下車而封夏后氏之後於杞, 封殷之後於宋.” 是也.
○正義曰: ‘징은(徵) 이룸이다(成)’란 것은 석고의 글이다(釋詁文).
[云 ‘杞宋 二國名 夏殷之後’者] 악기에 이르길(樂記云) “무왕이(武王) 은을 정복하고(克殷), 수레에서 내려(下車而) 하후씨의 후손을(夏后氏之後) 기에 봉하고(封於杞), 은의 후손을 송에 봉했다(封殷之後於宋).”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是也).
'오서(五書) 읽기 > 논어주소(論語注疏)'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논어주소(論語注疏) 팔일(八佾) 3-11] 천하를 대하는 것이 손바닥을 보는 것 같다 / 지기장(指其掌) (0) | 2024.04.10 |
---|---|
[논어주소(論語注疏) 팔일(八佾) 3-10] 울창주를 붓고 나서는 보고 싶지 않다 / 오불욕관지(吾不欲觀之) (0) | 2024.04.09 |
[논어주소(論語注疏) 팔일(八佾) 3-8] 예로써 나중에 사람이 완성된다 / 회사후소(繪事後素) (0) | 2024.04.08 |
[논어주소(論語注疏) 팔일(八佾) 3-7] 활쏘기에서 다투는 것이라면 군자답다 / 기쟁야군자(其爭也君子) (0) | 2024.04.07 |
[논어주소(論語注疏) 팔일(八佾) 3-6] 태산의 신이 어찌 임방보다 못하겠는가 / 려어태산(旅於泰山) (0) | 2024.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