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서(五書) 읽기/논어주소(論語注疏)

[논어주소(論語注疏) 팔일(八佾) 3-10] 울창주를 붓고 나서는 보고 싶지 않다 / 오불욕관지(吾不欲觀之)

by मोक्ष 2024. 4. 9.
반응형

子曰: "禘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체자기관이왕자 오불욕관지의) 《孔曰: "禘祫之禮, 爲序昭穆, 故毁廟之主及羣廟之主皆合食於太祖. 灌者, 酌鬱鬯灌於太祖, 以降神也. 旣灌之後, 列尊卑, 序昭穆. 而魯逆祀, 躋僖公, 亂昭穆, 故不欲觀之矣."》

子曰: "체 제사에서(禘) 강신주를 붓고 난 뒤의 것부터는(自旣灌而往者), 나는(吾) 보고 싶지 않다(不欲觀之矣)." 《孔曰: "조상을 합쳐서 제사 지내는 예는(禘祫之禮), 서목의 순서를 위한 것이고(爲序昭穆), 그러므로(故) 훼묘의 신주와(毁廟之主及) 군묘의 신주를(羣廟之主) 모두(皆) 태조묘에 함께 모셨다(食於太祖). 관이란(灌者), 울창주를(酌鬱鬯) 태조묘에 부어(灌於太祖, 以) 신을 내려오도록 하는 것이다(降神也). 울창주 붓기를 마치고 난 뒤에(旣灌之後), 높고 낮음을 배열하고(列尊卑), 소목에 따라 순서를 짓는다(序昭穆). 그러나(而) 노나라는(魯) 역사해서(逆祀), 희공을 위로 올려(躋僖公), 소목을 어지럽혔고(亂昭穆), 그러므로(故) 보고 싶지 않았다(不欲觀之矣)."》

 

* 禘祫(체협): 조상(祖上)의 영혼(靈魂)을 합쳐 제사(祭祀)지내는 것.

* 合食: 合祀이다. 여러 신주를 한 곳에 모셔놓고서 제사함이다.

* 逆祀(역사): 신주의 위차를 뒤바꿔 배치하고서 지낸 제사를 이른다. 魯나라 僖公은 閔公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으니, 그 신주의 위차가 민공의 뒤에 있는 것이 당연한데, 文公이 자기 아버지 희공이 민공의 형이라 하여 민공의 신주를 아래로 내리고 희공의 신주를 민공의 신주 위에 모시고서 제사 지냈다.

 

[疏]‘子曰 禘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

○正義曰:此章言魯禘祭非禮之事. 禘者, 五年大祭之名. 灌者, 將祭酌鬱鬯於太祖以降神也. 旣灌之後, 列尊卑, 序昭穆. 而魯逆祀, 躋僖公, 亂昭穆. 故孔子曰 “禘祭自旣灌已往, 吾則不欲觀之也.”

[疏]○注 ‘孔曰’至‘觀之’

○正義曰: 云 ‘禘祫之禮 爲序昭穆 故毁廟之主及群廟之主 皆合食於太祖’者, 鄭玄曰 “魯禮, 三年喪畢, 而祫於太祖, 明年春, 禘於群廟. 自爾之後, 五年而再殷祭, 以遠主初始入祧, 新死之主, 又當與先君相接. 故禮因是而爲大祭, 以審序昭穆, 故謂之禘. 禘者, 諦也, 言使昭穆之次, 審諦而不亂也.”

○正義曰: [云 ‘禘祫之禮 爲序昭穆 故毁廟之主及群廟之主 皆合食於太祖’者], 정현이 말하길(鄭玄曰) “노나라의 예에(魯禮), 삼 년상을 마치고(三年喪畢, 而) 태조묘에게 합사하고(祫於太祖), 다음 해 봄에(明年春), 군묘에서 체 제사를 지낸다(禘於群廟). 이 뒤로부터(自爾之後), 5년이 지나면(五年而) 은제를 두 번 지내고(再殷祭, 以) 원조의 신주가(遠主) 비로소(初始) 조묘에 들어가고(入祧), 신사자의 신주가(新死之主), 또(又) 선군와 서로 만난다(當與先君相接). 그러므로(故) 예에서(禮) 이것을 따라서(因是而) 큰제사를 지내고(爲大祭, 以) 소목의 순서를 살피도록 했고(審序昭穆), 그러므로(故) 체라고 한다(謂之禘). 체란(禘者), 살핌이니(諦也), 소목의 순서에 따라서(使昭穆之次), 자세히 살펴서(審諦) 어지러움이 없도록 하는 것을(不亂) 말한다(也).”라고 했다.

 

祫者, 合也. 文二年公羊傳曰 “大祫者何, 合祭也. 其合祭奈何, 毁廟之主, 陳于太祖, 未毁廟之主, 皆升合食於太祖.” 是也.

협은(祫者), 합침이다(合也). 공양전 문공 2년에 말하길(文二年公羊傳曰) “대사란 무엇인가(大祫者何), 합쳐서 제사 지내는 것이다(合祭也). 그 제사를 합치는 것은 어찌하는가(其合祭奈何), 훼묘의 신주를(毁廟之主), 태조묘에 진열하고(陳于太祖), 아직 헐지 않은 묘의 신주를(未毁廟之主), 모두(皆) 태조묘에 합사 한다(升合食於太祖).”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是也).

 

云 ‘灌者 酌鬱鬯灌於太祖以降神’者, 郊特牲云 “周人尙臭, 灌用鬯臭. 鬱合鬯, 臭陰達於淵泉, 灌以圭璋, 用玉氣也. 旣灌, 然後迎牲, 致陰氣也.” 鄭注云 “灌, 謂以圭瓚酌鬯, 始獻神也.” 鬱, 鬱金草, 釀秬爲酒, 煮鬱金草和之. 其氣芬芳調暢, 故曰鬱鬯. 言未殺牲, 先酌鬱鬯酒灌地, 以求神於太祖廟也.

[云 ‘灌者 酌鬱鬯灌於太祖以降神’者], 예기 교특생에 이르길(郊特牲云) “주나라는(周人) 향취를 숭상해서(尙臭), 강신할 때(灌) 울창주의 향을 썼다(用鬯臭). 울금초에(鬱) 기장술을 합하면(合鬯), 향기가(臭) 아래로(陰) 연천에 이르고(達於淵泉), 부을 때(灌) 규석으로 하는 것은(以圭璋), 옥기를 쓰는 것이다(用玉氣也). 붓고 나서(旣灌, 然後) 희생을 맞이하는 것은(迎牲), 음기에 이르는 것이다(致陰氣也).”라고 했다.

정현이 이르길(鄭注云) “관은(灌), 규석으로(以圭) 울창주를 떠서(瓚酌鬯), 처음(始) 신에게 바치는 것을(獻神) 말한다(也).”라고 했다. 울은(鬱), 울금초이고(鬱金草), 기장으로 빚은 것이(釀秬爲) 술이니(酒), 울금초를 삶아(煮鬱金草) 섞는다(和之). 그 향기가(其氣芬芳) 막힘 없이 퍼지고(調暢), 그러므로(故) 울창이라 한다(曰鬱鬯). 희생을 죽이기 전에(未殺牲), 먼저(先) 울창주를 떠서(酌鬱鬯酒) 땅에 붓고(灌地, 以) 태조묘에 신이 오기를 요청하는 것을(求神於太祖廟) 말한다(也).

 

云 ‘旣灌之後 列尊卑 序昭穆’者, 言旣灌地降神之後, 始列木主, 以尊卑陳列太祖前, 太祖東鄕, 昭南鄕, 穆北鄕. 其餘孫從王父, 父曰昭, 子曰穆. 昭取其鄕明, 穆取其北面尙敬. 三年一祫, 五年一禘, 禘所以異於祫者, 毁廟之主陳於太祖, 與祫同, 未毁廟之主, 則各就其廟而祭也.

[云 ‘旣灌之後 列尊卑 序昭穆’者], 이미 땅에 술을 붓고(言旣灌地) 신이 내려온 뒤에(降神之後), 비로소(始) 신주를 세우고(列木主), 존비로 구분해서(以尊卑) 태조묘에 진열하고(陳列太祖前), 태조는 동으로 향하고(太祖東鄕), 소는 남으로 향하고(昭南鄕), 목은 북으로 향한다(穆北鄕). 그 나머지 자손은(其餘孫) 왕부(조부)를 따르는데(從王父), 부는 소이고(父曰昭), 자는 목이고(子曰穆). 소는(昭) 밝음을 향한 것에서 취했고(取其鄕明), 목은(穆) 북면해서 공경을 중시하는 것에서 취했다(取其北面尙敬). 3년에 한 번 협제를 지내고(三年一祫), 5년에 한 번 체제를 지내니(五年一禘), 체 제사가(禘) 협 제사와 다른 것은(所以異於祫者), 훼묘의 신주가(毁廟之主) 태조묘에 진열되는 것은(陳於太祖), 협 제사와 같지만(與祫同), 헐지 않은 묘의 신주는(未毁廟之主, 則) 각자(各) 그 묘에 나아가(就其廟而) 제사 지낸다(祭也).

 

云 ‘而魯逆祀 躋僖公 亂昭穆 故不欲觀之’者, 春秋 “文二年秋八月丁卯, 大事于太廟, 躋僖公.” 公羊傳曰 “躋者何, 升也.
何言乎升僖公, 譏. 何譏爾, 逆祀也.” 何休云 “升, 謂西上禮. 昭穆, 指父子. 近取法春秋,惠公與莊公, 當同南面西上, 隱‧桓與閔‧僖, 亦當同北面西上, 繼閔者在下. 文公緣僖公於閔公爲庶兄, 置僖公於閔公上, 失先後之義, 故譏之.” 是知當閔在僖上. 今升僖先閔, 故云 “逆祀.” 二公位次之逆, 非昭穆亂也. 此注云 “亂昭穆.” 及魯語云 “將躋僖公, 宗有司曰 ‘非昭穆也.’ 弗忌曰 ‘我爲宗伯, 明者爲昭, 其次爲穆, 何常之有.’” 如彼所言, 又似閔僖異昭穆者, 位次之逆, 如昭穆之亂, 假昭穆以言之, 非謂異昭穆也. 若兄弟相代, 卽異昭穆, 設今兄弟四人皆立爲君, 則祖父之廟, 卽已從毁. 知其理必不然, 故先儒無作此說. 以此逆祀失禮, 故孔子不欲觀之也.

[云 ‘而魯逆祀 躋僖公 亂昭穆 故不欲觀之’者], 춘추에(春秋) “문공 2년 가을 8월 정묘일에(文二年秋八月丁卯), 태묘에서 크게 모시면서(大事于太廟), 희공을 올렸다(躋僖公).”라고 했다. 공양전에서 말하길(公羊傳曰) “제란 무엇인가(躋者何), 올린 것이다(升也). 어째서(何) 희공을 올렸다고 말하는가(言乎升僖公), 비난한 것이다(譏). 어찌(何) 비난하는가(譏爾), 역사이기 때문이다(逆祀也).”라고 했다.

하휴가 말하길(何休云) “승은(升), 서쪽의 위로 올린 예를 말한다(謂西上禮). 소목은(昭穆), 부자를 가리킨다(指父子). 가까이(近) 춘추에서 법을 취하면(取法春秋), 혜공과 장공은(惠公與莊公), 마땅히(當) 함께(同) 남면하고(南面) 서쪽을 상위로 삼았고(西上), 은공과 환공, 민공과 희공은(隱‧桓與閔‧僖), 또한(亦) 마땅히(當) 함께(同) 북면하고(北面) 서쪽을 상위로 삼았으니(西上), 민공을 이은 사람이(繼閔者) 아래에 있다(在下). 문공은(文公) 희공이 ㅏ민공에 대해(僖公於閔公) 서형이 된다는 이유로(爲庶兄), 희공을 민공 위에 두어(置僖公於閔公上), 선후의 뜻을 잃었고(失先後之義), 그러므로 비판했다(故譏之).”라고 했다. 이것은(是) 마땅히(當) 민공이(閔) 희공 위에 있어야 함을(在僖上) 알 수 있다(知). 지금(今) 희공을 올려(升僖) 민공보다 앞세웠고(先閔), 그러므로 역사라고 했다(故云 “逆祀.”) 이공의 자리 순서가 바뀐 것은(二公位次之逆), 소목이 어지러워진 것은 아니다(非昭穆亂也).

此注云 “亂昭穆.” 及魯語云 “將躋僖公, 宗有司曰 ‘非昭穆也.’ 弗忌曰 ‘我爲宗伯, 明者爲昭, 其次爲穆, 何常之有.’” 如彼所言, 又似閔僖異昭穆者, 位次之逆, 如昭穆之亂, 假昭穆以言之, 非謂異昭穆也. 若兄弟相代, 卽異昭穆, 設今兄弟四人皆立爲君, 則祖父之廟, 卽已從毁. 知其理必不然, 故先儒無作此說. 以此逆祀失禮, 故孔子不欲觀之也.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