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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 뒤안길/공자가어(孔子家語)

[공자가어(孔子家語) 상노(相魯) 1] 공자가 처음 벼슬길에 오르다 / 공자초사(孔子初仕)

by मोक्ष 2024.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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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初仕, 爲中都宰. 制爲養生送死之節. 長幼異食, 强弱異任, 男女別塗; 路無拾遺, 器不彫僞; 爲四寸之棺, 五寸之槨, 因丘陵爲墳, 不封不樹. 行之一年, 而西方之諸侯則焉. 定公謂孔子曰: "學子此法, 魯國何如?" 孔子對曰: "雖天下可乎! 何但魯國而已哉?" 

공자가(孔子) 처음 벼슬길에 올라(初仕), 중도의 읍재가 되었다(爲中都宰). 산 사람을 봉양하고(爲養生) 죽은 사람을 보내는(送死之) 예절을(節) 만들었다(制). 어른과 아이가(長幼) 먹는 것을 다르게 하고(異食),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强弱) 맡은 일을 다르게 하고(異任), 남자와 여자가(男女) <다니는> 길을 구별하니(別塗);

길에서(路) 남이 잃어버린 것을 줍는 사람이 없고(無拾遺), 기물이(器) 거짓으로 꾸며지지 않았고(不彫僞); 4치의 관과 5치의 곽을 만들고(爲四寸之棺, 五寸之槨), 구릉을 이용해(因丘陵) 무덤을 만들고(爲墳), 봉분을 만들지 않고(不封) 나무를 심지 않았다(不樹). 시행한 것이(行之) 일 년이 지나자(一年, 而) 서방의 제후가(西方之諸侯) 본받았다(則焉).

정공이(定公) 공자에게 말하길(謂孔子曰): "그대의 이 법을 배워(學子此法), 노나라를 다스린다면(魯國) 어떻겠는가(何如)?"라고 했다.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길(孔子對曰): "비록(雖) 천하를 다스리더라도 할 수 있습니다(天下可乎)! 어찌(何) 단지(但) 노나라 뿐이겠습니까(魯國而已哉)?"라고 했다. 

 

* 拾遺(습유): 남이 잃어버린 것을 주움, 빠진 것을 보충(補充)함.

 

於是二年, 定公以爲司空. 乃別五土之性, 而物各得其所生之宜, 咸得厥所. 先時, 季氏葬昭公于墓道之南; 孔子溝而合諸墓焉, 謂季桓子曰: "貶君以彰己罪, 非禮也. 今合之, 所以掩夫子之不臣." 由司空爲魯大司寇, 設法而不用, 無姦民. 

이에(於是) 2년이 지나(二年), 정공아 사공으로 삼았다(定公以爲司空). 곧(乃) 다섯 가지 땅의 성질을 구별해서(別五土之性, 而) 만물이(物) 각자(各) 자라기에 알맞은 땅을 얻어(得其所生之宜), 모두 잘 자라게 되었다(咸得厥所).

앞서(先時), 계씨가(季氏) 소공을(昭公) 묘도의 남쪽에(于墓道之南) 장사 지냈는데(葬);

공자가 도랑을 파고(孔子溝而) 모든 묘를 합치고(合諸墓焉), 계환자에게 말하길(謂季桓子曰): "임금을 폄하해서(貶君以) 자기 죄를 드러내는 것은(彰己罪), 예가 아닙니다(非禮也). 지금, 합치는 것이(今合之), 그대(계환자)가 신하답지 못했던 것을 덮는 방법입니다(所以掩夫子之不臣)."라고 했다.

사공에서(由司空) 노나라 대사구가 되어(爲魯大司寇), 법을 제정했지만(設法而) 쓰지 않더라도(不用), 범하는 백성이 없었다(無姦民). 

 

* 五土之性(오토지성): 주에서는 '첫째 山林, 둘째 川澤, 셋째 丘陵, 넷째 墳衍, 다섯째 原隰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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