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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 뒤안길/효경주소(孝經注疏)

[효경주소(孝經注疏)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 (2/6)] 증자가 공자를 모시고 앉아 있었다 [중니거 증자시(仲尼居 曾子侍)]

by मोक्ष 2023.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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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효의 구체적인 강령이 정립되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증삼이 이미 효도로 명성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증삼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형식을 빌어 효의 강령을 나열해서 일러주었다. 

 

仲尼居, (중니거)

중니(공자)가 한가로이 <집에> 있을 때(仲尼居), 

 

【注】 仲尼, 孔子字. 居, 謂閒居. 

중니는(仲尼), 공자의 자다(孔子字). 거는(居), 한가로이 머무는 것을 말한다(謂閒居). 

 

曾子侍, (증자시)

증자가 모시고 있었고(曾子侍),

 

【注】  曾子, 孔子弟子. 侍, 謂侍坐. 

증자는(曾子), 공자 제자다(孔子弟子). 시는(侍), 모시고 앉아 있는 것을 말한다(謂侍坐). 


【疏】仲尼居, 曾子侍. 正義曰: 夫子以六經設敎, 隨事表名. 雖道由孝生, 而孝綱未擧, 將欲開明其道, 垂之來裔. 以曾參之孝, 先有重名, 乃假因閒居, 爲之陳說. 自摽己字, 稱'仲尼居'; 呼參爲子, 稱'曾子侍'. 建此兩句, 以起師資問荅之體, 似若別有承受而記錄之. 

【疏】仲尼居, 曾子侍. 正義曰: 부자가(夫子) 육경으로(以六經) 가르침을 베풀 때(設敎), 일을 따라서(隨事) 명분을 드러냈다(表名). 비록(雖) 도가 효로 말미암아(道由孝) 생겼지만(生, 而) 효의 강령이(孝綱) 아직 거론되지 않았으므로(未擧), 장차(將) 그 밝은 도를 열어(開明其道), 후세의 자손들에게(來裔) 내리고자 했다(欲垂之). 증삼의 효가(以曾參之孝), 이미(先) 무거운 이름이 있었기에(有重名, 乃) 한가로이 머무는 틈을 이용해서(因閒居), 그에게 나열하여 일러주는 것으로(爲之陳說) 가정한 것이다(假). 스스로(自) 자신의 자를 드러내어(摽己字), 중니거라고 칭했고(稱'仲尼居'); 증삼을 자라고 불러(呼參爲子), 증자시라고 칭했다(稱'曾子侍'). 이 두 구절을 세워(建此兩句, 以) 스승과 제자가(師資) 묻고 답하는 예절을(問荅之體) 일으켜서(시작해서)(起), 마치(似若) 따로(別) 받들어 이은 것이 있는 것처럼(有承受而) 그것을 기록했다(記錄之).

 

來裔(내예): 후세(後世)의 자손(子孫).  

* 陳說(진설): 나열하여 말하다. 

師資(사자): 1. 스승과 제자(弟子)의 관계(關係), 2. 스승으로 삼고 의지(依支)함.

承受(승수): (윗사람의 명령(命令)을) 받들어 이음.

 

○注仲尼至閒居. ○正義曰: 云'仲尼, 孔子字'者, 案《家語》云: "孔子父叔梁紇, 娶顔氏之女徵在. 徵在旣往廟見, 以夫年長, 懼不時有男, 而私禱尼丘山以祈焉. 孔子故名丘, 字仲尼. 夫伯仲者, 長幼之次也. 仲尼有兄字伯, 故曰仲." 

○중니부터 한거까지(注仲尼至閒居). ○正義曰: 중니는 공자의 자라고 말한 것은(云'仲尼, 孔子字'者), 살피건대(案) 가어에 이르기를(《家語》云): "공자의 아버지(孔子父) 숙량흘이(叔梁紇), 안씨의 딸 징재에게 장가들었다(娶顔氏之女徵在). 징재가(徵在) 사당에 가서(往廟) 뵈고 나서(旣見), 남편의 나이가 많아서(以夫年長), 제때 아이가 있지 못할까(不時有男) 걱정하고(, 而) 남몰래(私) 니구산에서 기도하고(禱尼丘山以) 빌었다(祈焉). 공자는(孔子) 이 때문에(故) 이름을 구라 하고(名丘), 자가 중니다(字仲尼). 무릇(夫) 백과 중이란(伯仲者), 어른과 아이의 차례를 나타낸다(長幼之次也). 중니에게(仲尼) 형이 있어(有兄) 자가 백이고(字伯), 그러므로 중이라고 했다(故曰仲)."라고 했다.

 

其名則案桓六年《左傳》: "申繻曰: 名有五, 其三曰以類命爲象." 杜注云: "若孔子首象尼丘, 蓋以孔子生而汙頂, 象尼邱山, 故名丘, 字仲尼." 而劉瓛述張禹之義, 以爲仲者中也, 尼者和也. 言孔子有中和之德, 故曰仲尼. 殷仲文又云: "夫子深敬孝道, 故稱表德之字." 及梁武帝又以丘爲娶, 以尼爲和. 今並不取. 

그 이름이라면(其名則) 살펴보면(案) 환공 6년 좌전에(桓六年《左傳》): "신수가 말하길(申繻曰): 이름에는(名) 다섯 가지가 있고(有五), 그 셋째가(其三) 비슷한 부류로 하는 것을(以類命) 상으로 삼는다고 한다(爲象)."라고 했다. 두주에서 이르길(杜注云): "공자의 머리가(孔子首) 니구산을 닮은 것과(象尼丘) 같은 경우고( 若), 대체로(蓋) 공자가 태어나면서(以孔子生而) 정수리가 움푹 파여(汙頂), 니구산을 닮았고(象尼邱山), 그러므로(故) 이름은 구라 하고(名丘), 자는 중니라 했다(字仲尼)."라고 했다. 그러나(而) 유환은(劉瓛) 장우의 주장을 기술하여(述張禹之義), 중이란 가운데이고(仲者中也), 니란 화의 뜻이라고(尼者和) 했다(以爲也). 공자에게(孔子) 중화의 덕이 있고(有中和之德), 그러므로(故) 중니라고 했다는(曰仲尼) 말이다(言). 은중문이 또 말하길(殷仲文又云): "부자가(夫子) 효의 도리를(孝道) 깊이 공경했고(深敬), 그러므로(故) 덕을 드러내는 자를(表德之字) <효경에서> 칭했다(稱)."라고 했다. 양무제에 이르러(及梁武帝) 또(又) 구를(以丘) 취하다는 뜻으로 여기고(爲娶), 니를(以尼) 조화롭다는 뜻으로 여겼다(爲和). 지금은(今) 모두(並) 취하지 않는다(不取).

 

仲尼之先, 殷之後也. 案《史記·殷本紀》曰: "帝嚳之子契爲堯司徒, 有功, 堯封之於商, 賜姓子氏. 契後世孫湯滅夏而爲天子, 至湯裔孫有位無道. 周武王殺之, 封其庶兄微子啟於宋." 案《家語》又《孔子世家》皆云: "孔子其先宋人也. 宋閔公有子弗父何, 長而當立, 讓其弟厲公. 何生宋父周, 周生世子勝, 勝生正考父, 正考父受命爲宋卿, 生孔父嘉. 嘉別爲公族, 故其後以孔爲氏." 或以爲用乙配子, 或以滴溜穿石, 其言不經, 今不取也. 孔父嘉生木金父, 木金父生皐夷父, 皐夷父生防叔, 避華氏之禍而奔魯. 防叔生伯夏, 伯夏生叔梁紇, 紇生孔子也. 

중니의 선조는(仲尼之先), 은나라의(殷之) 후손이다(後也). 살피건대(案) 사기 은본기에서 말하길(《史記·殷本紀》曰): "제곡의 아들(帝嚳之子) 계가(契) 요의 사도가 되었고(爲堯司徒), 공이 있어(有功), 요가(堯) 그를 상에 봉했고(封之於商), 성으로 자씨를 내렸다(賜姓子氏). 계의 후손인(契後世孫) 탕이(湯) 하나라를 멸하고 천자가 되어(滅夏而爲天子), 탕의 먼 후손에 이르러(至湯裔孫) <천자의> 지위에 있으면서 도가 없었다(有位無道). 주나라 무왕이(周武王) 그를 죽이고(殺之), 그 서자 미자 계를其庶兄微子啟) 송나라에 봉했다(於宋)."라고 했다. 살피건대(案) 가어와(《家語》又) 공자세가에서 모두 이르길(《孔子世家》皆云): "공자는(孔子) 그 선조가(其先) 송나라 사람이다(宋人也). 송나라 민공에게(宋閔公) 자식 불아가가 있었는데(有子弗父何), 장성해서(長而) 마땅히 왕위에 올라야 했지만(當立), 그 동생 려공에게 양보했다(讓其弟厲公). 가는(何) 송보주를 낳았고(生宋父周), 주는(周) 세자 승을 낳았고(生世子勝), 승은(勝) 정고보를 낳았고(生正考父), 정고보가(正考父) 명을 받아(受命) 송나라 경이 되었고(爲宋卿), 공보가를 낳았다(生孔父嘉). 가가(嘉) 별도로(別) 공족이 되었고(爲公族), 그러므로(故) 그 후손이(其後) 공을 성씨로 삼았다(以孔爲氏)."라고 했다. 누군가는(或) 을자를 써서 자와 배합했다고(用乙配子) 여기거나(以爲), 누군가는(或) 떨어지는 물방울로(以滴溜) 바위를 뚫었다고(穿石) 하는데, 그 말이(其言) 도리에 맞지 않으니(不經), 지금(今) 취할 것이 없다(不取也). 공보가는(孔父嘉) 목금보를 낳고(生木金父), 목금보는(木金父) 고이보를 낳고(生皐夷父), 고이보는(皐夷父) 방숙을 낳고(生防叔), 화씨의 화를 피해(避華氏之禍而) 노나라로 도망 왔다(奔魯). 방숙이(防叔) 백하를 낳고(生伯夏), 백하가(伯夏) 숙량흘을 낳고(生叔梁紇), 흘이(紇) 공자를 낳았다(生孔子也).

 

云'居, 謂閒居'者, 《古文孝經》云'仲尼閒居', 蓋爲乘閒居而坐, 與《論語》云'居! 吾語汝'義同, 而與下章'居則致其敬'不同. 

'거는(居), 한가로이 머무는 것을 말한다(謂閒居)'라고 말한 것은(者), 고문효경에 이르길(《古文孝經》云) '중니가 한가로이 머물 때(仲尼閒居)'라고 했고, 대체로(蓋) 한가로이 머물 때를 틈타(爲乘閒居而) 앉아 있는 것이고(坐), 논어에서 말한(《論語》云) '앉아라(居)! 내가 너희에게 말하겠다(吾語汝)'와 더불어(與) 뜻이 같고(義同, 而) 아래 장의(下章) '거처할 때는(居則) 그 공경을 다한다(致其敬)'와 더불어(與) 같지 않다(不同). 

 

帝嚳(제곡): 옛날 중국(中國)의 오제(五帝)의 한 사람. 황제(黃帝)의 증손(曾孫)이요, 요()의 할아버지라고도 함. 전욱을 보좌(補佐輔佐)하여 그 공으로 신() 땅에 봉하였다가 다시 전욱의 뒤를 이어서 박() 땅에 도읍(都邑)하였으므로 고신씨(高辛氏)라 일컬음.

裔孫(예손): 대수(代數)가 먼 자손(子孫), 裔(예): 후손.

* 滴(적): 물방울, 溜(류): 낙숫물

 

○注曾子至侍坐. ○正義曰: 云'曾子, 孔子弟子'者, 案《史記·仲尼弟子傳》稱: "曾參, 南武城人, 字子輿, 少孔子四十六歲. 孔子以爲能通孝道, 故授之業, 作《孝經》, 死於魯." 故知是仲尼弟子也. 

○증자부터 시좌까지(注曾子至侍坐). ○正義曰: 증자는 공자제라고 말한 것은(云'曾子, 孔子弟子'者), 살피건대(案) 사기 중니제자 전에서 칭하길(《史記·仲尼弟子傳》稱): "증삼은(曾參), 남무성 사람이고(南武城人), 자는 자여고(字子輿), 공자보다 16세 어렸다(少孔子四十六歲). 공자가(孔子) 효도에 달통했다고 여겼고(以爲能通孝道), 그러므로(故) 그에게 공부를 전해주어(授之業), 효경을 지었고(作《孝經》), 노나라에서 죽었다(死於魯)."라고 했다. 그러므로(故) 이 사람이(是) 공자 제자임을 알 수 있다(仲尼弟子也).

 

云'侍, 謂侍坐'者, 言侍孔子而坐也. 案古文云'曾子侍坐', 故知侍謂侍坐也. 卑者在尊側曰侍, 故經謂之侍. 凡侍有坐有立, 此曾子侍即侍坐也. 《曲禮》有侍坐於先生, 侍坐於所尊, 侍坐於君子. 據此而言, 明侍坐於夫子也. 

시는 '모시고 앉은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云'侍, 謂侍坐'者), 공자를 모시고(侍孔子而) 앉아 있었다는 말이다(坐也). 살피건대(案) 고문에서 '증자시좌'라고 했고(古文云'曾子侍坐'), 그러므로(故) 시가 시좌를 말한 것임을(侍謂侍坐) 알 수 있다(也). <지위> 낮은 사람이(卑者) 높은 사람 옆에 있는 것을(在尊側) 시라고 하고(曰侍), 그러므로(故) 경에서(經) 시라고 말했다(謂之侍). 무릇 시에는(凡侍) 앉아 있는 것과(有坐) 서있는 것이 있으니(有立), 여기에서(此) 증자가(曾子) 모신 것은(侍) 곧(即) 모시고 앉은 것이다(侍坐也). 곡례에(《曲禮》) 선생님을(於先生) 모시고 앉아 있음(有侍坐), 존자를 모시고 앉아 있음(侍坐於所尊), 군자를 모시고 앉아 있음이 있다(侍坐於君子). 이것에 근거해서 말하면(據此而言), 부자를 모시고 앉아 있었음이 분명하다(明侍坐於夫子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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