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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五書) 읽기/논어집주(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옹야(雍也) 6-2]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 / 안연이 배우기를 좋아했다

by मोक्ष 2024.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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哀公問: “弟子孰爲好學?”(애공문 제자숙위호학)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공자대왈 유안회자호학 불천노 불이과 불행단명사의)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금야즉무 미문호학자야)

애공이 묻기를(哀公問): “제자 가운데(弟子) 누가(孰) 배우기를 좋아합니까(爲好學)?”라고 했다.

공자가 대답하길(孔子對曰): “안연이란 사람이 있어(有顔回者) 배우기를 좋아했는데(好學),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不遷怒), 잘못을 두 번 하지 않았습니다(不貳過). 불행히도(不幸) 명이 짧아 죽었습니다(短命死矣)! 지금은(今也則) 없고(亡),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未聞好學者也).”

○ 遷, 移也. 貳, 復也. 怒於甲者, 不移於乙; 過於前者, 不復於後. 顔子克己之功至於如此, 可謂眞好學矣. 短命者, 顔子三十二而卒也. 旣云今也則亡, 又言未聞好學者, 蓋深惜之, 又以見眞好學者之難得也.

○ 천은(遷), 옮김이다(移也). 이는(貳), 다시 함이다(復也). 갑에게 화난 것을(怒於甲者), 을에게 옮기지 않고(不移於乙); 전에 잘못한 것을(過於前者), 나중에 다시 하지 않는다(不復於後). 안자의(顔子) 극기의 고이(克己之功) 이와 같음에 이르렀으니(至於如此), 참으로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말할만하다(可謂眞好學矣). 단명이란(短命者), 안자가(顔子) 32살에 죽은 것이다(三十二而卒也). 이미(旣) 지금은 없고(云今也則亡), 또(又)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듣지 못했다고 말했으니(言未聞好學者), 대체로(蓋) 참으로 안타깝게 여기고(深惜之), 또(又) 이것으로(以)_ 참으로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을(眞好學者之) 얻기 어렵다는 것을(難得) 알 수 있다(也).

○ 程子曰: “顔子之怒, 在物不在己, 故不遷. 有不善未嘗不知, 知之未嘗復行, 不貳過也.”

○ 程子曰: “안자의 노여움은(顔子之怒), 외물(상대)에 있고(在物) 자기에게 있지 않고(不在己), 그러므로 옮기지 않는다(故不遷). 불선이 있으면(有不善) 알지 못한 적이 없고(未嘗不知), 아는 것은(知之) 다시 행하지 않았으니(未嘗復行), 잘못을 두 번 하지 않았다(不貳過也).”

又曰: “喜怒在事, 則理之當喜怒者也, 不在血氣則不遷. 若舜之誅四凶也, 可怒在彼, 己何與焉. 如鑑之照物, 姸媸在彼, 隨物應之而已, 何遷之有?”

又曰: “기쁨과 노여움은(喜怒) 일에 있으면(在事, 則) 이치로 보아(理之) 마땅히(當) 기뻐하고 노여워해야 하고(喜怒者也), 혈기에 있지 않으면(不在血氣則) 옮기지 않는다(不遷). 예를 들면(若) 순임금이 사흉을 죽인 것은(舜之誅四凶也), 화낼 만한 것이(可怒) 저들에게 있었으니(在彼), 내가(己) 무엇을 관여하겠는가(何與焉). 마치(如) 거울이 외물을 비추면(鑑之照物), 고움과 추함은 저것에 있고(姸媸在彼), 외물을 따라서(隨物) 응할 뿐이니(應之而已), 무엇을 옮기겠는가(何遷之有)?”

又曰: “如顔子地位, 豈有不善? 所謂不善, 只是微有差失. 纔差失便能知之, 纔知之便更不萌作.”

又曰: “안자의 지위와 같다면(如顔子地位), 어찌(豈) 불선이 있겠는가(有不善)? 이른바(所謂) 불선은(不善), 단지(只) 작은 것에(是微) 차실이 있는 것이다(有差失). 조금의(纔) 차실이 있으면(差失) 곧(便) 알 수 있고(能知之), 조금 알면(纔知之) 곧(便) 다시(更) 싹트지 않도록 했다(不萌作).”

張子曰: “慊於己者, 不使萌於再.”

張子曰: “자기에게 흡족하지 않은 것은(慊於己者), 다시 싹트지 않도록 했다(不使萌於再).”

或曰: “詩書六藝, 七十子非不習而通也, 而夫子獨稱顔子爲好學. 顔子之所好, 果何學歟?” 程子曰: “學以至乎聖人之道也.” “學之道奈何?” 曰: “天地儲精, 得五行之秀者爲人. 其本也眞而靜. 其未發也五性具焉, 曰仁, 義, 禮, 智, 信. 形旣生矣, 外物觸其形而動於中矣. 其中動而七情出焉, 曰喜, 怒, 哀, 懼, 愛, 惡, 欲. 情旣熾而益蕩, 其性鑿矣. 故學者約其情使合於中, 正其心, 養其性而已. 然必先明諸心, 知所往, 然後力行以求至焉. 若顔子之非禮勿視, 聽, 言, 動, 不遷怒貳過者, 則其好之篤而學之得其道也. 然其未至於聖人者, 守之也, 非化之也. 假之以年, 則不日而化矣. 今人乃謂聖本生知, 非學可至, 而所以爲學者, 不過記誦文辭之間, 其亦異乎顔子之學矣.”

누군가 말하길(或曰): “시서육예는(詩書六藝), 70 제자가(七十子) 익히고 통하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非不習而通也, 而) 부자가(夫子) 오직(獨) 안자가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칭찬했다(稱顔子爲好學). 안자가 좋아한 것이(顔子之所好), 과연(果) 어떤 배움이었는가(何學歟)?”

정자가 말하길(程子曰): “배워서(學以) 성인에 이르는(至乎聖人之) 길이 있다(道也).”라고 했다.

“배움의 길은(學之道) 어떠합니까(奈何)?”라고 했다.

<정자가> 말하길(曰): “하늘과 땅이(天地) 정기를 쌓아(儲精), 오행의 빼어남을 얻은 것이(得五行之秀者) 사람이다(爲人). 그 근본이(其本也) 참되고 고요하다(眞而靜). 그 드러나지 않을 때(其未發也) 오성이 갖추어졌으니(五性具焉), 인의예지신이다(曰仁, 義, 禮, 智, 信). 드러나서(形) 생기고 나면(旣生矣), 외물이(外物) 그 형체에 접촉하고(觸其形而) 마음에서 움직인다(動於中矣). 그 움직이는 가운데(其中動而) 칠정이 나오니(七情出焉), 희노애구애오욕이다(曰喜, 怒, 哀, 懼, 愛, 惡, 欲). 칠정이 이미 왕성해서(情旣熾而) 더욱 끓으면(益蕩), 그 성이 파인다(其性鑿矣). 그러므로(故) 학자는(學者) 그 정을 요약해서(約其情) 중도에 맞도록 하고(使合於中), 그 마음을 바르게 해서(正其心), 성을 기를 뿐이다(養其性而已). 그러나(然) 반드시(必) 먼저(先) 마음에서 밝혀서(明諸心), 갈 곳을 알고 나서(知所往, 然後) 힘써 행해서(力行以) 도달함을 구해야 한다(求至焉). 안자의 비례물시, 물동, 물청, 물언 같은 것은(若顔子之非禮勿視, 聽, 言, 動), 화를 옮기지 않고 잘못을 다시 하지 않는 것은(不遷怒貳過者, 則) 그 좋아함이 독실하고(其好之篤而) 배우는 것이(學之) 그 도를 얻는 것이다(得其道也). 그러나(然) 그가(其) 성인에 이르지 못한 것은(未至於聖人者), 지킨 것이고(守之也), 변화한 것이 아니어서다(非化之也). 몇 해를 더할 수 있었다면(假之以年, 則) 하루가 되지 않아(不日而) 변했을 것이다(化矣). 지금(今) 사람들이(人) 이에(乃) 성인은 본래 생지라고 말하고(謂聖本生知), 배워서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非學可至, 而) 배우는 것이(所以爲學者), 기송이나 문사의 사이에 불과하니(不過記誦文辭之間), 이것도 또한(其亦) 안자의 배움과 다르다(異乎顔子之學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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