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서(五書) 읽기/논어집주(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옹야(雍也) 6-13] 맹지반불벌(孟之反不伐) / 맹지반이 공을 자랑하지 않았다

by मोक्ष 2024. 5. 29.
반응형

子曰: “孟之反不伐,(맹지반불벌)

子曰: “맹지반이(孟之反) 공을 자랑하지 않았는데(不伐),


孟之反, 魯大夫, 名側. 胡氏曰: “反卽莊周所稱孟子反者是也.” 伐, 誇功也.

맹지반은(孟之反), 노나라 대부로(魯大夫), 이름은 측이다(名側).

胡氏曰: “반은 곧(反卽) 장주가 이른바(莊周所稱) 맹자반이(孟子反者) 이 사람이다(是也).” 벌은(伐), 공을 떠벌리는 것이다(誇功也).

奔而殿. 將入門,(분이전 장입문)

도망쳐서(奔而) 후위에 섰다(殿). 장차 문을 들어오면서(將入門),


○ 奔, 敗走也. 軍後曰殿.

策其馬, 曰: ‘非敢後也, 馬不進也.’”(책기마왈 비감후야 마부진야)

그 말을 채찍질하며(策其馬), 말하길(曰): ‘감히 뒤에 서려던 것이 아니라(非敢後也), 말이(馬) 나아가지 않았다(不進也).’”


策, 鞭也. 戰敗而還, 以後爲功. 反奔而殿, 故以此言自揜其功也. 事在哀公十一年.

책은(策), 채찍질이다(鞭也). 싸움에 져서(戰敗而) 돌아오면서(還), 뒤에 서는 것을(以後) 공으로 삼는다(爲功). 도망치면서(反奔而) 뒤에 섰고(殿), 그러므로(故) 이런 말로(以此言) 스스로(自) 그 공을 가렸다(揜其功也). 일이(事) 애공 11년에 있다(在哀公十一年).


○ 謝氏曰: “人能操無欲上人之心, 則人欲日消, 天理日明, 而凡可以矜己誇人者, 皆無足道矣. 然不知學者欲上人之心無時而忘也, 若孟之反, 可以爲法矣.”

○ 謝氏曰: “사람이(人) 남의 위에 있으려 함이 없는 마음을(無欲上人之心) 잡을 수 있으면(能操, 則) 인욕의 날로 사라지고(人欲日消), 천리가 날로 밝아져서(天理日明, 而) 무릇(凡) 자기를 뽐내고 남에게 자랑할만한 것이(可以矜己誇人者), 모두(皆) 말할 것도 없다(無足道矣). 그러나(然)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은(不知學者) 남의 위에 서려는 마음이(欲上人之心) 언제든 잊는 일이 없으니(無時而忘也), 만약 맹지반과 같다면(若孟之反), 본받을만하다(可以爲法矣).”

 

* 맹지반은 노나라의 대부였다. 春秋左傳(춘추좌전)에는 孟之側(맹지측)으로 되어 있다. 左傳 哀公(애공) 11년의 기록에 의하면, 노나라가 이웃의 강대국인 제나라와 전쟁을 치르게 되자 孟孺子(맹유자)가 右將軍(우장군)이 되고 冉求(염구)가 左將軍(좌장군)이 되어 출전했는데 맹유자가 싸워보지도 않고 후퇴해서 도읍으로 도망쳤다. 제나라의 두 장수가 泗水(사수)를 건너 우군을 추격해왔고, 이때 우군 장수 중 한 사람이었던 맹지반이 병사들이 안전하게 후퇴할 수 있도록 군대의 후미를 엄호하며 성문으로 들어왔다. 

 

* 伐은 자기를 내세우고 공로를 자랑하거나 과장하는 것이다. 奔은 패해서 도망가는 것이다. 殿은 군대의 후미를 가리킨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