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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五書) 읽기/논어집주(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옹야(雍也) 6-28] 능근취비(能近取譬) / 천지만물과 소통하는 것이 인이다

by मोक्ष 2024.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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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여유박시어민이능제중 하여) 可謂仁乎?”(가위인호)

자공이 말하길(子貢曰): “만약(如) 백성에게 널리 베풀고(博施於民而) 많은 사람을 구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能濟衆), 어떤가요(何如)? 인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可謂仁乎)?”라고 했다.


○ 博, 廣也. 仁以理言, 通乎上下. 聖以地言, 則造其極之名也. 乎者, 疑而未定之辭.

○ 박은(博), 넓음이다(廣也). 인은(仁) 이치로 말한 것이고(以理言), 상하에 통한다(通乎上下). 성은(聖) 지위로 말한 것이고(以地言, 則) 그 지극함에 이른 것의(造其極之) 이름이다(名也). 호란(乎)者, 의심하면서(疑而) 단정하지 않는 말이다(未定之辭).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하사어인 필야성호) 堯舜其猶病諸!(요순기유병저)

子曰: “어찌(何) 인에 일삼을 것이겠는가(事於仁), 굳이 말한다면(必也) 성일 것이다(聖乎)! 유순도(堯舜) 아마 오히려(其猶) 그것에 부족하다고 여겼을 것이다(病諸)!


病, 心有所不足也. 言‘此何止於仁, 必也聖人能之乎! 則雖堯舜之聖, 其心猶有所不足於此也.’ 以是求仁, 愈難而愈遠矣.

병은(病), 마음에(心)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이다(有所不足也). '이것이 어찌 인에 그치겠는가(此何止於仁), 굳이 말한다면(必也) 성인일 것이다(聖人能之乎)! 그러므로(則) 비록(雖) 요순 같은 성인이라도(堯舜之聖), 그 마음에(其心) 오히려(猶) 이것에는(於此) 모자란 점이 있다(有所不足也).’라고 말했다(言). 이것으로 인을 구하는 것은(以是求仁), 더욱 어렵고(愈難而) 더욱 멀어진다(愈遠矣).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부인자 기욕립이입인 기욕달이달인)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 以己及人, 仁者之心也. 於此觀之, 可以見天理之周流而無閒矣. 狀仁之體, 莫切於此.

○ 자기로 남에게 미치는 것이(以己及人), 인자의 마음이다(仁者之心也). 이것에서 보면(於此觀之), 천리가 두루 미쳐서(天理之周流而) 사이가 없음을(無閒) 알 수 있다(可以見矣). 인의 체를 그려낸 것이(狀仁之體), 무엇도(莫) 이것보다 절실한 것이 없다(切於此).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능근취비 가위인지방야이)

가까이서 취해서 비유할 수 있다면(能近取譬), 인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可謂仁之方也已).”


譬, 喩也. 方, 術也. 近取諸身, 以己所欲譬之他人, 知其所欲亦猶是也. 然後推其所欲以及於人, 則恕之事而仁之術也. 於此勉焉, 則有以勝其人欲之私, 而全其天理之公矣.

비는(譬), 비유다(喩也). 방은(方), 방법이다(術也). 가까이(近) 자기 몸에서 취해서(取諸身, 以)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己所欲) 남에게 비유하면(譬之他人), 원하는 것도(其所欲) 또한(亦) 이와 같음을 알 수 있다(猶是也). 그런 뒤에(然後) 그 원하는 것을 미루어(推其所欲以) 남에게 미치면(及於人, 則) 서의 일이고(恕之事而) 인의 방법이다(仁之術也). 이것에서 힘쓰면(於此勉焉, 則) 인욕의 사사로움을 이길 수 있고(有以勝其人欲之私, 而) 천리의 공정함을 온전하게 할 수 있다(全其天理之公矣).


○ 程子曰: “醫書‘以手足痿痹爲不仁’, 此言最善名狀. 仁者以天地萬物爲一體, 莫非己也. 認得爲己, 何所不至; 若不屬己, 自與己不相干. 如手足之不仁, 氣已不貫, 皆不屬己. 故博施濟衆, 乃聖人之功用. 仁至難言, 故止曰: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欲令如是觀仁, 可以得仁之體.”

○ 程子曰: “의서에서(醫書) ‘수족이 마비된 것을(以手足痿痹) 불인으로 여겼고(爲不仁)’, 이 말이(此言) 가장 잘 이름 붙여서(最善名) 나타낸 것이다(狀.) 인자는(仁者) 천지만물을(以天地萬物) 한 몸으로 삼으니(爲一體), 무엇도(莫) 나 아닌 것이 없다(非己也). 자기라고 인식하면(認得爲己), 어찌(何) 지극하지 않은 곳이 있겠는가(所不至); 만약(若) 자기에게 속하지 않는다면(不屬己), 자연히(自) 자기와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與己不相干). 만약(如) 손과 발이(手足之) 마비되면(不仁), 기운이(氣) 이미 통하지 않아서(已不貫), 모두(皆) 자기에게 속하지 않는다(不屬己). 그러므로(故) 널리 베풀고 여러 사람을 구제하면(博施濟衆), 곧(乃) 성인의(聖人之) 효과다(功用). 인은(仁) 지극히 말하기 어렵고(至難言), 그러므로(故) 단지 말하길(止曰): ‘자기가 서려고 하면(己欲立而) 남을 서게 하고(立人), 자기가 통달하려고 하면(己欲達而) 남을 통달하게 하고(達人), 가까이서 취해서 비유할 수 있으면(能近取譬), 인의 방법이라고 할만하다(可謂仁之方也已).’라고 했다. 이와 같이 인을 관찰하도록 해서(令如是觀仁), 인의 본체를 얻을 수 있도록 하려고 했다(可以得仁之體).”


又曰: “『論語』言 ‘堯舜其猶病諸’者二. 夫博施者, 豈非聖人之所欲? 然必五十乃衣帛, 七十乃食肉. 聖人之心, 非不欲少者亦衣帛食肉也, 顧其養有所不贍爾, 此病其施之不博也. 濟衆者, 豈非聖人之所欲? 然治不過九州. 聖人非不欲四海之外亦兼濟也, 顧其治有所不及爾, 此病其濟之不衆也. 推此以求, 脩己以安百姓, 則爲病可知. 苟以吾治已足, 則便不是聖人.”

又曰: “논어에서 말하길(『論語』言) ‘요순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여겼을 것이다(堯舜其猶病諸)’란 것이(者) 둘이다(二). 무릇(夫) 널리 베푸는 일이(博施者), 어찌(豈) 성인이 바라는 것이 아니겠는가(非聖人之所欲)? 그러나(然) 반드시(必) 50살에 비단옷을 입고(五十乃衣帛), 70살에 고기를 먹었다(七十乃食肉). 성인의 마음이(聖人之心), 젊은 사람도 또한(少者亦) 비단옷을 입고 고기 먹기를(衣帛食肉) 바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非不欲也), 다만(顧) 그 봉양에(其養) 넉넉하지 못함이 있을 뿐이니(有所不贍爾), 이것이(此) 그 베풂이 넓지 않음을 (其施之不博) 부족하게 여긴 것이다(也). 제중이란(濟衆者), 어찌(豈) 성인이 바란 것이 아니겠는가(非聖人之所欲)? 그러나(然) 다스림이(治) 9주를 넘지 못했다(不過九州). 성인이(聖人) 사해의 바깥이라도(四海之外) 또한(亦) 함께 구제하기를(兼濟) 바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非不欲也), 다만(顧) 그 다스림에(其治) 미치지 못함이 있었을 뿐이니(有所不及爾), 이것은(此) 그 구제가 많지 않음을 부족하게 여긴 것이다(病其濟之不衆也). 이것을 미루어(推此以) 구하고(求), 자기를 닦아(脩己以)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면(安百姓, 則) 병이 되는 것을(爲病) 알 수 있다(可知). 진실로(苟) 나의 다스림으로(以吾治) 이미 만족한다면(已足, 則) 곧(便) 성인이 아니다(不是聖人).”


呂氏曰: “子貢有志於仁, 徒事高遠, 未知其方. 孔子敎以於己取之, 庶近而可入. 是乃爲仁之方, 雖博施濟衆, 亦由此進.”

呂氏曰: “자공에게(子貢) 인에 뜻을 둔 것이 있지만(有志於仁), 다만(徒) 고원한 것을 일삼아서(事高遠), 그 방법을 알지 못했다(未知其方). 공자가(孔子) 자기에게 취하면(以於己取之), 거의 가까워져서(庶近而) 들어갈 수 있음을(可入) 가르쳤다(敎). 이것은 곧(是乃) 인을 행하는 방법이니(爲仁之方), 비록(雖) 박시제중도(博施濟衆), 또한(亦) 이것을 통해(由此) 나아가는 것이다(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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