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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五書) 읽기/논어집주(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학이(學而) 1-1]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신경 쓰지 마라 /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

by मोक्ष 2024.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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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논어 첫머리에서 배우는 방법과 그 즐거움을 말하고 배움의 결과로 얻어지는 군자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선생님이 말씀하시길(子曰): “배우고(學而) 때때로(時) 그것을 익히면(習之),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不亦說乎)? 

 

* 時에 대해서 왕숙은 '以時, 적당한 때'라고 해석했고, 주자는 '時時, 항상'이라고 해석했다. 

* 習에 대해서 주자는 '복습'이라고 해석했는데, 다산은 '실습'이라고 해석했다. '學'이란 아는 것, '習'이란 실천하는 것으로 결국 지행이 같이 향상된다는 말이 된다. 즉, 부모에게 문안드리는 예를 배웠으면 제때에 몸소 문안드리는 것이 '習'이라고 했다.

 

○ 學之爲言效也. 人性皆善, 而覺有先後, 後覺者必效先覺之所爲, 乃可以明善而復其初也. 

○ 학이란 말은(學之爲言) 본받는다는 것이다(效也). 사람의 성품이(人性) 모두 선하지만(皆善, 而) 깨달음에는(覺) 선후가 있고(有先後), 뒤에 깨달은 사람은(後覺者) 반드시(必) 먼저 깨달은 사람이 한 것을 본받아야(效先覺之所爲), 이에(乃) 선을 밝히고(明善而) 그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可以復其初也).

 

習, 鳥數飛也. 學之不已, 如鳥數飛也. 說, 喜意也. 旣學而又時時習之, 則所學者熟, 而中心喜說, 其進自不能已矣. 

습은(習), 새가(鳥) 자주(數) 나는 것이다(飛也). 배움을(學之) 그치지 않고(不已), 새가 자주 나는 것처럼 한다(如鳥數飛也). 열은(說), 기쁘다는 뜻이다(喜意也). 이미 배우고(旣學而) 또(又) 때때로 익히면(時時習之, 則) 배운 것이(所學者) 익숙해지고(熟, 而) 마음속이(中心) 기뻐지니(喜說), 그 나아감을(其進) 스스로(自) 그만둘 수 없다(不能已矣). 

 

程子曰: “習, 重習也. 時復思繹, 浹洽於中, 則說也.” 又曰: “學者, 將以行之也. 時習之, 則所學者在我, 故說.” 

정자가 말하길(程子曰): “습은(習), 여러 번 익히는 것이다(重習也). 때때로(時) 다시(復) 생각해서 풀어내고(思繹), 마음속에 축축하게 젖어들면(浹洽於中, 則) 기쁘다(說也).”라고 했다. 또 말하길( 又曰): “학자는(學者), 장차(將) 그것을 행하려는 것이다(以行之也). 때때로 익히면(時習之, 則) 배운 것이(所學者) 나에게 있고(在我), 그러므로 기쁘다(故說).”라고 했다. 

 

* 浹洽(협흡): (물이 물건(物件)을 적시듯이) 널리(고루) 전()해짐.

 

謝氏曰: “時習者, 無時而不習. 坐如尸, 坐時習也; 立如齊, 立時習也.”

사씨가 말하길(謝氏曰): “시습이란(時習者), 늘(時) 익히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不習). 앉는 것은 시동처럼 하는 것은(坐如尸), 앉았을 때의(坐) 시습이고(習也); 서는 것은 재계할 때처럼 하는 것은(立如齊), 설 때의 시습이다(立時習也).”라고 했다.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벗이(有朋) 먼 곳으로부터(自遠方) 오면(來),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不亦樂乎).

 

* 有朋: 有(유)는 '가지고 있다, 소유하다'라는 뜻의 동사로 뒤에 오는 명사를 목적어로 삼지만 때로는 불특정의 사람이나 사물을 표시하는 관형어가 되어 뒤에 오는 명사를 수식하기도 한다. 이 경우 '어느, 어떤'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有朋(유붕)은 '친구가 있어서'로 풀이할 수도 있고 '어떤 친구'로 풀이할 수도 있지만 이 두 가지 해석은 의미상으로 차이는 없다.

 

○ 朋, 同類也. 自遠方來, 則近者可知. 程子曰: “以善及人, 而信從者衆, 故可樂.” 又曰: “說在心, 樂主發散在外.”

○ 붕은(朋), 같은 무리다(同類也). 먼 곳으로부터(自遠方) 찾아온다면(來, 則)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은(近者) 알만하다(말할 것도 없다)(可知). 정자가 말하길(程子曰): “선함으로(以善) 남에게 미쳐서(及人, 而) 믿고 따르는 사람이 많고(信從者衆), 그러므로(故) 즐거울 수 있다(可樂).”라고 했다. 또 말하길(又曰): “기쁨이(說) 마음에 있고(在心), 즐거움은(樂) 바깥으로 드러남을(發散在外) 위주로 한다(主).”라고 했다.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남들이(人)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不知而) 화내지 않으면(不慍), 또한 군자답지 않겠는가(不亦君子乎)?”라고 했다.

 

* 君子(군자): '군자답다'라는 뜻의 형용사다. 세 구절에 공통적으로 "不亦(불역)~乎(호)"라는 문형이 사용되었고 그 사이에 들어 있는 說(열)·樂(락)·君子(군자)도 같은 성질의 단어라고 볼 수 있다. 이 셋이 모두 명사이거나 모두 형용사일 가능성이 큰데 모두 명사라고 보는 것보다는 모두 형용사라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 慍, 含怒意. 君子, 成德之名. 尹氏曰: “學在己, 知不知在人, 何慍之有.” 程子曰: “雖樂於及人, 不見是而無悶, 乃所謂君子.” 愚謂及人而樂者順而易, 不知而不慍者逆而難, 故惟成德者能之. 然德之所以成, 亦由學之正, 習之熟, 說之深, 而不已焉耳.

○ 온(慍)은, 노여움을 품었다는 뜻이다(含怒意). 군자는(君子), 덕을 이룬 사람의 명칭이다(成德之名). 윤씨가 말하길(尹氏曰): “배움은 나에게 있고(學在己),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는 것은(知不知) 남에게 있으니(在人), 어찌 성낼 것이 있겠는가(何慍之有).”라고 했다. 정자가 말하길(程子曰): “비록(雖) 남에게 미쳐가는 것에(於及人) 즐겁지만(樂), 인정받지 못하더라도(不見是而) 답답해하지 않으면(無悶), 곧(乃) 이른바(所謂) 군자라고 할 수 있다(君子).”라고 했다. 내가 생각건대(愚謂) 남에게 미쳐가서(及人而) 즐거운 것은(樂者) 따르는 것이고 쉽지만(順而易), 알아주지 않는데도(不知而) 화내지 않는 것은(不慍者) 거스르는 것이고 어렵고(逆而難), 그러므로(故) 오직(惟) 덕을 이룬 사람만이(成德者) 할 수 있다(能之). 그러나(然) 덕을 이루는 것은(德之所以成), 또한(亦) 배우기를 바르게 하고(學之正), 익히는 것을 익숙하게 하고(習之熟), 기뻐하는 것을 깊이 해서(說之深, 而) 그치지 않는 것을(不已焉) 말미암을 뿐이다(由耳).

○ 程子曰: “樂由說而後得, 非樂不足以語君子.”

○ 정자가 말하길(程子曰): “즐거움은(樂) 기쁨을 말미암은(由說) 뒤에 얻고(而後得), 즐거움이 아니면(非樂) 군자라고 말할 수 없다(不足以語君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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