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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五書) 읽기/논어집주(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학이(學而) 1-4] 하루에 세 번 내 몸을 살핀다 / 삼성오신(三省吾身)

by मोक्ष 2024.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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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오일삼성오신 위인모이불충호)

증자가 말하길(曾子曰): “나는(吾) 하루에(日) 세 가지로(三) 내 몸을 살핀다(省吾身): 남을 위해(爲人) 일을 계획해 주면서(謀而) 진실하지 않았는가(不忠乎)?

 

* 三省(삼성): 세 가지로 반성하다. '세 번 반성하다,' 즉 '여러 번 반성하다'의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으나 뒤에 반성하는 내용을 세 가지로 나열했기 때문에 '세 가지 측면에서 반성하다'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견해도 있다.

 

○ 曾子, 孔子弟子, 名參, 字子輿. 盡己之謂忠.

○ 증자는(曾子), 공자의 제자로(孔子弟子), 이름은 삼이고(名參), 자는 자여다(字子輿). 자기를 다하는 것을(盡己之) 충이라 한다(謂忠).
  
與朋友交而不信乎? (여붕우교이불신호)

벗고 더불어 교제하면서(與朋友交而) 믿음을 주지 못했는가(不信乎)?

以實之謂信.

진실함으로 대하는 것을(以實之) 신이라 한다(謂信).
  
傳不習乎?” (전불습호)

<스승에게> 전수받은 것을(傳) 익히지 않았는가(不習乎)?”라고 했다.

 

* 傳不習乎(전불습호): 曾子曰(증자왈)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것이 그가 스승이 된 뒤 제자들 앞에서 한 말임을 알 수 있으므로 이 문장을 '선생님이 전수해주신 것을 복습하지 않았는가?'라고 풀이하는 것은 어색하므로 '학식을 전수함에 있어서 스스로 익숙하지 않았는가?'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 傳, 謂受之於師. 習, 謂熟之於己. 曾子以此三者日省其身, 有則改之, 無則加勉, 其自治誠切如此, 可謂得爲學之本矣. 而三者之序, 則又以忠信爲傳習之本也.

○ 전은(傳), 스승에게 받은 것을 말한다(謂受之於師). 습은(習), 자기에게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謂熟之於己). 증자가(曾子) 이 세 가지로(以此三者) 매일(日) 자기 몸을 살피고(省其身), 있으면(有則) 고치고(改之), 없으면(無則) 더욱 힘쓰고(加勉), 그 자기를 다스리는 것이(其自治) 정성스럽고 절실하기가(誠切) 이와 같았으니(如此), 학문하는 근본을 얻었다고(得爲學之本) 할만하다(可謂矣). 그런데(而) 이 셋의 순서는(三者之序, 則) 또(又) 충과 신을(以忠信) 전습의 근본으로 삼는다(爲傳習之本也).

○ 尹氏曰: “曾子守約, 故動必求諸身.”

○ 윤씨가 말하길(尹氏曰): “증자가(曾子) 간략함을 지켰고(守約), 그러므로(故) 움직임에(動) 반드시(必) 자신에게서 찾았다(求諸身).”라고 했다.

謝氏曰: “諸子之學, 皆出於聖人, 其後愈遠而愈失其眞. 獨曾子之學, 專用心於內, 故傳之無弊, 觀於子思ㆍ孟子可見矣. 惜乎! 其嘉言善行, 不盡傳於世也. 其幸存而未泯者, 學者其可不盡心乎!”

사씨가 말하길(謝氏曰): “여러 제자의 학문이(諸子之學), 모두(皆) 성인에게서 나왔는데(出於聖人), 그 뒤에(其後) 더욱 멀어지고(愈遠而) 더욱(愈) 그 참모습을 잃었다(失其眞). 오직(獨) 증자의 학문이(曾子之學), 오로지(專) 내면에 마음을 썼고(用心於內), 그러므로(故) 전해진 것에(傳之) 폐단이 없으니(無弊), 자사와 맹자를 보면(觀於子思孟子) 알 수 있다(可見矣). 안타깝구나(惜乎)! 그 좋은 말과(其嘉言) 선행이(善行), 세상에(於世) 다 전해지지 못했다(不盡傳也). 그(其) 다행히 남아서(幸存而) 없어지지 않은 것은(未泯者), 학자가(學者) 그 마음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其可不盡心乎)!”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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