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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五書) 읽기/맹자집주(孟子集註)

[맹자집주(孟子集註) 등문공 하(滕文公 下) 5 송소국장(장행왕정장)[宋小國章(將行王政章)]] 작은 나라라도 왕정을 행할 수 있다면

by मोक्ष 2024.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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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章問曰: “宋, 小國也.(만장문왈 송소국야) 今將行王政, 齊ㆍ楚惡而伐之, 則如之何?”(금장행왕정 제초오이벌지 즉여지하)

만장이 묻기를(萬章問曰): “송나라는(宋), 작은 나라입니다(小國也). 지금(今) 장차(將) 왕정을 행하려고 해도(行王政), 제나라와 초나라가 미워해서(齊ㆍ楚惡而) 공격한다면(伐之, 則) 어찌합니까(如之何)?”라고 했다.


○ 萬章, 孟子弟子. 宋王偃嘗滅滕伐薛, 敗齊ㆍ楚ㆍ魏之兵, 欲霸天下, 疑卽此時也.

○ 만장은(萬章), 맹자 제자다(孟子弟子). 송왕 언이(宋王偃) 일찍이(嘗) 등나라를 없애고(滅滕) 설나라를 쳐서(伐薛), 제나라와 초나라, 위나라의 군대를 쳐부수고(敗齊ㆍ楚ㆍ魏之兵), 천하를 제패하려고 했으니(欲霸天下), 아마도(疑) 이때인 듯하다(卽此時也).

孟子曰: “湯居亳, 與葛爲鄰, 葛伯放而不祀.(탕거박 여갈위린 갈백방이불사) 湯使人問之曰: ‘何爲不祀?’(탕사인문지왈 하위불사) 曰: ‘無以供犠牲也.’(왈 무이공희생야) 湯使遺之牛羊. 葛伯食之, 又不以祀.(탕사유지우양 갈백식지 우불이사)

맹자가 말하길(孟子曰): “탕임금이(湯) 박에 거주할 때(居亳), 갈나라와(與葛) 이웃이 되었는데(爲鄰), 갈나라 백이(葛伯) 방탕하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放而不祀). 

탕임금이(湯) 사람을 시켜 묻기를(使人問之曰): ‘무엇 때문에(何爲) 제사를 지내지 않는가(不祀)?’라고 했다. 말하길(曰): ‘희생으로 바칠 것이 없습니다(無以供犠牲也).’라고 했다. 탕임금이(湯) 소와 양을 보내도록 시켰다(使遺之牛羊). 갈백이(葛伯) 그것을 먹어버리고(食之), 또(又) 제사 지내지 않았다(不以祀).


○ 葛, 國名. 伯, 爵也. 放而不祀, 放縱無道, 不祀先祖也.

○ 갈은(葛), 나라 이름이다(國名). 백은(伯), 작위다(爵也). 방이불사는(放而不祀), 방종하고(放縱) 도가 없어서(無道), 선조를 제사 지내지 않은 것이다(不祀先祖也).


湯又使人問之曰: ‘何爲不祀?’(탕우사인문지왈 하위불사) 曰: ‘無以供粢盛也.’(왈무이공자성야) 湯使亳衆往爲之耕, 老弱饋食.(탕사박중왕위지경 노약궤식) 葛伯率其民, 要其有酒食黍稻者奪之, 不授者殺之.(갈백솔기민 요기유주사서도자탈지 불수자살지) 有童子以黍肉餉, 殺而奪之.(유동자이서육향 살이탈지)

탕임금이(湯) 또(又) 사람을 시켜 묻기를(使人問之曰): ‘무엇 때문에(何爲) 제사 지내지 않는가(不祀)?’라고 했다. 말하길(曰): ‘제사 지낼 곡식을 댈 수 없습니다(無以供粢盛也).’라고 했다. 탕임금이(湯) 박 사람들을 보내서(使亳衆往) 그들을 위해 밭을 갈고(爲之耕), 노약자에게(老弱) 먹을 것을 보냈다(饋食). 갈백이(葛伯) 자기 백성을 이끌고(率其民), 그 술과 음식, 기장과 쌀을 가진 사람을 기다려(要其有酒食黍稻者) 빼앗고(奪之), 주지 않는 사람은(不授者) 죽였다(殺之). 어린아이가 있어(有童子) 기장과 고기를(以黍肉) 먹도록 했는데(餉), 죽이고(殺而) 빼앗았다(奪之).


○ 亳衆, 湯之民. 其民, 葛民也. 授, 與也. 餉, 亦饋也.

○ 박중은(亳衆), 탕임금의 백성이다(湯之民). 기민은(其民), 갈의 백성이다(葛民也). 수는(授), 주는 것이다(與也). 향은(餉), 또한 주는 것이다(亦饋也).

『書』曰: ‘葛伯仇餉.’ 此之謂也.(서왈 갈백구향 차지위야)

서에 이르길(『書』曰): ‘갈백이(葛伯) 먹이는 사람을 원수로 여겼다(仇餉).’라고 했다. 이것을 말한 것이다(此之謂也).


『書』「商書仲虺」之誥也. 仇餉, 言與餉者爲仇也.

서는(『書』) 상서 중훼지고다(「商書仲虺」之誥也). 구향은(仇餉),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을(與餉者) 원수로 여겼다는(爲仇) 말이다(也).

爲其殺是童子而征之, 四海之內皆曰: ‘非富天下也, 爲匹夫匹婦復讎也.’(위기살시동자이정지 사해지내개왈 비부천하야 위필부필부복수야)

그 동자를 죽인 것 때문에(爲其殺是童子而) 정벌했으니(征之), 사해의 안에서(四海之內) 모두 말하길(皆曰): ‘천하를 부라고 여긴 것이 아니고(非富天下也), 필부필부를 위하여(爲匹夫匹婦) 복수한 것이다(復讎也).’라고 했다.


○ 非富天下, 言湯之心, 非以天下爲富而欲得之也.

○ 천하를 부라고 여기지 않은 것은(非富天下), 탕의 마음이(湯之心), 천하를 부라고 여겨서(以天下爲富而)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는(欲得之) 말이다(也).

湯始征, 自葛載, 十一征而無敵於天下.(탕시정 자갈재 십일정이무적어천하) 東面而征, 西夷怨;(동면이정 서이원) 南面而征, 北狄怨, 曰: ‘奚爲後我?’(남면이정 북적원 왈해위후아) 民之望之, 若大旱之望雨也.(민지암지 약대조지망우야) 歸市者弗止, 芸者不變, 誅其君, 弔其民, 如時雨降. 民大悅.(귀시자부지 운자불변 주기군 조기민 여시우강 민대열)

탕임금이(湯) 정벌을 시작할 때(始征), 갈나라로부터(自葛) 시행해서(載), 열한 번 정벌하니(十一征而) 천하에 적수가 없었다(無敵於天下). 동쪽을 바라보고(東面而) 정벌하면(征), 서이가 원망하고(西夷怨); 남쪽을 바라보고 정벌하면(南面而征), 북적이 원망하며(北狄怨), 말하길(曰): ‘어찌(奚) 우리를 뒤로 하는가(爲後我)?’라고 했다. 백성이(民之) 바라는 것이(望之), 마치(若) 큰 가뭄에(大旱之) 비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望雨也). 시장에 돌아오는 사람이(歸市者) 그치지 않았고(弗止), 김매는 사람들이(芸者) 변하지 않고(不變), 그 임금을 죽이고(誅其君), 그 백성을 위문한 것이(弔其民), 마치(如) 때에 맞는 비가 내린 듯했다(時雨降). 백성이 크게 기뻐했다(民大悅).


載, 亦始也. 十一征, 所征十一國也. 餘見前篇.

재는(載), 또한 시작함이다(亦始也). 십일정은(十一征), 정벌한 것이(所征) 열한 나라다(十一國也). 나머지는(餘) 이미(已) 전편에 보인다(見前篇).


『書』曰: ‘徯我后, 后來其無罰.’(서왈 혜아후 후래기무벌) 有攸不惟臣, 東征, 綏厥士女, 匪厥玄黃, 紹我周王見休, 惟臣附于大邑周.(유유불유신 동정 수궐사녀 비궐현황 소아주왕견휴 유신부우대읍주) 其君子實玄黃于匪以迎其君子, 其小人簞食壺漿以迎其小人, 救民於水火之中, 取其殘而已矣.(기군자실현황우비이영기군자 기소인단사호장이영기소인 구민어수화지중 취기잔이이의)

서에 이르길(『書』曰): ‘우리 임금을 기다려서(徯我后), 우리 임금이 오시면(后來) 아마도(其) 형벌이 없을 것이다(無罰).’라고 했다. 유가 있어(有攸) 오직 신하 되지 않자(不惟臣), 동으로 정벌해서(東征), 그 사와 녀를 편안하게 하고(綏厥士女), 그 검은 비단과 노란 비단을 담아서(匪厥玄黃), 우리 주왕을 만나(紹我周王) 아름다움을 받아(見休), 오직(惟) 큰 도읍인 주나라에(于大邑周) 신하로 복종했다(臣附). 그 군자가(其君子) 실제로(實) 검은 비단과 황색 비단을(玄黃) 광주리에 담아서(于匪以) 그 군자를 맞이하고(迎其君子), 그 소인이(其小人) 대그릇의 밥과 병의 물로(簞食壺漿以) 그 소인을 맞이하니(迎其小人), 수화지중의 백성을 구하고(救民於水火之中), 그 잔악한 사람을 취했을 뿐이다(取其殘而已矣).


○ 按『周書』「武成篇」載武王之言, 孟子約其文如此. 然其辭時與今『書』文不類, 今姑依此文解之. 有所不惟臣, 謂助紂爲惡, 而不爲周臣者. 匪, 與篚同. 玄黃, 幣也. 紹, 繼也, 猶言事也.
言其士女以篚盛玄黃之幣, 迎武王而事之也. 商人而曰‘我周王’, 猶「商書」所謂我后也. 休, 美也, 言武王能順天休命, 而事之者皆見休也. 臣附, 歸服也. 孟子又釋其意, 言商人聞周師之來, 各以其類相迎者, 以武王能捄民於水火之中, 取其殘民者誅之, 而不爲暴虐耳. 君子, 謂在位之人. 小人, 謂細民也.

○ 주서 무성편을 살펴보면(『周書』「武成篇」) 무왕의 말을 기록한 것이 있고(武王之言), 맹자가(孟子) 그 글을 요약한 것이(約其文) 이와 같다(如此). 그러나(然) 그 말이(其辭) 때때로(時) 지금 서경의 글과(與今『書』文) 비슷하지 않고(不類), 지금(今) 우선(姑) 이 글을 따라(依此文) 해석했다(解之). 유소불유신은(有所不惟臣), 주왕을 도와 악을 행하고(助紂爲惡, 而) 주나라의 신하가 되지 않으려는 사람을(不爲周臣者) 말한다(謂). 비는(匪), 광주리와 같다(與篚同). 현황은(玄黃), 비단이다(幣也). 소는(紹), 이음이니(繼也), 섬기는 것을 말한 것과 같다(猶言事也).
그 사녀가(其士女) 광주리로(以篚) 현황의 비단을 채워서(盛玄黃之幣), 무왕을 맞이하여(迎武王而) 섬긴 것을(事之) 말한다(也). 상나라 사람이면서(商人而) 우리 주왕이라고 말한 것은(曰‘我周王’), 상서에서 이른바(「商書」所謂) 우리 임금과(我后) 같다(也). 휴는(休), 아름다움이니(美也), 무왕이(武王)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따르고(能順天休命, 而) 섬기는 사람이 모두(事之者皆) 아름다움을 본 것을(見休) 말한다(也). 臣附, 歸服也. 孟子又釋其意, 言商人聞周師之來, 各以其類相迎者, 以武王能捄民於水火之中, 取其殘民者誅之, 而不爲暴虐耳. 君子, 謂在位之人. 小人, 謂細民也.


「太誓」曰: ‘我武惟揚, 侵于之疆, 則取于殘, 殺伐用張, 于湯有光.’(태서왈 아무유양 침우지강 즉취우잔 살벌용장 우탕유광)

태서에 이르길(「太誓」曰): ‘나의 무위가(我武) 날려(惟揚), 저 국경을 침범하고(侵于之疆, 則) 잔악한 자를 취해서(取于殘), 살벌이(殺伐) 크게 베풀어지니(用張), 탕왕보다(于湯) 더욱 빛이 있다(有光).’라고 했다.


「太誓」, 「周書」也. 今『書』文亦小異. 言武王威武奮揚, 侵彼紂之疆界, 取其殘賊, 而殺伐之功因以張大, 比於湯之伐桀又有光焉, 引此以證上文取其殘之義.

태서는(「太誓」), 주서다(「周書」也). 지금(今) 서의 글은(『書』文) 또한(亦) 조금 다르다(小異). 무왕이(武王) 위무를 떨치고(威武奮揚), 저 주왕의 국경을 침범해서(侵彼紂之疆界), 그 잔학한 적을 취하고(取其殘賊, 而) 죽이고 정벌한 공이(殺伐之功) 이것 때문에(因以) 크게 드러나니(張大), 탕 임금이 걸왕을 정벌한 것에 비교해서(比於湯之伐桀) 더욱(又) 빛이 있음을 말했고(有光焉), 이것을 인용해서(引此以) 윗글의 잔 악한 자를 취했다는 뜻을 증명했다(證上文取其殘之義).

不行王政云爾, 苟行王政, 四海之內皆擧首而望之, 欲以爲君.(불행왕정운이 구행왕정 사해지내개거수이망지 욕이위군) 齊ㆍ楚雖大, 何畏焉?”(제초수대 하외언)

왕정을 행하지 않을 뿐이고(不行王政云爾), 진실로(苟) 왕정을 행한다면(行王政), 사해의 안에서(四海之內) 모두(皆) 머리를 들어(擧首而) 바라고(望之), 임금으로 삼으려고 할 것이다(欲以爲君). 제나라와 초나라가(齊ㆍ楚) 비록 크더라도(雖大), 어찌 두렵겠는가(何畏焉)?”


宋實不能行王政, 後果爲齊所滅, 王偃走死.

송나라는(宋) 실제(實) 왕정을 행하지 못하고(不能行王政), 나중에(後) 결국(果) 제나라에 멸망당한 나라가 되었고(爲齊所滅), 왕언은(王偃) 도망가서 죽었다(走死).


○ 尹氏曰: “爲國者能自治而得民心, 則天下皆將歸往之, 恨其征伐之不早也. 尙何强國之足畏哉? 苟不自治, 而以强弱之勢言之, 是可畏而已矣.”

○ 尹氏曰: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爲國者) 자기를 다스려서 백성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能自治而得民心, 則) 천하가(天下) 모두(皆) 장차 그에게 돌아갈 것이고(將歸往之), 그 정벌이(其征伐之) 빠르지 않은 것을(不早) 한으로 여길 것이다(也). 오히려(尙) 어찌(何) 강국을 두려워 하겠는가(强國之足畏哉)? 진실로(苟)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고(不自治, 而) 강약의 세로 말한다면(以强弱之勢言之), 이것은(是) 두려울만할 뿐이다(可畏而已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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