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서(五書) 읽기/논어집주(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학이(學而) 1-7] 배우지 못했더라도 배웠다고 할 수 있는 사람 / 현현역색(賢賢易色)

by मोक्ष 2024. 2. 9.
반응형

子夏曰: “賢賢易色, 事父母能竭其力,(현현역색 사부모능갈기력)

子夏曰: “어진 사람을 어질게 대하는 것을(賢賢) 미인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꿔서 하고(易色), 부모를 모시는 것에(事父母) 자기 힘을 다할 수 있고(能竭其力),

 

* 賢賢易色: '현량한 덕성을 소중하게 여기고 아름다운 용모를 가볍게 여기다.'라고 해석한다. 뒤의 (현)은 '어질다'라는 뜻의 형용사가 '현덕'이라는 뜻의 명사로 전용된 것이고 앞의 賢(현)은 '현명하게 여기다, 소중하게 여기다'라는 뜻의 의동사(意動詞)로 전용된 것이다. <류종목, 논어의 문법적 이해>

 

子夏, 孔子弟子, 姓卜, 名商. 賢人之賢, 而易其好色之心, 好善有誠也.

자하는(子夏), 공자 제자로(孔子弟子), 성은 복이고(姓卜), 이름은 상이다(名商). 어진 사람을(賢人之) 어질게 대하면서(賢, 而) 그 아름다운 여자를 좋아하는 마음과 바꿀 수 있다면(易其好色之心), 선을 좋아하는 <마음에>(好善) 진실성이 있다(有誠也).

 

事君能致其身, 與朋友交言而有信.(사군능치기신 여붕우교언이유신)

임금을 섬기는 데(事君) 자기 몸을 바칠 수 있고(能致其身), 벗과 더불어(與朋友) 사귀면서(交) 말하는 것에(言而) 믿음이 있다면(有信).

 

致, 猶委也. 委致其身, 謂不有其身也.

치는(致), 맡기는 것과 같다(猶委也). 자기 몸을 맡기는 것은(委致其身), 자기 몸을 갖지 않은 것처럼 한다는 말이다(謂不有其身也).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수왈미학 오필위지학의)

비록(雖) 배우지 못했다 하더라도(曰未學), 나는(吾) 반드시(必) 그가 배웠다고 말할 것이다(謂之學矣).”라고 했다.

 

* 曰(왈): '~이다'라는 뜻의 동사로 '賢賢易色(현현역색) ~ 言而有信(언이유신)'이라고 말한 사람이 주어인데 생략되어 있다. 또 '~라고 말하다'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는 '다른 사람들' 또는 '賢賢易色(현현역색) ~ 言而有信(언이유신)'이라고 말한 사람 자신이 주어가 된다. <류종목, 논어의 문법적 이해>

 

四者皆人倫之大者, 而行之必盡其誠, 學求如是而已. 故子夏言有能如是之人, 苟非生質之美, 必其務學之至, 雖或以爲未嘗爲學, 我必謂之已學也.

네 가지가(四者) 모두(皆) 인륜의 중요한 것이고(人倫之大者, 而) 그것을 행하는데(行之) 반드시(必) 그 정성을 다해야 하고(盡其誠), 배움은(學) 이와 같은 것을 구하는 것일 뿐이다(求如是而已). 그러므로(故) 자하가(子夏) 이와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有能如是之人), 비록(苟) 타고난 바탕이 아름답지 않더라도(非生質之美), 반드시(必) 그가 배움에 힘쓰는 것이(其務學之) 지극할 것이고(至), 비록(雖) 혹(或) 일찍이 배우지 않았다고 여기더라도(以爲未嘗爲學), 나는(我) 반드시(必) 이미 배웠다고 말할 것이라는(謂之已學) 말이다(言).

 

○ 游氏曰: “三代之學, 皆所以明人倫也. 能是四者, 則於人倫厚矣. 學之爲道, 何以加此. 子夏以文學名, 而其言如此, 則古人之所謂學者可知矣. 故「學而」一篇, 大抵皆在於務本.”

○ 游氏曰: “삼대의 학문이(三代之學), 모두(皆) 인륜을 밝히는 것이다(所以明人倫也). 이 넷을 잘하는 사람이라면(能是四者, 則) 인륜에 두텁다(於人倫厚矣). 배움의 도가 되는 것에(學之爲道), 무엇으로(何以) 여기에 더하겠는가(加此). 자하가(子夏) 문학으로(以文學) 명성이 높았고(名, 而) 그 말이(其言) 이와 같다면(如此, 則) 옛사람의(古人之) 이른바(所謂) 배우는 것을(學者) 알만하다(可知矣). 그러므로(故) 학이 한 편은(「學而」一篇), 대체로(大抵) 모두(皆) 근본에 힘쓰는 것에 있다(在於務本).”라고 했다.

 

吳氏曰: “子夏之言, 其意善矣. 然辭氣之間, 抑揚太過, 其流之弊, 將或至於廢學. 必若上章夫子之言, 然後爲無弊也.”

吳氏曰: “자하의 말은(子夏之言), 그 뜻이 좋다(其意善矣). 그러나(然) 말의 기운 사이(어조)에(辭氣之間), 누르고 올림이 너무 지나치고(抑揚太過), 그 흐름이 폐단을 만들어(其流之弊), 장차(將) 혹(或) 학문을 없애는 것에 이를 수도 있다(至於廢學). 반드시(必) 만약(若) 윗장 공자의 말이 있고 나서야(上章夫子之言, 然後) 폐단이 없을 것이다(爲無弊也).”라고 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