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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五書) 읽기/논어집주(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선진(先進) 11-25] 풍호무우(風乎無雩) /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다

by मोक्ष 2024.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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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路ㆍ曾晳ㆍ冉有ㆍ公西華侍坐.(자로증석염유공서화시좌)

자로와 증석, 염유, 공서화가(子路ㆍ曾晳ㆍ冉有ㆍ公西華) 모시고 앉아 있었다(侍坐).


○ 晳, 曾參父, 名點.

○ 석은(晳), 증삼의 아버지이고(曾參父), 이름은 점이다(名點).

子曰: “以吾一日長乎爾, 毋吾以也.(이오일일장호이 무오이야)

子曰: “내가(吾) 너희보다(乎爾) 하루라도 더 어른인 것 때문에(一日長), 나를 毋吾以也.


○ 言我雖年少長於女, 然女勿以我長而難言. 蓋誘之盡言以觀其志, 而聖人和氣謙德, 於此亦可見矣.

○ 내가 비록(我雖) 나이가(年) 너희보다(於女) 조금 많지만(少長), 그러나(然) 너희는(女) 내가 나이가 많은 것 때문에(以我長而) 말을 어려하지 말라는(難言) 말이다(言). 대개(蓋) 그들을 이끌어(誘之) 말을 다하게 해서(盡言以) 그 뜻을 본 것인데(觀其志, 而) 성인의(聖人) 온화한 기풍과(和氣) 겸손한 덕을(謙德), 여기에서(於此) 또한(亦) 볼 수 있다(可見矣).

居則曰:(거즉왈) 不吾知也!(불오지야) 如或知爾, 則何以哉?”(여혹지이 즉하이재)

평소에(居) 말하길(則曰): 나를 알아주지 않는구나(不吾知也)! 만약(如) 누군가(或) 너를 알아준다면(知爾, 則) 어찌하겠느냐(何以哉)?”


言女平居, 則言人不知我. 如或有人知女, 則女將何以爲用也?

너희가(女) 평소에(平居, 則) 사람들이(人)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不知我) 말한다는(言) 말이다(言). 만약(如) 누군가(或) 너희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有人知女, 則) 너희는(女) 장차(將) 무엇으로(何以) <세상에> 쓰임이 되겠느냐(爲用也)?

子路率爾而對曰:(자로솔이이대왈) “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間,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천승지국 섭호대국지간 가지이사려 인지이기근) 由也爲之, 比及三年, 可使有勇, 且知方也.”(유야위지 비급삼년 가사유용 차지방야) 夫子哂之.(부자함지)

자로가(子路) 경솔하게(率爾而) 대답하길(對曰): “천 승의 나라가(千乘之國), 큰 나라 사이에(乎大國之間) 끼어서(攝), 군대로(以師旅) 침략당하고(加之), 기근으로(以饑饉) 그것에 더해질 때(因之); 제가(由也) 다스린다면(爲之), 삼 년 정도 지나면(比及三年), 용맹을 지니도록 할 수 있고(可使有勇), 또(且) 나아갈 바를 알도록 할 수 있습니다(知方也).”라고 했다.

부자가(夫子) 빙긋이 웃었다(哂之).


○ 率爾, 輕遽之貌. 攝, 管束也. 二千五百人爲師, 五百人爲旅. 因, 仍也. 穀不熟曰饑, 菜不熟曰饉. 方, 向也, 謂向義也. 民向義, 則能親其上, 死其長矣. 哂, 微笑也.

○ 솔이는(率爾), 가볍고 급한 모습이다(輕遽之貌). 섭은(攝), 구속받는 것이다(管束也). 2500명이(二千五百人) 사가 되고(爲師), 500명이(五百人) 려다(爲旅). 인은(因), 겹침이다(仍也). 곡식이(穀) 익지 않는 것을(不熟) 기라 하고(曰饑), 채소가(菜) 익지 않는 것을(不熟) 근이라 한다(曰饉). 방은(方), 향함이고(向也), 의를 향함을 말한다(謂向義也). 백성이(民) 의를 향하면(向義, 則) 그 윗사람을 친애하고(能親其上), 그 어른을 위해(其長) 목숨을 바친다(矣). 함은(哂), 미소다(微笑也).

“求! 爾何如?”(구여지하) 對曰: “方六七十, 如五六十, 求也爲之, 比及三年, 可使足民.(대왈 방육칠십 여오륙십 구야위지 비급삼년 가사민족) 如其禮樂, 以俟君子.”(여기예악 이사군자)

“구야(求)! 너는 어떠하냐(爾何如)?”

대답하길(對曰): “6~70리나(方六七十, 如) 5~60리 되는 나라를(五六十), 제가(求也) 다스리면(爲之), 삼 년이 지나면(比及三年), 백성을 풍족하게 할 수 있습니다(可使足民). 예악에 관한 것이라면(如其禮樂, 以) 군자를 기다리겠습니다(俟君子).”라고 했다.


求爾何如, 孔子問也, 下放此. 方六七十里, 小國也. 如, 猶或也. 五六十里, 則又小矣. 足, 富足也. 俟君子, 言非己所能. 冉有謙退, 又以子路見哂, 故其辭益遜.

구이여하는(求爾何如), 공자가 물은 것이다(孔子問也), 아래도 이와 같다(下放此). 사방 6~70리는(方六七十里), 작은 나라다(小國也). 여는(如), 혹과 같다(猶或也). 5~60리도(五六十里, 則) 또한(又) 작다(小矣). 족은(足), 풍족함이다(富足也). 사군자는(俟君子),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言非己所能). 염유가(冉有) 겸손하고(謙退), 또한(又) 자로가 웃음을 당했기 때문에(以子路見哂), 그러므로(故) 그 말이(其辭) 더욱 겸손했다(益遜).

“赤! 爾何如?”(적이하여) 對曰: “非曰能之, 願學焉.(대왈 비왈능지 원학언) 宗廟之事, 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종묘지사 여회동 단장보 원위소상언)

“적아(赤)! 너는 어떠하냐(爾何如)?”

대답하길(對曰): “잘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非曰能之), 배우기를 원합니다(願學焉). 종묘의 일과(宗廟之事), 제후의 회동과 같은 일에(如會同), 현단복을 입고 장보관을 쓰고(端章甫), 작은 일을 돕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願爲小相焉).”


○ 公西華志於禮樂之事, 嫌以君子自居. 故將言己志而先爲遜辭, 言未能而願學也. 宗廟之事, 謂祭祀. 諸侯時見曰會, 衆覜曰同. 端, 玄端服. 章甫, 禮冠. 相, 贊君之禮者. 言小, 亦謙辭.

○ 공서화는(公西華) 예악의 일에(於禮樂之事) 뜻을 두었고(志), 군자로 자처하는 것을(以君子自居) 꺼림칙하게 여겼다(嫌). 그러므로(故) 장차(將) 자기 뜻을 말하면서(言己志而) 먼저(先) 겸손하는 말을 하고(爲遜辭), 잘할 수 없지만(未能而) 배우기를 바란다고(願學) 말했다(也). 종묘의 일은(宗廟之事), 제사를 말한다(謂祭祀). 제후가(諸侯) 때에 맞춰 <천자를> 만나는 것을(時見) 회라 하고(曰會), 여럿이 보는 것을(衆覜) 동이라 한다(曰同). 단은(端), 현단복이다(玄端服). 장보는(章甫), 예관이다(禮冠). 상은(相), 임금의 예를(君之禮) 돕는 것이다(者). 소를 말한 것은(言小), 또한(亦) 겸사다(謙辭).

“點! 爾何如?”(점이하여) 鼓瑟希, 鏗爾, 舍瑟而作.(고슬희 갱이 사슬이작) 對曰: “異乎三子者之撰.”(대왈 이호삼자지선) 子曰: “何傷乎? 亦各言其志也.”(자왈 하상호 역각언기지야)

“점아(點)! 너는 어떠한가(爾何如)?” 슬 타는 것이(鼓瑟) 드물어지다가(希), 쨍그랑하며(鏗爾), 슬을 놓고(舍瑟) 일어났다(而作).

대답하길(對曰): “세 사람이 갖춘 것과(乎三子者之撰) 다릅니다(異).”라고 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길(子曰): “무엇을 상하게 하겠느냐(何傷乎)? 또한(亦) 각자(各) 자기 뜻을 말하는 것이다(言其志也).”


○ 四子侍坐, 以齒爲序, 則點當次對. 以方鼓瑟, 故孔子先問求ㆍ赤而後及點也. 希, 間歇也. 作, 起也. 撰, 具也.

○ 네 사람이(四子) 모시고 앉았을 때(侍坐), 나이로(以齒) 순서를 매기면(爲序, 則) 점은(點) 마땅히(當) 두 번째로 대답해야 한다(次對). 바야흐로 슬을 타고 있었고(以方鼓瑟), 그러므로(故) 공자가(孔子) 먼저(先) 구와 적에게 묻고 나서(問求ㆍ赤而後) 점에 이르렀다(及點也). 희는(希), 뜸해짐이다(間歇也). 작은(作), 일어남이다(起也). 선은(撰), 갖춤이다(具也).

曰: “莫春者, 春服旣成.(모춘자 춘복기성)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관자오륙인 동자육칠인 욕호기 풍호무우 영이귀)

말하길(曰): “늦은 봄에(莫春者), 봄옷이(春服) 만들어지면(旣成), 관자 5~6명과(冠者五六人), 동자 6~7명을 데리고(童子六七人), 기수에서 목욕하고(浴乎沂), 무우에서 바람 쐬고(風乎舞雩), 노래 부르며(詠而) 돌아오겠습니다(歸).”라고 했다.


○ 莫春, 和煦之時. 春服, 單袷之衣. 浴, 盥濯也, 今上巳祓除是也. 沂, 水名, 在魯城南, 「地志」以爲有溫泉焉, 理或然也. 風, 乘涼也. 舞雩, 祭天禱雨之處, 有壇墠樹木也. 詠, 歌也.

○ 모춘은(莫春), 온화하고 따뜻한 때다(和煦之時). 춘복은(春服), 홑옷과 겹옷이다(單袷之衣). 욕은(浴), 손발을 씻는 것이니(盥濯也), 지금(今) 상사일의(上巳) 불제가(祓除) 이것이다(是也). 기는(沂), 물 이름이고(水名), 노성 남쪽에 있고(在魯城南), 지지에서(「地志」) 온천이 있었다고 여겨지니(以爲有溫泉焉), 이치로 보아(理) 그럴 수 있다(或然也). 풍은(風), 시원한 바람을 타는 것이다(乘涼也). 무우는(舞雩), 하늘에 제사 지내고(祭天) 비를 비는 곳이고(禱雨之處), 제단과 수목이 있다(有壇墠樹木也). 영은(詠), 노래함이다(歌也).

夫子喟然歎曰;“吾與點也!”(부자위연탄왈 오여점야)

선생님이(夫子) 감탄하며 말하길(喟然歎曰); “나는(吾) 점과 함께 하겠다(與點也)!”라고 했다.


曾點之學, 蓋有以見夫人欲盡處, 天理流行, 隨處充滿, 無少欠闕. 故其動靜之際, 從容如此. 而其言志, 則又不過卽其所居之位, 樂其日用之常, 初無舍己爲人之意. 而其胸次悠然, 直與天地萬物上下同流, 各得其所之妙, 隱然自見於言外. 視三子之規規於事爲之末者, 其氣象不侔矣, 故夫子歎息而深許之. 而門人記其本末獨加詳焉, 蓋亦有以識此矣.

증점의 학문이(曾點之學), 대개(蓋) 저 인욕이 다한 곳에서(夫人欲盡處), 천리가 유행하고(天理流行), 곳곳에(隨處) 가득 차서(充滿), 작은 결함도 없음을(無少欠闕) 볼 수 있다(有以見). 그러므로(故) 그(其) 움직임과 멈춤의 즈음에(動靜之際), 차분함이(從容) 이와 같다(如此). 그러나(而) 그 뜻을 말한 것은(其言志, 則) 또한(又) 그 머문 자리에 나아가(卽其所居之位), 그 일상을 즐기는 것에(樂其日用之常) 불과하고(不過), 애초에(初) 자기를 버리고(舍己) 남을 위하는 뜻이(爲人之意) 없다(無). 그러나(而) 그 가슴에(其胸) 자연스럽고(次悠然), 바로(直) 천지만물과 더불어(與天地萬物) 상하로 함께 흐르며(上下同流), 각자(各) 제자리를 얻는(得其所之) 오묘함이(妙), 은연중에(隱然) 말 바깥에(於言外) 자연스럽게 드러난다(自見). 세 사람이(三子之) 일이 말단이 되는 것에(於事爲之末者) 얽매인 것을(規規) 보면(視), 그 기상이(其氣象) 같지 않고(不侔矣), 그러므로(故) 부자가 탄식하고(夫子歎息而) 깊이 인정했다(深許之). 그러나(而) 문인이(門人) 그 본말을 기록한 것이(記其本末) 유독(獨) 더욱 상세하니(加詳焉), 대개(蓋) 또한(亦) 이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有以識此矣).


三子者出, 曾晳後.(삼자자출 증석후) 曾晳曰: “夫三子者之言何如?”(증석왈 부삼자자지언하여) 子曰: “亦各言其志也已矣.”(자왈 역각언기지야이의)

세 사람이 나가고(三子者出), 증석이 남았다(曾晳後). 증석이 말하길(曾晳曰): “저 세 사람의 말이(夫三子者之言) 어떤가요(何如)?”라고 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길(子曰): “또한(亦) 각자(各) 그 뜻을 말했을 뿐이다(言其志也已矣).”라고 했다.

曰: “夫子何哂由也?”(부자하함유야)

曰: “선생님께서(夫子) 어찌(何) 유에게 미소를 지었습니까(哂由也)?”라고 했다


點以子路之志, 乃所優爲, 而夫子哂之, 故請其說.

점은(點) 자로의 뜻으로(以子路之志), 곧(乃) 넉넉하게 할 수 있는 것인데(所優爲, 而) 부자가 미소 지었고(夫子哂之), 그러므로(故) 그 설명을 청했다(請其說).

曰: “爲國以禮, 其言不讓, 是故哂之.”(위국이례 기언불양 시고함지)

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爲國) 예로 하는 것인데(以禮), 그 말이(其言) 겸양하는 것이 아니었고(不讓), 이 때문에(是故) 웃었다(哂之).”


夫子蓋許其能, 特哂其不遜.

부자가(夫子) 대체로(蓋) 그 능력을 인정했고(許其能), 다만(特) 그 겸손하지 못함을 웃었다(哂其不遜).

“唯求則非邦也與?”(유구즉비방야여) “安見方六七十如五六十而非邦也者?”(안견방육십여오십이비방자야자)

“구가 말한 것이라면(唯求則) 나라가 아닌가요(非邦也與)?”

“어찌(安) 사방 6~70이나 5~60리가(方六七十如五六十而) 나라가 아닌 것을(非邦也者) 보겠는가(見)?”라고 했다.


○ 曾點以冉求亦欲爲國而不見哂, 故微問之. 而夫子之答無貶辭, 蓋亦許之.

○ 증점은(曾點) 염구도 또한(以冉求亦) 나라를 다스린다고 했는데(欲爲國而) 웃음을 보지 못했고(不見哂), 그러므로(故) 슬며시 물었다(微問之). 그러나(而) 부자의 대답에(夫子之答) 폄하하는 말이 없고(無貶辭), 대개(蓋) 또한(亦) 인정한 것이다(許之).

“唯赤則非邦也與?”(유적즉비방야여) “宗廟會同, 非諸侯而何?(종묘회동 비제후이하) 赤也爲之小, 孰能爲之大?”(적야위지소 숙능위지대)

“적이라면(唯赤則) 나라가 아닌가요(非邦也與)?”

“종묘와 회동의 일이(宗廟會同), 제후의 일이 아니면(非諸侯而) 무엇이겠는가(何)? 적이(赤也) 작을 것을 한다면(爲之小), 누가(孰) 큰 것을 할 수 있겠는가(能爲之大)?”


此亦曾晳問而夫子答也. 孰能爲之大, 言無能出其右者, 亦許之之辭.

이것도(此) 또한(亦) 증석이 묻고(曾晳問而) 부자가 답한 것이다(夫子答也). 누가(孰) 큰 것을 할 수 있겠는가란(能爲之大), 그 오른편에서 나올 사람이(能出其右者) 없다는 말이니(言無), 또한(亦) 인정하는 말이다(許之之辭).


○ 程子曰: “古之學者, 優柔厭飫, 有先後之序. 如子路ㆍ冉有ㆍ公西赤言志如此, 夫子許之. 亦以此自是實事. 後之學者好高, 如人游心千里之外, 然自身卻只在此.”

○ 程子曰: “옛날 학자가(古之學者), 넉넉하고 유연하며(優柔) 충분함에(厭飫), 선후의 순서가 있다(有先後之序). 자로와 염유, 공서화이(如子路ㆍ冉有ㆍ公西赤) 뜻을 말한 것이(言志) 이와 같고(如此), 부자가 인정했다(夫子許之). 또한(亦) 이것으로(以此) 본래 실제의 일이다(自是實事). 훗날의 학자가(後之學者) 높은 것을 좋아하고(好高), 사람의 마음이(如人游心千里之外, 然自身卻只在此.”

又曰: “孔子與點, 蓋與聖人之志同, 便是堯ㆍ舜氣象也. 誠異三子者之撰, 特行有不掩焉耳, 此所謂狂也. 子路等所見者小, 子路只爲不達爲國以禮道理, 是以哂之. 若達, 卻便是這氣象也.”

又曰: “공자가(孔子) 증점과 함께 하는 것이(與點), 대체로(蓋) 성인의 뜻과(與聖人之志) 같고(同), 바로(便) 이것이(是) 요순의 기상이다(堯ㆍ舜氣象也). 진실로(誠) 세 사람의 갖춤과 다르고(異三子者之撰), 다만(特) 행동에(行) 덮지 못하는 것이 있을 뿐이니(有不掩焉耳), 이것이(此) 이른바(所謂) 광이다(狂也). 자로 등은(子路等) 본 것이(所見者) 작았고(小,) 자로는(子路) 다만(只) 나라 다스리는 것은(爲國) 예로 한다는(以禮道) 이치를(理) 몰랐고(爲不達), 이 때문에(是以) 웃은 것이다(哂之). 만약 통달했다면(若達), 바로 卻便是這氣象也.”


又曰: “三子皆欲得國而治之, 故夫子不取. 曾點, 狂者也, 未必能爲聖人之事, 而能知夫子之志. 故曰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言樂而得其所也. 孔子之志, 在於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使萬物莫不遂其性. 曾點知之, 故孔子喟然歎曰: “吾與點也.”

又曰: “세 사람이(三子) 모두(皆) 나라를 얻어 다스리기를 바라고(欲得國而治之), 그러므로(故) 부자가 취하지 않았다(夫子不取). 증점은(曾點), 광자이니(狂者也), 반드시(必) 성인의 일을 할 수 있지 않지만(能爲聖人之事, 而) 부자의 뜻을 알 수 있었다(能知夫子之志). 그러므로(故) 기수에서 목욕하고(浴乎沂), 무우에서 바람 쐬고(風乎舞雩), 노래하며 돌아온다고(詠而歸) 말했으니(曰), 즐기고(樂而) 제 자리를 얻었음을(得其所) 말한다(也). 공자의 뜻이(孔子之志), 노인을 편안하게 하고(於老者安之), 벗에게 믿음을 주고(朋友信之), 젊은이를 품는 것에(少者懷之) 있는데(在), 만물로 하여금(使萬物) 그 성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莫不遂其性). 증점이(曾點) 이것을 알았고(知之), 그러므로(故) 공자가 찬탄하며 말하길(孔子喟然歎曰): “나는 점과 함께하겠다(吾與點也).”라고 했다.


又曰: “曾點ㆍ漆雕開, 已見大意.”

又曰: “증점과 칠조개는(曾點ㆍ漆雕開), 이미(已) 큰 뜻을 보았다(見大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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