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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 뒤안길/효경주소(孝經注疏)

[효경주소(孝經注疏) 어제서병주(御製序并注) (2)] 내 뜻은 춘추에 있고 내 행실은 효경에 있다 [춘추촉상 효경촉삼(春秋屬商 孝經屬參)]

by मोक्ष 2023.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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且三起曾參侍坐與之別, 二者是問也, 一者歎之也. 故假言乘間曾子坐也, 與之論孝. 開宗明義上陳天子, 下陳庶人, 語盡無更端, 於曾子未有請, 故假參歎孝之大, 又說以孝爲理之功. 

또한(且) 증삼이 시좌하는 것을(曾參侍坐) 세 번 일으켰다는 것과(三起與之) 구별했는데(別), 두 번은(二者) 바로(是) 질문한 것이고(問也), 한 번은(一者) 감탄한 것이다(歎之也). 그러므로(故) 한가한 틈에(乘間) 증자가 시좌하고(曾子坐), 더불어(與之) 효를 논한 것을(論孝) 가설하여 말한 것이다(假言也). 근본을 열고 뜻을 밝혀서(開宗明義) 위로(上) 천자를 말하고(陳天子), 아래로(下) 서인을 말하고(陳庶人), 말을 다해서(語盡) 다시 단서를 말할 것이 없고(無更端), 증자에게서(於曾子) 청하는 것이 있지 않고(未有請), 그러므로(故) 증자가(參) 효의 위대함을 탄식하는 것을(歎孝之大) 빌리고(假), 또(又) 효로써(以孝) 다스리는 공효를(爲理之功) 말했다(說)

 

* 三起曾參侍坐 與之別: 공자를 모시고 앉은 증삼을 세 번 일으켰다는 것은 〈廣要道章〉 이후에 증삼이 일어서는 상황이 세 번 설정되었다는 말이고, ‘與之別’은 분위기를 전환하여 각각의 상황에서 그 직전까지의 말과 구별시켰다는 뜻이다.

乘間(승간), 乘隙(승극): 잠시 틈을 탐. 겨를을 이용(利用)함.

 

說之以終, 欲言其聖道莫大於孝, 又假參問, 乃說聖人之德不加於孝. 在前論敬順之道, 未有規諫之事, 慇懃在悅色, 不可頓說犯顏, 故須更借曾子言陳諫諍之義. 此皆孔子須參問, 非參須問孔子也. 

말을(說之) 이미 끝내고는(以終), 그 성인의 도가(其聖道) 효보다 큰 것이 없음을(莫大於孝) 말하고(欲言), 또(又) 증삼의 질문을 빌려(假參問), 곧(乃) 성인의 덕은(聖人之德) 효에 더할 것이 없음을(不加於孝) 말했다(說). 앞에 있는 것에서(在前) 공경과 순종의 도를(敬順之道) 논하면서(論), 바른 말로 간쟁하는 일이(規諫之事) 있지 않고(未有), 간절한 마음이(慇懃) 기쁜 얼굴빛에 있어야 하고(在悅色), 갑작스러운 말로(頓說) 안색을 범할 수 없고(不可犯顏), 그러므로(故) 다시(更) 증자의 말을 빌려(借曾子言) 간쟁의 뜻을 진술하는 것이(陳諫諍之義) 필요했다(須). 이것은(此) 모두(皆) 공자가(孔子) 증삼의 질문이 필요했던 것이고(須參問), 증삼이(參) 공자에게 질문할 필요가 있는 것이(須問孔子) 아니다(也). 

 

說之以終: '以'가 ‘已(이미)’의 뜻으로 쓰였다. 고대에는 이 두 글자가 흔히 통용되었다.

規諫(규간): 옳은 도리로 간하는 것.

慇懃(은근): 1. 태도(態度)가 겸손(謙遜)하고 정중(鄭重)함, 2. 은밀(隱密)하게 정()이 깊음.

 

莊周之斥鷃笑鵬, 罔兩問影;屈原之漁父鼓柮, 大卜拂龜;馬卿之烏有無是;楊雄之翰林子墨, 寧非師祖製作以爲楷模者乎? 

장주의(莊周之) 메추라기가 붕새를 비웃는 일(斥鷃笑鵬), 망량이(罔兩) 그림자에게 묻는 일(問影)과; 굴원의(屈原之) 어부가(漁父) 뱃전을 두드리는 일(鼓柮), 태복이(大卜) 귀갑을 닦는 일(拂龜)과; 마경의(馬卿之) 오유와(烏有) 무시(無是); 양웅의(楊雄之) 한림과 자묵(翰林子墨)이, 어찌(寧) 사조가 제작하고(師祖製作以) 본보기로 삼은 것이(爲楷模者) 아니겠는가(乎)?

 

若依鄭注實居講堂, 則廣延生徒, 侍坐非一, 夫子豈凌人侮眾, 獨與參言邪? 且云汝知之乎, 何必直汝曾子, 而參先避席乎? 必其徧告諸生, 又有對者, 當參不讓儕輩而獨荅乎? 

만약(若) 정현의 주에 따라(依鄭注) 실제로(實) 강당에 머물렀다면(居講堂, 則) 학생을(生徒) 널리 불러 모아(廣延), 모시고 앉은 사람이(侍坐) 한 명은 아니었을 것이니(非一), 부자가(夫子) 어찌(豈) 남을 업신여기고(凌人) 무리를 모욕하면서(侮眾), 오직(獨) 증삼과 더불어(與參) 말했겠는가(言邪)? 또 말하길(且云) 너는 그것을 아는가(汝知之乎)라고 한 것이, 어찌 굳이(何必) 단지(直) 너 증자라고만 해서(汝曾子, 而) 증삼이(參) 먼저(先) 자리를 피했겠는가(避席乎)? 반드시(必) 아마(其) 학생에게(諸生) 두루 말했고(徧告), 또(又) 대답하는 사람이 있는데(有對者), 마땅히(當) 증삼이(參) 동료에게(儕輩) 양보하지 않고(不讓而) 혼자 대답했겠는가(獨荅乎)?

 

* 儕輩(제배), 同輩(동배): 나이나 신분(身分)이 서로 같거나 비슷한 사이의 사람.

 

假使獨與參言, 言畢, 參自集錄, 豈宜稱師字者乎? 由斯言之, 經教發極, 夫子所撰也." 而《漢書·藝文志》云: "《孝經》者, 孔子爲曾子陳孝道也." 謂其爲曾子特說此經, 然則聖人之有述作, 豈爲一人而已!

만약(假使) 오직(獨) 증상 하고만 말했더라도(與參言), 말이 끝나면(言畢), 증삼이(參) 스스로(自) 모아 기록한다면(集錄), 어찌(豈) 마땅히(宜) 스승의 자를(師字者) 불렀겠는가(乎)? 이것을 따라 말한다면(由斯言之), 경의 가르침이(經教) 지극함을 드러낸 것은(發極), 공자가(夫子) 지은 것이다(所撰也)." 그러나(而) 한서 예문지에서 말하길(《漢書·藝文志》云): "효경이란(《孝經》者), 공자가(孔子) 증자를 위해(爲曾子) 효의 도리를 진술한 것이다(陳孝道也)."라고 했다. 그(其) 증자를 위해(爲曾子) 특별히(特) 이 경을 말했다는(說此經) 것인데(謂), 그렇다면(然則) 성인에게(聖人之) 지은 것이 있는 것이(有述作), 어찌(豈) 한 사람을 위한 것일 뿐인가(爲一人而已)!

 

* ' 稱師字(칭시자)'는 〈개종명의장〉 서두에서 孔子를 ‘仲尼’라고 부른 것을 말한다. 

 

斯皆誤本其文, 致茲乖謬也. 所以先儒注解, 多所未行. 唯鄭玄之《六藝論》曰: "孔子以六藝題目不同, 指意殊別, 恐道離散, 後世莫知根源, 故作《孝經》以揔會之." 其言雖則不然, 其意頗近之矣. 

이것은(斯) 모든 오류가(皆) 그 글에 근거한 것이고(本其文), 큰 잘못에(茲乖謬) 이르렀다(也). 선유가(先儒) 주해한 것이(所以注解), 통행되지 않는 것이(所未行) 많다(多). 오직(唯) 정현의(鄭玄之) 육예론에 이르길(《六藝論》曰): "공자가(孔子) 육예의 제목이(以六藝題目) 같지 않고(不同), 가리키는 뜻이(指意) 달라서(殊別), 도가 흩어지고(道離散), 후세에(後世) 누구도(莫) 근원을 알지 못할까(知根源) 염려했고(恐), 그러므로(故) 효경을 지어서(作《孝經》以) 모두 모았다(揔會之)."라고 했다. 그 말이(其言) 비록(雖) 곧 그렇지는 않지만(則不然), 그 뜻은(其意) 자못(頗) 가깝다(近之矣).

 

然入室之徒不一, 獨假曾子爲言, 以參偏得孝名也. 《老子》曰: "六親不和有孝慈." 然則孝慈之名, 因不和而有, 若萬行俱備, 稱爲人聖, 則凡聖無不孝也. 而家有三惡, 舜稱大孝, 龍逢比干, 忠名獨彰, 君不明也. 孝以伯奇之名偏著, 母不慈也. 

그러나(然) 입실한 무리가(入室之徒) 한 명을 아닐 것인데(不一), 오직(獨) 증자의 말을 빌린 것은(假曾子爲言), 증삼이(參) 효도의 명성을(孝名) 널리 얻었기(偏得) 때문이다(也). 노자가 말하길(《老子》曰): "육친이 불화가 있어서(六親不和) 효자가 있다(有孝慈)."라고 했다. 그렇다면(然則) 효자라는 이름은(孝慈之名), 불화로 인하여(因不和而) 있으니(有), 만약(若) 모든 행동이(萬行) 갖추어진 것을(俱備), 성인이라고 일컫는다면(稱爲人聖, 則) 모든 성인에게(凡聖) 불효가 없을 것이다(無不孝也). 그러므로(而) 집안에(家) 악인이 셋이 있어(有三惡), 순을(舜) 대효라 일컬었고(稱大孝), 용봉과 비간의(龍逢比干), 충성스러운 이름이(忠名) 홀로 빛나는 것은(獨彰), 임금이(君) 밝지 못해서이다(不明也). 효성스러워서(孝以) 백기의 이름이(伯奇之名) 두루 드러난 것은(偏著), 어머니가(母) 자애롭지 않아서다(不慈也).

 

* 家有三惡 舜稱大孝: 舜임금의 아버지 瞽瞍는 고집스럽고 모질었고, 繼母는 미련하고 동생 象은 오만했다고 한다.

 

曾子性雖至孝, 蓋有由而發矣. 藜蒸不熟而出其妻, 家法嚴也. 耘瓜傷苗幾殞其命, 明父少恩也. 曾子孝名之大, 其或由茲, 固非參性遲朴, 躬行匹夫之孝也. 

증자의 성품이(曾子性) 비록(雖) 지극히 효성스럽지만(至孝), 대체로(蓋) <행동은> 말미암아(由而) 나타난 것이 있다(發矣). 명아주가(藜蒸) 익지 않아서(不熟而) 그 처를 내쫓았으니(出其妻), 가법이(家法) 엄격했다(嚴也). 오이밭에서 김매다가(耘瓜) 싹을 다치게 해서(傷苗) <아버지에게 맞아> 거의(幾) 그 목숨을 다할 뻔했으니(殞其命), 아버지가(父) 은혜를 작게 베푼 것은(少恩) 분명하다(也). 증자의(曾子) 효성스러운 이름이(孝名之) 크지만(大), 그것이(其) 아마도(或) 여기에서 유래했을 것이니(由茲), 진실로(固) 증삼의 성품이(參性) 아둔하고 질박해서(遲朴), 필부의 효를(匹夫之孝) 몸소 행한 것은(躬行) 아니다(也).

 

審攷經言, 詳稽炫釋, 實藏理於古而獨得之於今者與. 元氏雖同炫說, 恐未盡善, 今以《藝文志》及鄭氏所說爲得. 

경문의 말을(經言) 살피고 헤아려보고(審攷), 유현의 해석을(炫釋) 자세히 생각해보면(詳稽), 진실로(實) 옛날에(於古) 이치를 감추었는데(藏理而) 홀로(獨) 지금에(於今) 그것을 얻은 사람일 것이다(得之者與). 원씨가(元氏) 비록(雖) 유현의 설과 같지만(同炫說), 선을 다하지(盡善) 못한 듯한데(恐未), 이제(今) 한서 예문지와(以《藝文志》及) 정씨가 말한 것으로(鄭氏所說) 얻음이 있었다(爲得).

 

其作經年, 先儒以爲魯哀公十四年西狩獲麟而作《春秋》, 至十六年夏四月己丑孔子卒爲證, 則作在魯哀公十四年後、十六年前. 

그(其) 경을 지은(作經) 연대는(年), 선유는(先儒) 노나라 애공 14년(魯哀公十四年) 서쪽으로 사냥을 나가(西狩) 기린을 잡고서(獲麟而) 춘추를 지었고(作《春秋》), 16년 여름 4월 기축일에 이르러(至十六年夏四月己丑) 공자의 죽음이(孔子卒) 증명된다면(爲證, 則) 지은 시기는(作) 노나라 애공 14년 뒤와 16년 전에(魯哀公十四年後, 十六年前) 있다고(在) 여겼다(以爲).

 

案《鉤命決》云: "孔子曰: '吾志在《春秋》, 行在《孝經》.'"據先後言之, 明《孝經》之文同《春秋》作也. 又《鉤命決》云: "孔子曰: '《春秋》屬商, 《孝經》屬參.'"則《孝經》之作在《春秋》後也. 

구명결에 말한 것을 살펴보면(案《鉤命決》云):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내 뜻은(吾志) 춘추에 있고(在《春秋》), 행실은(行) 효경에 있다(在《孝經》).'"라고 했다. 선후에 근거해서(據先後) 말하면(言之), 효경의 글이(《孝經》之文) 춘추와 함께(同《春秋》) 지어졌음이(作) 분명하다(也). 또(又) 구명결에서 이르길(《鉤命決》云):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춘추는(《春秋》) 자하에게 맡기고(屬商), 효경은(《孝經》) 증삼에게 맡겼다(屬參).'"라고 했으니, 곧(則) 효경을 지은 것은(《孝經》之作) 춘추 뒤에 있다(在《春秋》後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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