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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五書) 읽기/논어집주(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안연(顔淵) 12-6] 침윤지참 부수지소(浸潤之譖 膚受之愬) / 사람을 지배하는 가스라이팅을 조심해라

by मोक्ष 2024.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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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張問明.(자장문명) 子曰: “浸潤之譖, 膚受之愬, 不行焉.(침윤지참 부수지소 불행언) 可謂明也已矣.(가위명야이의) 浸潤之譖膚受之愬不行焉, 可謂遠也已矣.”(침윤지참부수지소불행언 가위언야이의)

자장이(子張) 밝음을 물었다(問明).

子曰: “서서히 스며드는(浸潤之) 참소와(譖), 피부에 닿는(膚受之) 하소연이(愬), 행해지지 않는다면(不行焉), 밝달고 말할 수 있다(可謂明也已矣). 서서히 스며드는 참소와(浸潤之譖) 피부에 닿는 하소연이(膚受之愬) 행해지지 않는다면(不行焉), 멀다고 말할 수 있다(可謂遠也已矣).”


○ 浸潤, 如水之浸灌滋潤, 漸漬而不驟也. 譖, 毁人之行也. 膚受, 謂肌膚所受, 利害切身. 如『易』所謂“剝床以膚, 切近災”者也. 愬, 愬己之冤也. 毁人者漸漬而不驟, 則聽者不覺其入, 而信之深矣. 愬冤者急迫而切身, 則聽者不及致詳, 而發之暴矣. 二者難察而能察之, 則可見其心之明, 而不蔽於近矣. 此亦必因子張之失而告之, 故其辭繁而不殺, 以致丁寧之意云.

○ 침윤은(浸潤), 물이(如水之) 뿌려져서(浸灌) 스며들고(滋潤), 차츰 적셔져서(漸漬而) 빠르게 젖지 않는 것이다(不驟也). 참은(譖), 남의 행실을(人之行) 헐뜯는 것이다(也). 부수는(膚受), 피부가 받는 것을 말하고(謂肌膚所受), 이해가 몸에 절실한 것이다(利害切身). 역에서 이른바(『易』所謂) “상을 깎아(剝床) 피부에 이르렀으니(以膚), 재앙이 매우 가깝다(切近災)”라는 것과 같다(者也). 소는(愬), 자기 원통함을(己之冤) 하소연하는 것이다(也). 남을 비방하는 것이(毁人者) 차즘 적셔져서 빠르지 않으면(漸漬而不驟, 則) 듣는 사람은(聽者) 그 들어옴을 깨닫지 못하고(不覺其入, 而) 믿음이 깊어진다(信之深矣). 원통함을 하소연하는 것이(愬冤者) 급박하고 몸에 절실하면(急迫而切身, 則) 듣는 사람이(聽者) 자세한 사정에 이르지 않고(不及致詳, 而) 드러내는 것이(發之) 포악하다(暴矣). 두 가지가(二者) 살피기 어렵지만(難察而) 살필 수 있다면(能察之, 則) 그 마음의 밝음을 볼 수 있고(可見其心之明, 而) 가까운 것에 가리지 않는다(不蔽於近矣). 이것도 또한(此亦) 반드시(必) 자장의 병통 때문에(因子張之失而) 일러준 것이고(告之), 그러므로(故) 그 말이 번다하고(其辭繁而) 줄이지 않아서(不殺, 以) 간곡한 뜻을 다했다(致丁寧之意云).


○ 楊氏曰: “驟而語之, 與利害不切於身者, 不行焉, 有不待明者能之也. 故浸潤之譖, 膚受之愬不行, 然後謂之明, 而又謂之遠. 遠則明之至也. 『書』曰: ‘視遠惟明.’”

○ 楊氏曰: “빠르게 말하는 것과(驟而語之, 與) 이해가(利害) 몸에 절실하지 않은 것이(不切於身者), 행해지지 않는 것은(不行焉), 밝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도(不待明者) 해낼 수 있다(能之也). 그러므로(故) 침윤지습과(浸潤之譖), 부수지소가(膚受之愬) 행해지지 않고 나서(不行, 然後) 밝음을 말할 수 있고(謂之明, 而) 또(又) 멀다고 말할 수 있다(謂之遠). 멀면(遠則) 밝음이 지극하다(明之至也). 서에 이르길(『書』曰): ‘멀리 보는 것이(視遠) 오직 밝다(惟明).’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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