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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 뒤안길/효경주소(孝經注疏)

[효경주소(孝經注疏) 서인장(庶人章) (2/2)] 천자부터 서인까지 효는 모두 같다 / 효무종시(孝無終始)

by मोक्ष 2024.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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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自天子至於庶人(고자천자지어서인), 孝無終始(효무종시), 而患不及者(이환불급자), 未之有也(미지유야). 《始自天子, 終於庶人, 尊卑雖殊, 孝道同致, 而患不能及者, 未之有也. 言無此理, 故曰未有.》
그러므로(故) 천자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自天子至於庶人), 효에는(孝) 시작과 끝이 없어서(모두 같아서)(無終始, 而) 미치지 못할 것을(不及) 걱정하는 사람은(患者), 있지 않다(未之有也). 《천자로부터 시작해서(始自天子), 서인에서 끝날 때까지(終於庶人), 높고 낮음은 비록 다르지만(尊卑雖殊), 효의 도는(孝道) 같이 이르러서(同致, 而) 미치지 못할까 걱정하는 사람은(患不能及者), 있지 않다(未之有也). 이런 이치는 없고(無此理), 그러므로(故) 있지 않다고 했다(曰未有)는 것이다(言).》


【疏】故自至有也. ○正義曰: 夫子述天子·諸侯·卿大夫·士·庶人行孝畢, 於此緫結之, 則有五等. 尊卑雖殊, 至於奉親, 其道不別, 故從天子已下至於庶人, 其孝道則無終始貴賤之異也. 或有自患己身不能及於孝, 未之有也. 自古及今, 未有此理, 葢是勉人行孝之辭也. 

【疏】故自至有也. ○正義曰: 부자께서(夫子) 천자, 제후, 경대부, 사, 서인이 행하는 효를 서술하기를(述天子·諸侯·卿大夫·士·庶人行孝) 마치고(畢), 여기서(於此) 총괄했으니(緫結之, 則) 5등급이 있다(有五等). 존귀함과 비천함이 비록 다르지만(尊卑雖殊), 부모를 봉양하는 것에 이르러서는(至於奉親), 그 도가 구분되지 않고(其道不別), 그러므로(故) 천자를 따라서 이하(從天子已下) 서인에 이르기까지(至於庶人), 그 효도는(其孝道則) 시작과 끝(終始) 존귀함과 천함의 다름이(貴賤之異) 없다(也). 혹(或) 스스로(自) 자신은 효에 미칠 수 없다는(己身不能及於孝) 걱정이 있는 사람은(患), 있지 않다(未之有也). 예로부터 지금까지(自古及今), 이런 이치가 있지 않았으니(未有此理), 대체로(葢) 이것이(是) 사람들로 하여금 효를 권하는(勉人行孝之) 말이다(辭也). 

 

○注始自至未有. ○正義曰: 云「始自天子, 終於庶人」者, 謂五章以天子爲始, 庶人爲終也. 云「尊卑雖殊, 孝道同致」者, 謂天子庶人尊卑雖別, 至於行孝, 其道不殊. 天子須愛親敬親, 諸侯須不驕不溢, 卿大夫於言行無擇, 士須資親事君, 庶人謹身節用, 各因心而行之斯至, 豈藉創物之智·扛鼎之力? 若率強之, 無不及也. 

○注시자부터 미유까지(始自至未有). ○正義曰: 「천자에서 시작해서(始自天子), 서인에서 끝난다(終於庶人)」라고 말한 것은(者), 다섯 장이(五章) 천자를 시작으로 하고(以天子爲始), 서인을 끝으로 삼았음을(庶人爲終) 말한다(也). 「존귀함과 비천함이 다르지만(尊卑雖殊), 효도는 이르는 곳이 같다(孝道同致)」라고 한 것은(者), 謂천자와 서인이(天子庶人) 존귀함과 비천함이 비록 구별되지만(尊卑雖別), 효행에 이르러서는(至於行孝), 그 도가 다르지 않다(其道不殊). 천자는(天子) 모름지기(須)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고(愛親敬親), 제후는 모름지기(諸侯須) 교만하지 않고 넘치지 않으며(不驕不溢), 경대부는(卿大夫) 언행에(於言行) 함부로 하는 것이 없고(無擇), 사는 모름지기(士須) 부모를 모시는 것으로(資親) 임금을 섬기고(事君), 서인은(庶人) 몸가짐을 조심하고 절약해서(謹身節用), 각자(各) 마음을 따라(因心而) 행실이(行之) 여기에 이르니(斯至), 어찌(豈) 만물을 만드는 지혜와(創物之智) 솥을 들어올릴만한 힘을(扛鼎之力) 의지하는 것이겠는가(藉)? 대체로(若率) 그것을 힘쓰면(強之), 미치지 못하는 것이 없다(無不及也). 

 

云「而患不能及者, 未之有也」者, 此謂人無貴賤尊卑, 行孝之道同致, 若各率其己分, 則皆能養親. 言患不及於孝者未有也. 說孝道包含之義廣大, 塞乎天地, 橫乎四海. 經言「孝無終始」, 謂難備終始, 但不致毀傷, 立身行道, 安其親·忠於君, 一事可稱, 則行成名立, 不必終始皆備也. 此言行孝甚易, 無不及之理, 故非孝道不終始致必反之患也. 

「그러나(而) 미치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사람은(患不能及者), 있지 않다(未之有也)」라고 말한 것은(者), 이것은(此) 사람에게(人) 귀천과 존비가 없고(無貴賤尊卑), 효를 행하는 도는(行孝之道) 같으니(同致), 만약(若) 각자(各) 자기 분수에 따르면(率其己分, 則) 모두(皆) 부모를 봉양할 수 있다는(能養親) 말이다(謂). 효에 이르지 못할까 걱정하는 사람이(患不及於孝者) 있지 않다는(未有) 말이다(也). 효도가 포함하는(孝道包含之) 뜻이 광대하고(義廣大), 천지에 가득 차고(塞乎天地), 사해를 가로지른다고(橫乎四海) 말했다(說). 경에서(經) 「효에(孝) 시작과 끝이 없다(無終始)」라고 한 것은(言), 처음과 끝을 갖추기는 어렵고(難備終始), 다만(但) 훼상하는 데 이르지 않고(不致毀傷), 몸을 세워 도를 행하여(立身行道), 그 부모를 편안히 하고(安其親)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을(忠於君), 한 가지 일로 말할 수 있으면(一事可稱, 則) 행실이 완성되고(行成) 이름이 세워지니(名立), 시작과 끝이(終始) 모두(皆) 갖추어질 필요는 없다(不必備)는 말이다(也). 이것은(此) 효를 행하는 것이(行孝) 매우 쉬워서(甚易), 이르지 못할 이치가 없고(無不及之理), 그러므로(故) 효의 도리가(孝道) 시작과 끝이 없더라도(不終始) 반드시(必) 되돌아오는 근심에 이르지 않는다는(反之患) 것을 말했다(也). 

 

云「言無此理, 故曰未有」者, 此釋「未之有」之意也. 謝萬以爲無終始, 恒患不及, 未之有者, 少賤之辭也. 劉瓛云: "禮不下庶人. 若言我賤而患行孝不及己者, 未之有也." 此但得憂不及之理, 而失於歎少賤之義也. 

「이런 이치가 없고(無此理), 그러므로(故) 있지 않다고(曰未有) 말한 것이다(言)」라고 이른 것은(者), 이것은(此) 미지유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釋「未之有」之意也). 사만은(謝萬) 시작과 끝이 없는 것이(無終始), 늘(恒) 걱정이 미쳤다(患不及)라고 여겼는데(以爲), 미지유란(未之有者), 다소 천박한 말이다(少賤之辭也). 유환이 말하길(劉瓛云): "예는(禮) 서인에게까지 내려가지 않았다(不下庶人). 만약(若) 내가 미천하여(我賤而) 효를 행하는 것이(行孝) 나에게 미치지 않을까(不及己) 걱정이다(患) 라고 말하는 사람은(者), 있지 않다(未之有也)."라고 했다. 이것은 다만(此但) 미치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憂不及之) 이치로서는 맞고(理, 而) 미천한 것을 탄식한 뜻으로는(於歎少賤之義) 맞지 않다(也). 

 

* 禮不下庶人: ≪禮記≫ 〈曲禮 上〉의 말로, 예법이 아래로 서인에게까지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서인에게는 굳이 완전한 禮를 갖추기를 요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鄭曰: "諸家皆以爲患及身, 今注以爲自患不及, 將有說乎?" 

정이 말하길(鄭曰): "제가들이 모두(諸家皆) 화가 자신에게 미친다고(患及身) 여겼는데(以爲), 지금 주는(今注) 스스로(自) 미치지 못함을 걱정한다고(患不及) 하니(以爲), 장차(將) 어떤 설명이 있는가(有說乎)?"라고 했다. 

 

荅曰: "案《說文》云: '患, 憂也. 』《廣雅》曰: '患, 惡也. 』又, 若案注說, 釋『不及』之義凡有四焉, 大意皆謂有患貴賤行孝無及之憂, 非以患爲禍也." 經傳之稱患者多矣: 《論語》「不患人之不己知」, 又曰「不患無位」, 又曰「不患寡而患不均」;《左傳》曰「宣子患之」: 皆是憂惡之辭也. 惟《蒼頡篇》謂患爲禍, 孔·鄭·韋·王之學引之以釋此經, 故皇侃曰: "無始有終, 謂改悟之善, 惡禍何必及之?" 則無始之言, 已成空設也. 

답하여 말하길(荅曰): "설문에 이른 것을 보면(案《說文》云): '환은(患), 근심이다(憂也).'라고 했다. 광아에 말하길(《廣雅》曰): '환은(患) , 걱정이다(惡也). '라고 했다. 또(又), 주석의 설명을 살펴보면(若案注說), 불급의 뜻을 풀이한 것이(釋'不及'之義) 모두 4번 있는데(凡有四焉), 큰 뜻은 모두(大意皆) 귀하고 천한 자가 효를 행함에(貴賤行孝) 미치지 못하는 근심을(無及之憂) 걱정함이 있다고 말하니(謂有患), 환을(以患) 화로 여긴 것이 아니다(爲禍也)."라고 했다. 경전에서(經傳之) 환을 칭한 것이 많은데(稱患者多矣): 논어에서(《論語》 「남이 나를 알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不患人之不己知)」, 또 말하길(又曰)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않는다(不患無位)」, 또 말하길(又曰) 「모자란 것을 걱정하지 않고(不患寡而)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한다(患不均)」; 좌전에서 말하길(《左傳》曰) 「선자가 그것을 걱정했다(宣子患之)」가 있으니: 모두(皆) 이것은(是) 근심한다는 말이다(憂惡之辭也). 오직(惟) 창힐편에서(《蒼頡篇》) 환을(患) 화라고 말했고(爲禍), 공안국, 정현, 위소, 왕숙의 학에서(孔·鄭·韋·王之學) 그것을 인용해서(引之以) 이 경을 해석했고(釋此經), 그러므로(故) 황간이 말하길(皇侃曰): "시작이 없고(無始) 끝이 있음은(有終), 잘못을 깨닫는 선으로(改悟之善), 어찌(惡) 화가(禍) 반드시 어디에 미치겠는가(何必及之)?를 말한다(謂)"라고 했는데, 곧(則) 시작이 없다는 말은(無始之言), 이미 만들어진(已成) 근거없는 설이다(空設也).

 

《禮·祭義》: "曾子說孝曰: '衆之本教曰孝, 其行曰養. 養可能也, 敬爲難. 敬可能也, 安爲難. 安可能也, 卒爲難. 父母既沒, 慎行其身, 不遺父母惡名, 可謂能終矣.'" 夫以曾參行孝, 親承聖人之意, 至於能終孝道, 尚以爲難, 則寡能無識, 固非所企也. 今爲行孝不終, 禍患必及. 此人偏執, 詎謂經通? 

예기 제의에서(《禮·祭義》): "증자가(曾子) 효를 설명하며 말하길(說孝曰): '무리의(衆之) 근본 가르침을 효라 하고(本教曰孝), 그 행실을(其行) 양이라 한다(曰養). 봉양할 수 있지만(養可能也), 공경스럽기는 어렵다(敬爲難). 공경스러울 수 있지만(敬可能也), 편안하게 하기는 어렵다(安爲難). 편안하게 할 수 있으나(安可能也), 끝마치기는 어렵다(卒爲難). 부모가 이미 돌아가시고(父母既沒), 그 몸을 신중하게 행해서(慎行其身), 부모에게 오명을 남기지 않으면(不遺父母惡名), 잘 끝마쳤다고 할 수 있다(可謂能終矣).'"라고 했다. 무릇(夫) 증삼이 효를 행하면서(以曾參行孝), 친히(親) 성인의 뜻을 받들었는데도(承聖人之意), 효도를 잘 마치는 것에 이르러서는(至於能終孝道), 오히려(尚) 어렵다고 여겼다면(以爲難, 則) 능력이 모자라고(寡能) 식견이 없으면(無識), 진실로(固) 시도할 것이 아니다(非所企也). 지금(今) 효를 행하면서(爲行孝) 마치지 못하면(不終), 화가(禍患) 반드시 이른다고 한다(必及). 이런 사람은(此人) 치우쳐서 고집하는 것이니(偏執), 어찌(詎) 경에 통달했다고 하겠는가(謂經通)? 

 

鄭曰: "《書》云: '天道福善禍淫.'" 又曰: "惠迪吉, 從逆凶, 惟影響, 斯則必有灾禍, 何得稱無也?" 

정이 묻기를(鄭曰): "서에 이르길(《書》云): '천도는(天道)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福善) 간악한 사람에게 화를 준다(禍淫).'"라고 했다. 또 말하길(又曰): "순하게 나아가면 길하고(惠迪吉), 쫒아서 거스르면 흉하며(從逆凶), 오직(惟) 그림자가 응하고(影) 메아리가 울리는 것이니(響), 그렇다면(斯則) 반드시(必) 재화가 있으니(有灾禍), 어찌(何) 없다고 말하겠는가(得稱無也)?"라고 했다. 

 

荅曰: "來問指淫凶悖慝之倫, 經言戒不終善美之輩." 《論語》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曾子曰: '參, 直養者也, 安能爲孝乎?'" 又此章云: "以養父母, 此庶人之孝也." 儻有能養而不能終, 只可未爲具美, 無宜即同淫慝也. 古今凡庸, 詎識孝道? 但使能養, 安知始終? 若今皆及於灾, 便是比屋可貽禍矣. 而當朝通識者以爲鄭注非誤, 故謝萬云: "言爲人無終始者, 謂孝行有終始也. 患不及者, 謂用心憂不足也. 能行如此之善, 曾子所以稱難, 故鄭注云: '善未有也.'" 諦詳此義, 將謂不然. 

답하여 말하길(荅曰): "와서 물은 것은(來問) 음흉하고 사특한 무리를(淫凶悖慝之倫) 가리킨 것인데(指), 경에서 말한 것은(經言) 착하고 아름다운 일을 마무리짓지 못하는 무리를(不終善美之輩) 경계한 것이다(戒)."라고 했다. 논어에 이르길(《論語》曰): "지금의 효자는(今之孝者), 바로(是) 잘 봉양하는 것만 말한다(謂能養)"라고 했다. 증자가 말하길(曾子曰): '나는(參), 단지(直) 봉양하는 사람이니(養者也), 어찌(安) 효를 잘 한다고 하겠는가(能爲孝乎)?'라고 했다. 또 이 장에서 말하길(又此章云):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以養父母), 이것은(此) 서인의 효다(庶人之孝也)."라고 했다. 혹시(儻) 봉양을 잘한 것이 있지만(有能養而) 끝맺음을 잘하지 못했다면(不能終), 단지(只) 미를 갖추지 못했다고 할 수 있으니(可未爲具美), 마땅히(宜) 곧 음흉하고 사특한 것과 같음이(即同淫慝) 없다(也). 고금의(古今) 평범한 사람이(凡庸), 어찌(詎) 효도를 알겠는가(識孝道)? 다만(但) 잘 봉양하도록 하는 것이니(使能養), 어찌(安) 시작과 끝을 알게 하겠는가(知始終)? 만약(若) 지금 모두에게(今皆) 재앙에 이른다면(及於灾), 곧(便) 是比屋可貽禍矣. 그러나(而) 당시의(한나라)(當朝) 넓은 식견을 가진 사람들은(通識者) 정현의 주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여겼고(以爲鄭注非誤), 그러므로(故) 사만이 말하길(謝萬云): "사람됨에(爲人) 시작과 끝이 없다는 것은(無終始者), 효행에(孝行) 시작과 끝이 있다는(有終始) 말이라는(謂) 것이다(也). 미치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사람은(患不及者), 마음을 쓰는 것에((用心) 부족할 것을 걱정한다는(憂不足) 말이다(也). 이와 같은 선을(如此之善) 잘 행하는 것을(能行), 증자는(曾子) 어렵다고 칭했고(所以稱難), 그러므로(故) 정주에서 말하길(鄭注云): '선이 있지 않다(善未有也).'"라고 했다. 이 뜻을 자세히 살피면(諦詳此義), 그렇지 않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將謂不然). 

 

* 凡庸(범용): 평범()하고 변변하지 못한 사람.

 

何者? 孔聖垂文, 包於上下, 盡力隨分, 寧限高卑? 則因心而行, 無不及也. 如依謝萬之說, 此則常情所昧矣. 子夏曰: "有始有卒者, 其惟聖人乎?" 若施化惟待聖人, 十載方期一遇, 加於百姓, 刑於四海, 乃爲虛說者與! 《制有》曰: "嗟乎! 孝之爲大, 若天之不可逃也, 地之不可遠也. 朕窮五孝之說, 人無貴賤, 行無終始, 未有不由此道而能立其身者. 然則聖人之德, 豈云遠乎? 我欲之而斯至, 何患不及於己者哉!"

어째서인가(何者)? 성인 공자가(孔聖) 글을 내린 것은(垂文), 상하를 포함하니(包於上下), 힘을 다해서(盡力) 분수를 따르면(隨分), 어찌(寧) 높고 낮음을 제한으로 여기겠는가(限高卑)? 즉(則) 마음을 따라서(因心而) 행하면(行), 도달하지 못할 것이 없다(無不及也). 만약(如) 사만의 설을 따른다면(依謝萬之說), 이것은 곧(此則)  인지상정이(常情) 어두운 것이다(所昧矣). 자하가 말하길(子夏曰): "시작이 있고(有始) 끝이 있는 사람은(有卒者), 오직(其惟) 성인일 뿐인가9聖人乎)?"라고 했다. 만약(若) 베풀어 교화하는 것이(施化) 오직(惟) 성인을 기다려야만 한다면(待聖人), 천 년에(十[]載) 비로소(方) 한 번 만나기를 기약해서(期一遇), 백성에게 시행되고(加於百姓), 사해에 모범이 되니(刑於四海), 곧(乃) 근거 없는 말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爲虛說者與)! 제유에 이르길(《制有》曰): "안타깝다(嗟乎)! 효가 위대한 것이(孝之爲大), 하늘이 달아나고(天之不可逃也), 땅이 멀어질 수 없는 것과 같다(地之不可遠也). 짐이(朕) 다섯 효의 설을 궁구해보니(窮五孝之說), 사람에게(人) 귀천이 없고(無貴賤), 행함에(行) 시작과 끝이 없어(無終始), 이 도에서 말미암아(由此道而) 자신을 세우지 못하는 사람이(能立其身者) 있지 않다(未有). 그렇다면(然則) 성인의 덕이(聖人之德), 어찌(豈) 멀다고 하겠는가(云遠乎)? 我欲之而斯至, 何患不及於己者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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