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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五書) 읽기/맹자집주(孟子集註)

[맹자집주(孟子集註) 진심 하(盡心 下) 37 공자재진장(광견장)[孔子在陳章(狂獧章)]] 군자는 올바른 도로 돌아갈 뿐이다

by मोक्ष 2024.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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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章問曰:(만장문왈) “孔子在陳曰:(공자재진왈) ‘盍歸乎來!(합귀호래) 吾黨之士狂簡, 進取, 不忘其初.’(오당지사광관 진취 불망기초) 孔子在陳, 何思魯之狂士?”(공자재진 하사노지광사)

만장이 묻기를(萬章問曰): “공자가(孔子) 진나라에 있으면서 말하길(在陳曰): ‘어찌(盍) 돌아가지 않겠는가(歸乎來)! 우리 당의 사가(吾黨之士) 광간하고(狂簡), 진취적이며(進取), 그 처음을 잊지 않았다(不忘其初).’라고 했습니다. 공자가(孔子) 진나라에 있으면서(在陳), 어찌(何) 노나라의(魯之) 광사를 생각했습니까(狂士)?”라고 했다.


盍, 何不也. 狂簡, 謂志大而略於事. 進取, 謂求望高遠. 不忘其初, 謂不能改其舊也. 此語與『論語』小異.

합은(盍), 하불이다(何不也). 광간은(狂簡), 뜻이 크고(志大而) 일에 간략한 것을(略於事) 말한다(謂). 진취는(進取), 구하고 보는 것이(求望) 높고 멀다는(高遠) 말이다(謂). 불망기초는(不忘其初), 그 옛 것을(其舊) 바꿀 수 없다는(不能改) 말이다(也). 이 말은(此語) 논어와(與『論語』) 조금 다르다(小異).

孟子曰: “孔子, ‘不得中道而與之, 必也狂獧乎!(공자 부득중도이여지 필야광견호) 狂者進取, 獧者有所不爲也.’(광자진취 견자유소불위야) 孔子豈不欲中道哉?(공자기불욕중도재) 不可必得, 故思其次也.”(불가필득 고사기차야)

孟子曰: “공자는(孔子), ‘중도의 <인재를> 얻어서(中道而) 함께할 수 없다면(不得與之), 반드시(必也) 광자나 견자와 함께할 것이다(狂獧乎)! 광자는 진취적이고(狂者進取), 견자는(獧者) 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有所不爲也).’라고 했다. 공자가(孔子) 어찌(豈) 중도의 인재를 바라지 않았겠는가(不欲中道哉)? 반드시 얻을 수 없었고(不可必得), 그러므로(故) 그다음을 생각한 것이다(思其次也).”


○ 不得中道, 至有所不爲, 據『論語』亦孔子之言. 然則孔子字下當有曰字. 『論語』道作行, 獧作狷. 有所不爲者, 知恥自好, 不爲不善之人也. ‘孔子豈不欲中道’以下, 孟子言也.

○ 부득중도부터(不得中道), 유소불위까지(至有所不爲), 논어에 근거해서 보면(據『論語』) 또한(亦) 공자의 말이다(孔子之言). 그렇다면(然則) 공자라는 글자(孔子字) 아래는(下) 마땅히(當) 왈이란 글자가 있어야 한다(有曰字). 논어에(『論語』) 도는 행으로 되었고(道作行), 견은 견으로 되어 있다(獧作狷). 유소불위란(有所不爲者), 부끄러움을 알고(知恥) 스스로 아껴서(自好), 불선하지 않는 (不爲不善之) 사람이다(人也). ‘공자기불욕중도(孔子豈不欲中道)’ 아래는(以下), 맹자의 말이다(孟子言也).

“敢問何如斯可謂狂矣?”(감문하여사가위광의)

“감히 묻건대(敢問) 어떠하면(何如斯) 광이라고 이를만한가요(可謂狂矣)?”


萬章問.

만장이 물었다(萬章問).

曰: “如琴張, 曾晳, 牧皮者, 孔子之所謂狂矣.”(여금장증석목피자 공자지소위광의)

曰: “금장이나 증석, 목피 같은 사람은(如琴張, 曾晳, 牧皮者), 공자가(孔子之) 이른바(所謂) 광이다(狂矣).”


琴張, 名牢, 字子張. 子桑戶死, 琴張臨其喪而歌. 事見『莊子』. 雖未必盡然, 要必有近似者. 曾晳見前篇. 季武子死, 曾晳倚其門而歌, 事見「檀弓」. 又言志異乎三子者之撰, 事見『論語』. 牧皮, 未詳.

금장은(琴張), 이름이 뢰이고(名牢), 자는 자장이다(字子張). 자상호가 죽고(子桑戶死), 금장이(琴張) 그 초상에 가서(臨其喪而) 노래 불렀다(歌). 일이(事) 장자에 보인다(見『莊子』). 비록(雖) 반드시 다 그렇지 않지만(未必盡然), 요컨대(要) 반드시 가깝고 비슷한 것이 있다(必有近似者). 증석은(曾晳) 전편에 보인다(見前篇). 계무자가 죽고(季武子死), 증석이(曾晳) 문에 기대어(倚其門而) 불렀는데(歌), 일이(事) 단궁에 보인다(見「檀弓」). 또(又) 뜻이(志) 세 사람이 선택한 것과(乎三子者之撰) 다르다고(異) 말했으니(言), 일이(事) 논어에 보인다(見『論語』). 목피는(牧皮), 알 수 없다(未詳).


“何以謂之狂也?”(하이위지광야)

“어찌하여 광이라고 불렀습니까(何以謂之狂也)?”


萬章問.

만장이 물었다(萬章問).

曰: “其志嘐嘐然, 曰: ‘古之人, 古之人.’(기지교교연 왈고지인고지인) 夷考其行而不掩焉者也.(이고기행이불엄언자야)

曰: “그 뜻이(其志) 매우 크고(嘐嘐然), 말하길(曰): ‘옛사람이여(古之人), 옛사람이여(古之人).’한다. 평소(夷) 그 행동을 보면(考其行而) <행실이 말을> 가리지 못하는 사람이다(不掩焉者也).


○ 嘐嘐, 志大言大也. 重言古之人, 見其動輒稱之, 不一稱而已也. 夷, 平也. 掩, 覆也. 言平考其行, 則不能覆其言也.
程子曰: “曾晳言志, 而夫子與之. 蓋與聖人之志同, 便是堯舜氣象也, 特行有不掩焉耳, 此所謂狂也.”

○ 교교는(嘐嘐), 뜻이 크고(志大) 말이 큰 것이다(言大也). 옛사람을(古之人) 거듭 말한 것은(重言), 그 움직임마다(其動) 여러 번 칭하고(輒稱之), 한 번만 칭한 것이 아닐 뿐임을(不一稱而已) 보인 것이다(也). 이는(夷), 평소다(平也). 엄은(掩), 덮음이다(覆也). 평고기행이라고 말한다면(言平考其行, 則) 그 말을 덮을 수 없다(不能覆其言也).


程子曰: “曾晳言志, 而夫子與之. 蓋與聖人之志同, 便是堯舜氣象也, 特行有不掩焉耳, 此所謂狂也.”

程子曰: “증석이 뜻을 말하고(曾晳言志, 而) 부자가 그것을 인정했다(夫子與之). 대개(蓋) 성인의 뜻과(與聖人之志) 같고(同), 곧(便) 이것은(是) 요순의 기상이니(堯舜氣象也), 다만(特) 행실에(行) 가리지 못하는 것이 있었을 뿐이고(有不掩焉耳), 이것이(此) 이른바(所謂) 광이다(狂也).”

狂者又不可得, 欲得不屑不潔之士而與之, 是獧也, 是又其次也.(광자우불가득 욕득불설불결지사이여지 시견야 시우기차야)

광자를(狂者) 또(又) 얻을 수 없으면(不可得), 불결한 것을(不潔) 달갑게 여기지 않는(不屑之) 선비를 얻어(士而) 함께 하려고 했으니(與之), 이것이(是) 견이고(獧也), 이것이(是) 또(又) 그다음이다(其次也).


此因上文所引, 遂解所以思得獧者之意. 狂, 有志者也; 獧, 有守者也. 有志者能進於道, 有守者不失其身. 屑, 潔也.

이것은(此) 윗글에서 인용한 것을 따라서(因上文所引), 마침내(遂) 견자를 얻으려고 생각한 것을(所以思得獧者) 해석한(之) 뜻이다(意). 광이란(狂), 뜻이 있는 사람이고(有志者也); 견이란(獧), 지키는 것이 있는 사람이다(有守者也). 뜻이 있는 사람은(有志者) 도에 나아갈 수 있고(能進於道), 지키는 것이 있는 사람은(有守者) 그 몸을 잃지 않는다(不失其身). 설으(屑), 깨끗하게 여김이다(潔也).

孔子曰: ‘過我門而不入我室, 我不憾焉者, 其惟鄕原乎!’(와아문이불이아실 아불감언자 기유향원호) 鄕原, 德之賊也.” (향원 덕지적야) 曰: “何如斯可謂之鄕原矣?”(왈 하여사가위지향원의)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내 문을 지나면서(過我門而) 내 집에 들어오지 않더라도(不入我室), 내가(我) 유감으로 여기지 않을 사람은(不憾焉者), 그것은(其) 오직(惟) 향원일 것이다(鄕原乎)!’라고 하고 향원은(鄕原), 덕의 도적이다(德之賊也).”라고 했습니다. 말하길(曰): “어떠하면(何如斯) 향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可謂之鄕原矣)?”


鄕人, 非有識者. 原, 與愿同. 『荀子』‘原慤’, 字皆讀作愿, 謂謹愿之人也. 故鄕里所謂愿人, 謂之鄕原. 孔子以其似德而非德, 故以爲德之賊. 過門不入而不恨之, 以其不見親就爲幸, 深惡而痛絶之也. 萬章又引孔子之言而問也.

향인은(鄕人), 지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非有識者). 원은(原), 원과 같다(與愿同). 순자(『荀子』) ‘원각(原慤)’의, 글자가(字) 모두(皆) 읽는 것이(讀) 원이고(作愿), 삼가는 사람을 말한다(謂謹愿之人也). 그러므로(故) 향리에서(鄕里) 이른바(所謂) 원인을(愿人), 향원이라 한다(謂之鄕原). 공자는(孔子) 그 덕과 비슷하지만(以其似德而) 덕이 아니기 때문이고(非德), 그러므로(故) 덕의 적으로 여겼다(以爲德之賊). 문을 지나면서 들어오지 않더라도(過門不入而) 한탄하지 않는 것은(不恨之), 그가 친히 와서 보지 않는 것을(以其不見親就) 다행으로 여기고(爲幸), 깊이 미워하여(深惡而) 통렬하게 끊은 것이다(痛絶之也). 만장이(萬章) 또(又) 공자의 말을 인용해서(引孔子之言而) 물었다(問也).

曰: “何以是嘐嘐也?(하이시효효야) 言不顧行, 行不顧言, 則曰: ‘古之人, 古之人.’(언불고행 행불고언 즉왈 고지인고지인) ‘行何爲踽踽涼涼?(행하위우우량량) 生斯世也, 爲斯世也, 善斯可矣.’(생사세야 위사세야 선사가의) 閹然媚於世也者, 是鄕原也.”(엄연미어세야자 시향원야)

曰: “어찌하여(何以) 이처럼(是) 말과 뜻이 큰가(嘐嘐也)? 말은(言) 행실을 돌아보지 않고(不顧行), 행실은(行) 말을 돌아보지 않고(不顧言), 그러면서 말하길(則曰): ‘옛사람이여 옛사람이여(古之人, 古之人)하는가.’라고 했다. ‘행실이(行) 어찌(何) 외롭고 쓸쓸한가(爲踽踽涼涼)?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生斯世也), 이 세상을 위해(爲斯世也), 선하다고 하면 옳다(善斯可矣).’라고 했다. 은근히(閹然) 세상에 아첨하는 사람이(媚於世也者), 바로(是) 향원이다(鄕原也).”


○ 踽踽, 獨行不進之貌. 涼涼, 薄也, 不見親厚於人也.

○ 우우는(踽踽), 홀로 가면서(獨行)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이다(不進之貌). 량량은(涼涼), 박한 것이니(薄也), 남에게(於人) 친함과 두터움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不見親厚也).


鄕原譏狂者曰: ‘何用如此嘐嘐然, 行不掩其言, 而徒每事必稱古人邪?’

향원이(鄕原) 광자를 비난하며 말하길(譏狂者曰): ‘이처럼 말과 뜻이 큰 것을(如此嘐嘐然) 어디에 쓰고(何用), 행실이(行) 그 말을 덮지 못하면서(不掩其言, 而) 다만(徒) 매사에(每事) 반드시(必) 옛사람을 일컫는가(稱古人邪)?’라고 했다.


又譏狷者曰: ‘何必如此踽踽涼涼, 無所親厚哉? 人旣生於此世, 則但當爲此世之人, 使當世之人皆以爲善則可矣,’ 此鄕原之志也. 閹, 如奄人之奄, 閉藏之意也. 媚, 求悅於人也. 孟子言此深自閉藏, 以求親媚於世, 是鄕原之行也.

또(又) 견자를 비난하며 말하길(譏狷者曰): ‘하필(何必) 이 외롭고 쓸쓸한 것처럼 해서(如此踽踽涼涼), 친애와 두터운 것이 없는가(無所親厚哉)? 사람이(人) 이미(旣)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生於此世, 則) 다만(但) 마땅히(當) 이 세상 사람을 위하고(爲此世之人),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使當世之人) 모두(皆) 선하다고 여기게 하면(以爲善則) 충분하다(可矣),’라고 했다. 이것이(此) 향원의 뜻이다(鄕原之志也). 암은(閹), 암인의 암과 같고(如奄人之奄), 가리고 숨긴다는 뜻이다(閉藏之意也). 미는(媚), 남에게 기뻐함을 구하는 것이다(求悅於人也). 맹자가(孟子) 이것은(此) 깊이(深0 스스로(自) 닫고 감추고서(閉藏, 以) 세상에 친함과 사랑을 구하는 것이니(求親媚於世), 이것이(是) 향원의 행동이다라고(鄕原之行) 말했다(也).

曰: “一鄕皆稱原人焉, 無所往而不爲原人, 孔子以爲德之賊, 何哉?”(일향개칭원인언 무소왕이불위원인 공자이위덕지적 하여)

曰: “한 마을에서(一鄕) 모두(皆) 원인이라고 일컬으면(稱原人焉), 가는 곳마다(所往而) 원인 되지 않음이(不爲原人) 없을 텐데(無), 공자가(孔子) 덕의 도적이라고 여긴 것은(以爲德之賊), 어째서인가요(何哉)?”


原, 亦謹厚之稱, 而孔子以爲德之賊, 故萬章疑之.

원도(原), 또한(亦) 근후의 칭호이고(謹厚之稱, 而) 공자가 덕의 적이라고 여기고(孔子以爲德之賊), 그러므로(故) 만장이 그것을 의심했다(萬章疑之).

曰: “非之無擧也, 刺之無刺也;(비지무거야 자지무자야) 同乎流俗, 合乎汙世;(동호유속 합호오세) 居之似忠信, 行之似廉潔;(거지사충신 행지사청결) 衆皆悅之, 自以爲是, 而不可與入堯舜之道, 故曰: ‘德之賊也’.(중개열지 자이위시 이불가여입요순지도 고왈 덕지적야)

曰: “비난하려고 해도(非之) 들 것이 없고(無擧也), 꾸짖으려고 해도(刺之) 꾸짖을 것이 없고(無刺也); 세속에 같아지고(同乎流俗),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니(合乎汙世); 머문 것은(居之) 충신과 비슷하고(似忠信), 행동은(行之) 청결과 비슷하고(似廉潔); 많은 사람이(衆) 모두(皆) 좋아하고(悅之), 스스로(自) 옳다고 여겨서(以爲是, 而) 요순의 도에()入堯舜之道) 함께 참여할 수 없고(不可與), 그러므로 말하길(故曰): ‘덕의 적이라고(德之賊也)’한다.


呂侍講曰: “言此等之人, 欲非之則無可擧, 欲刺之則無可刺也.” 流俗者, 風俗頹靡, 如水之下流, 衆莫不然也. 汙, 濁也. 非忠信而似忠信, 非廉潔而似廉潔.

呂侍講曰: “言此等之人, 欲非之則無可擧, 欲刺之則無可刺也.” 流俗者, 風俗頹靡, 如水之下流, 衆莫不然也. 汙, 濁也. 非忠信而似忠信, 非廉潔而似廉潔.

孔子曰: ‘惡似而非者, 惡莠, 恐其亂苗也;(오사이비자 오유 공기란묘야) 惡佞, 恐其亂義也;(오녕 공기란의야) 惡利, 恐其亂信也;(오리 공기란신야) 惡鄭聲, 恐其亂樂也;(오정성 공기란악야) 惡紫, 恐其亂朱也;(오자 공기란주야) 惡鄕原, 恐其亂德也.’(오향원 공기란덕야)

孔子曰: ‘비슷하지만 그른 것을 미워하니(惡似而非者), 피를 미워하는 것은(惡莠), 그것이 뼈 싹을 어지럽힐까 두려운 것이고(恐其亂苗也); 말재주를 미워하는 것은(惡佞), 그것이 의를 어지럽힐까 두려운 것이고(恐其亂義也); 리를 미워함은(惡利), 그것이 신을 어지럽힐까 두려운 것이고(恐其亂信也); 정성을 미워하는 것은(惡鄭聲), 그것이 악을 해칠가 두려운 것이고(恐其亂樂也); 자줏빛을 미워함은(惡紫), 그것을 붉은색을 어지럽힐까 두려운 것이고(恐其亂朱也); 향원을 미워함은(惡鄕原), 그가 덕을 어지럽힐까 두려운 것이다(恐其亂德也).’


○ 孟子又引孔子之言以明之. 莠, 似苗之草也. 佞, 才智之稱, 其言似義而非義也. 利口, 多言而不實者也. 鄭聲, 淫樂也. 樂, 正樂也. 紫, 閒色. 朱, 正色也. 鄕原不狂不獧, 人皆以爲善, 有似乎中道而實非也, 故恐其亂德.

○ 맹자가(孟子) 또(又) 공자의 말을 인용해서(引孔子之言以) 밝혔다(明之). 유는(莠), 벼싹과 비슷한(似苗之) 풀이다(草也). 녕은(佞), 재주와 지혜를 말한 것이고(才智之稱), 그 말이(其) 의와 비슷하지만(言似義而) 의가 아니다(非義也). 이구는(利口), 말을 많이 하지만(多言而) 실질이 없는 사람이다(不實者也). 정성은(鄭聲), 음탕한 음악이다(淫樂也). 악은(樂), 정악이다(正樂也). 자는(紫), 간색이다(閒色). 주는(朱), 정색이다(正色也). 향원은(鄕原) 광도 아니고(不狂) 견도 아니고(不獧), 사람들이(人) 모두(皆) 선하다고 여기고(以爲善), 중도와 비슷한 점이 있지만(有似乎中道而) 실제로는 아니고(實非也), 그러므로(故) 그가 덕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한 것이다(恐其亂德).

君子反經而已矣.(군자반경이이의) 經正, 則庶民興;(경정 즉서민흥) 庶民興, 斯無邪慝矣.”(서민흥 사무사특의)

군자는(君子) 떳떳한 도리로 돌아갈 뿐이다(反經而已矣). 도리가 바르면(經正, 則) 백성이 흥하고(庶民興); 백성이 흥하면(庶民興, 斯) 사특함이 없을 것이다(無邪慝矣).”


反, 復也. 經, 常也, 萬世不易之常道也. 興, 興起於善也. 邪慝, 如鄕原之屬是也. 世衰道微, 大經不正, 故人人得爲異說以濟其私, 而邪慝幷起, 不可勝正, 君子於此, 亦復其常道而已. 常道旣復, 則民興於善, 而是非明白, 無所回互, 雖有邪慝, 不足以惑之矣.

반은(反), 돌아감이다(復也). 경은(經), 떳떳함이고(常也), 만세에(萬世) 변하지 않는(不易之) 상도다(常道也). 흥은(興), 선에 흥기하는 것이다(興起於善也). 사특은(邪慝), 향원과 같은 따위가(如鄕原之屬) 이것이다(是也). 세상이 쇠하고(世衰) 도가 미약하지고(道微), 큰 도리가(大經) 바르지 않고(不正), 그러므로(故) 사람마다(人人) 이설을 만들어(得爲異說以) 자기 사욕을 이루려고 하니(濟其私, 而) 사특함이 함께 일어나서(邪慝幷起), 이루 다 바로잡을 수 없고(不可勝正), 군자가(君子) 이것에 대해(於此), 또(亦) 그 상도로 돌아갈 뿐이다(復其常道而已). 상도가(常道) 이미 회복되면(旣復, 則) 백성이(民) 선에 흥기하고(興於善, 而) 옳고 그름이 명백해지고(是非明白), 감추고 숨기는 것이 없으니(無所回互), 비록(雖) 사특함이 있더라도(有邪慝), 그들을 미혹할 수 없다(不足以惑之矣).


○ 尹氏曰: “君子取夫狂獧者, 蓋以狂者志大而可與進道, 獧者有所不爲, 而可與有爲也. 所惡於鄕原, 而欲痛絶之者, 爲其似是而非, 惑人之深也. 絶之之術無他焉, 亦曰反經而已矣.”

○ 尹氏曰: “군자가(君子) 광자와 견자를 취하는 것은(取夫狂獧者), 대체로(蓋) 광자가 뜻이 커서(以狂者志大而) 도에 함께 나아갈 수 있고(可與進道), 견자에게(獧者) 하지 않는 것이 있어서(有所不爲, 而) 큰 일을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可與有爲也). 향원을 미워하고(所惡於鄕原, 而) 통렬하게 끊으려고 한 것은(欲痛絶之者), 그 옳은 것과 비슷하지만 그르기 때문에(爲其似是而非),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惑人之) 깊어서이다(深也). 그것을 끊는 방법에(絶之之術) 다른 것이 없고(無他焉), 또한(亦) 날로(曰) 떳떳함으로 돌아갈 뿐이다(反經而已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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