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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五書) 읽기/논어집주(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공야장(公冶長) 5-25] 무벌선 무시로(無伐善 無施勞) / 자랑하지 않고 떠벌리지 않는다

by मोक्ष 2024.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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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淵, 季路侍.(안연 계로시) 子曰: “盍各言爾志?”(자왈 합각언이지)

안연과 자로가(顔淵, 季路) <선생님을> 모시고 앉아 있었다(侍).

선생님이 말하길(子曰): “각자(各) 너희의 뜻을 말해보거라(言爾志)?”라고 했다.


○ 盍, 何不也.

○ 합은(盍), 하불이다(何不也).

子路曰: “願車馬, 衣輕裘, 與朋友共.(자로왈 원거마 의경구 여붕우공) 敝之而無憾.”(폐지이무감)

자로가 말하길(子路曰): “원컨대(願) 수레와 옷(車馬), 옷과 가벼운 갖옷을(衣輕裘), 벗과 함께(與朋友) 공유하고 싶습니다(共). 해지더라도(敝之而) 유감이 없으면 합니다(無憾).”라고 했다.


○ 衣, 服之也. 裘, 皮服. 敝, 壞也. 憾, 恨也.

○ 의(衣)는, 입는다는 말이다(服之也). 구는(裘), 가죽옷이다(皮服). 폐는(敝), 해짐이다(壞也.) 감은(憾), 한스러움이다(恨也).

顔淵曰: “願無伐善, 無施勞.”(안연왈 원무벌선 무시로)

안연이 말하길(顔淵曰): “원컨대(願) 능력 있음을 자랑하지 않고(無伐善), 공로 있음을 뽐내지 않겠습니다(無施勞).”라고 했다.


伐, 誇也. 善, 謂有能. 施, 亦張大之意. 勞, 謂有功, 『易』曰 “勞而不伐” 是也. 或曰: “勞, 勞事也. 勞事非己所欲, 故亦不欲施之於人.” 亦通.

벌은(伐), 자랑함이다(誇也). 선은(善), 능력 있음을 말한다(謂有能). 시는(施), 또한(亦) 펴고 크게 한다는 뜻이다(張大之意). 로는(勞), 공이 있음을 말하니(謂有功), 주역에 이르길(『易』曰) “공이 있더라도(勞而) 자랑하지 않는다(不伐)”란 것이 이것이다(是也).

누군가 말하길(或曰): “로는(勞), 힘든 일이다(勞事也). 힘든 일은(勞事) 자기가 하려는 것이 아니고(非己所欲), 그러므로 또한(故亦) 남에게 시키려고 하지 않는다(不欲施之於人).”라고 했다. 또한 통한다(亦通).

子路曰: “願聞子之志.”(자로왈 원문자지지) 子曰: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자왈 노자안지 붕우신지 소자회지)

자로가 말하길(子路曰): “원컨대(願) 선생님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聞子之志).”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길(子曰): “늙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고(老者安之), 벗에게 믿음을 주고(朋友信之), 젊은 사람들을 품어주고 싶다(少者懷之).”라고 했다.

 

老者養之以安, 朋友與之以信, 少者懷之以恩. 一說: 安之, 安我也; 信之, 信我也; 懷之, 懷我也. 亦通.

늙은 사람은(老者) 편안함으로 봉양하고(養之以安), 벗은(朋友) 믿음으로 사귀고(與之以信), 젊은이는(少者) 은혜로움으로 품어준다(懷之以恩). 일설에는(一說): 안지는(安之), 나를 편안하게 여기는 것이고(安我也); 신지는(信之), 나를 믿게 하는 것이고(信我也); 회지는(懷之), 나를 품는 것이다(懷我也). 또한 통한다(亦通).


○ 程子曰: “夫子安仁, 顔淵不違仁, 子路求仁.”

○ 程子曰: “부자는(夫子) 인에 편안하고(安仁), 안연은 인을 어기지 않고(顔淵不違仁), 자로는 인을 구한다(子路求仁).”


又曰: “子路ㆍ顔淵ㆍ孔子之志, 皆與物共者也, 但有小大之差爾.”

又曰: “자로와 안연, 공자의 뜻이(子路ㆍ顔淵ㆍ孔子之志), 모두(皆) 남과 더불어(與物) 함께하는 것이고(共者也), 다만(但) 크고 작음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有小大之差爾).”


又曰: “子路勇於義者, 觀其志, 豈可以勢利拘之哉? 亞於浴沂者也. 顔子不自私己, 故無伐善; 知同於人, 故無施勞. 其志可謂大矣, 然未免出於有意也. 至於夫子, 則如天地之化工, 付與萬物而己不勞焉, 此聖人之所爲也. 今夫羈靮以御馬而不以制牛, 人皆知羈靮之作在乎人, 而不知羈靮之生由於馬, 聖人之化, 亦猶是也. 先觀二子之言, 後觀聖人之言, 分明天地氣象. 凡看『論語』, 非但欲理會文字, 須要識得聖賢氣象.”

又曰: “자로가(子路) 의에 용감한 사람이니(勇於義者), 그 뜻을 보면(觀其志), 어찌(豈) 권세와 이익으로(可以勢利) 그를 얽을 수 있겠는가(拘之哉)? 기수에서 목욕하는 것의 다음이다(亞於浴沂者也). 안자는(顔子) 스스로 사사로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았고(不自私己), 그러므로(故)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으며(無伐善); 남과 같음을 알았고(知同於人), 그러므로 공로를 과시하지 않았다(故無施勞). 그 뜻이 크다고 할 수 있지만(其志可謂大矣), 그러나(然) 뜻이 있음을 벗어나지 못했다(未免出於有意也). 

부자에 이르러서는(至於夫子, 則) 마치(如) 천지의 조화를 이룬 장인이(天地之化工), 만물에 부여하고도(付與萬物而己) 공으로 여기지 않는 것과 같으니(不勞焉), 이것이(此) 성인이 하는 것이다(聖人之所爲也). 지금(今) 저 말 재갈은(夫羈靮) 말을 몰고(以御馬而) 소를 제어하지 않는데(不以制牛), 사람들은 모두(人皆) 말 재갈을 만든 것이(羈靮之作) 사람에 있는 것을 알고(在乎人, 而) 말 재갈이(羈靮之) 말에게서 생겨난 것임을(生由於馬) 알지 못하니(不知), 성인의 교화도(聖人之化), 또한(亦) 이와 같다(猶是也). 먼저(先) 두 제자의 말을 살피고(觀二子之言), 나중에(後) 성인의 말을 살펴보면(觀聖人之言), 천지의 기상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分明天地氣象). 무릇(凡) 논어를 보면(看『論語』), 비단(非但) 문자를 이해하려고만 하지 말고(欲理會文字), 모름지기(須) 성인의 기상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要識得聖賢氣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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