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 8-13] 초왕도강(楚王渡江) - 초왕이 강을 건너다 평실을 얻었다
楚王渡江, 江中有物大如斗, 圓而赤, 直觸王舟, 舟人取之, 王大怪之, 遍問群臣, 莫之能識. 王使使聘于魯, 問於孔子子曰: “此所謂萍實者也, 萍水草也可剖而食也, 吉祥也, 唯霸者爲能獲焉.” 使者反, 王遂食之, 大美久之使來以告魯大夫, 大夫因子游問曰: “夫子何以知其然乎?” 曰: “吾昔之鄭, 過乎陳之野, 聞童謠曰: ‘楚王渡江得萍實, 大如斗, 赤如日, 剖而食之甛如蜜’此是楚王之應也吾是以知之”초왕이(楚王) 강을 건너는데(渡江), 강 가운데(江中) 물건이 있어(有物) 크기가 말과 같았고(大如斗), 둥글고 붉은데(圓而赤), 왕의 배에(王舟) 곧장 와서 닿으니(直觸), 뱃사람이(舟人) 그것을 취했는데(取之), 왕이(王) 매우 이상하게 여겨(大怪之), 여러 신하에게 두루 물었지만(遍問群臣), 누구도(莫之) 알지 못했다(能識). ..
2025. 1. 6.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 8-12] 공자장행(孔子將行) - 공자의 우산
孔子將行, 雨而無蓋門人曰: “商也有之.” 孔子曰: “商之爲人也, 甚恡於財, 恡嗇甚也 吾聞與人交, 推其長者, 違其短者故能久也”공자가 길을 나서려는데(孔子將行), 비가 왔고(雨而) 우산이 없자(無蓋) 문인이 말하길(門人曰): “상(자하)에게(商也) 있습니다(有之).”라고 했다.공자가 말하길(孔子曰): “자하의 사람됨이(商之爲人也), 재물을(於財) 매우 아끼니(甚恡), 내가 듣기로(吾聞) 남과 교유할 때(與人交), 그 장점을 밀어주고(推其長者), 그 단점은 숨기는 것이(違其短者), 사귐이(故) 오래갈 수 있다(能久也).”라고 했다.
2025. 1. 6.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 8-11] 선이충신(先以忠信) - 충과 신을 우선하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孔子自衛反魯, 息駕于河梁而觀焉河水無梁莊周書說孔子於閭梁言事者通渭水爲河也有懸水三十仞, 八尺曰仞懸二十四丈者也圜流九十里, 圜流迴流也水深急則然魚鱉不能導, 黿鼉不能居道行有一丈夫方將厲之, 厲渡孔子使人並涯止之曰: “此懸水三十仞, 圜流九十里, 魚鱉黿鼉不能居也, 意者難可濟也” 丈夫不以措意, 遂渡而出孔子問之, 曰: “子乎有道術乎, 所以能入而出者, 何也?” 丈夫對曰: “始吾之入也, 先以忠信, 及吾之出也, 又從以忠信, 忠信措吾軀於波流, 而吾不敢以用私, 所以能入而復出也” 孔子謂弟子曰: “二三子識之, 水且猶可以忠信成身親之, 而況於人乎!” 공자가(孔子) 위나라로부터(自衛) 노나라로 돌아오는데(反魯), 작은 다리에서(于河梁) 마차를 세워 쉬며(息駕而) 구경했다(觀焉). 폭포가 하나 있어(有懸水) 30 길이나 되고(三十仞), 둘러싸고..
2025. 1. 6.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 8-10] 공자지담(孔子之郯) - 공자가 담에 가는 길에 정자를 만났다
孔子之郯, 遭程子於塗, 傾蓋而語, 終日甚相親. 顧謂子路曰: “取束帛以贈先生” 子路屑然對曰: “由聞之士不中間見, 女嫁無媒, 君子不以交禮也.” 有間, 又顧謂子路, 子路又對如初, 孔子曰: “由, 詩不云乎: ‘有美一人, 淸揚宛兮, 邂逅相遇, 適我願兮’淸揚眉目之間也宛然美也幽期而會令願也今程子, 天下賢士也, 於斯不贈, 則終身弗能見也, 小子行之”공자가 담에 갔는데(孔子之郯), 길에서(於塗) 정자를 만났고(遭程子), 덮개를 기울이고(傾蓋而) 대화를 했는데(語), 종일토록 이야기하며(終日) 서로 매우 친해졌다(甚相親). 돌아보며(顧) 자로에게 말하길(謂子路曰): “저 비단 꾸러미를 가져다가(取束帛以) 선생에게 주어라(贈先生.)”라고 했다.자로가(子路) 불쾌한 빛을 띠며 대답하길(屑然對曰): “제가 듣기로(由聞之) 선비가(..
2025. 1. 6.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 8-9] 자로부미(子路負米) / 백리부미(百里負米) - 자로가 부모를 모시는 일에 힘을 다했다
子路見於孔子曰: “負重涉遠, 不擇地而休, 家貧親老, 不擇祿而仕. 昔者由也, 事二親之時, 常食藜藿之實, 爲親負米百里之外. 親歿之後, 南遊於楚, 從車百乘, 積粟萬鍾, 累茵而坐, 列鼎而食. 願欲食藜藿, 爲親負米, 不可復得也. 枯魚銜索, 幾何不蠹, 二親之壽, 忽若過隙” 孔子曰: “由也事親, 可謂生事盡力, 死事盡思者也”자로가(子路) 공자를 만나서 말하길(見於孔子曰): “무거운 것을 지고(負重) 먼 길을 갈 때는(涉遠), 땅을 가리지 않고(不擇地而) 쉬며(休), 집안이 가난하고(家貧) 부모가 늙었으면(親老), 녹을 가리지 않고(不擇祿而) 벼슬합니다(仕). 옛날(昔者) 제가(由也), 양친을 모실 때(事二親之時), 늘(常) 보잘것없는 음식을 먹었지만(食藜藿之實), 부모를 위해(爲親) 백 리 밖에서(百里之外) 쌀을 지고..
2025. 1. 6.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 8-8] 종일불권(終日不倦) - 종일토록 싫증 나지 않는 것은 학문 뿐이다
孔子謂伯魚曰: “鯉乎, 吾聞可以與人終日不倦者, 其唯學焉. 其容體不足觀也, 其勇力不足憚也, 其先祖不足稱也, 其族姓不足道也, 終而有大名, 以顯聞四方, 流聲後裔者, 豈非學之效也, 故君子不可以不學. 其容不可以不飭, 不飭無類, 無類失親, 類宜爲貌不在飭, 故無貌不得言, 不飭無類也. 禮貌矜莊然後親愛可久, 故曰無類失親也. 失親不忠, 情不相親, 則無忠誠不忠失禮, 禮以忠信爲本失禮不立非禮, 則無以立夫遠而有光者, 飭也; 近而愈明者, 學也譬之汙池, 水潦注焉, 雚葦生焉, 雖或以觀之, 孰知其源乎” 공자가(孔子) 백어에게 말하길(謂伯魚曰): “리야(鯉乎), 내가 듣기로(吾聞) 남과 더불어(可以與人) 종일토록 하더라도(終日) 싫증 나지 않는 것이(不倦者), 그것은 오직(其唯) 학문이다(學焉). 그 용모는(其容體) 볼 것이 없고(不足觀..
2025. 1. 5.
[소학집주(小學集註) 선행(善行) 실경신(實敬身) 6-81] 청빈하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汪信民嘗言, 人常咬得菜根, 則百事可做.(왕신민상언 인상교득채근 즉백사가주) 胡康侯聞之, 擊節嘆賞. 右, 實敬身.왕신민이(汪信民) 일찍이 말하길(嘗言), 사람은(人) 항상(常) 나물 뿌리를 씹을 수 있으면(咬得菜根, 則) 모든 일을(百事) 할 수 있다(可做). 호강후가 이것을 듣고(胡康侯聞之), 무릎을 치면서(擊節) 감탄했다(嘆賞). 이상은(右), 경신을 실증한 것이다(實敬身). [集說] 陳氏曰信民, 名革, 臨川人. 康侯, 文定公字也. 人能甘淡泊而不以外物動心, 則可以有爲矣. 擊節, 一說, 擊手指節, 一說, 擊器物爲節, 皆通. 嘆, 嗟嘆, 賞, 稱賞. 朱子曰學者須常以志士不忘在溝壑, 爲念, 則道義重而計較死生之心, 輕矣, 況衣食外物, 至微末事, 不得, 未必便死, 亦何用犯義犯分, 役心役志, 營營以求之耶? 某觀今..
2025. 1. 5.
[소학집주(小學集註) 선행(善行) 실경신(實敬身) 6-80] 내 본성이 그러할 뿐이다
溫公曰, 吾家本寒族, 世以淸白相承.(온공왈 오가본한족 세이청백상승) 吾性不喜華靡, 自爲乳兒時, 長者加以金銀華美之服, 輒羞赧棄去之.(오성불희화미 자위유아시 장자가이금은화미지복 첩수난기거지) 年二十忝科名, 聞喜宴獨不戴花. 同年曰, 君賜, 不可違也, 乃簪一花.(년이십첨과명 문희연독부대화 동년왈 군사 불가위야 내잠일화) 平生衣取蔽寒, 食取充腹, 亦不敢服垢弊, 以矯俗干名.(평생의취폐한 식취충복 역불감복구폐 이교속간명) 但順吾性而已.(단순오성이이)온공이 말하길(溫公曰), 우리 집안은(吾家) 본래(本) 별것 없었고(寒族), 대대로(世以) 청백으로(淸白) 서로 이었다(相承). 내 본성이(吾性) 화려하고 낭비하는 것을(華靡) 좋아하지 않았고(不喜), 어렸을 때부터(自爲乳兒時), 어룬이(長者) 금은으로 화려하게 꾸민 옷을..
2025. 1. 5.
[소학집주(小學集註) 선행(善行) 실경신(實敬身) 6-79] 물박이정후(物薄而情厚) - 물건이 소박해도 정은 두터웠다
溫公曰, 先公爲群牧判官, 客至, 未嘗不置酒.(온공왈 선공위군목판관 객지 미상불치주) 或三行, 或五行, 不過七行,(혹삼행 혹오행 불과칠행) 酒沽於市, 果止梨栗棗柿. 肴止脯醢菜羹, 器用甆漆.(주고어시 과지이율조시 효지포해채갱 기용자칠) 當時士大夫皆然, 人不相非也.(당시사대부개연 인불상비야) 會數而禮勤, 物薄而情厚.온공이 말하길(溫公曰), 아버지가(先公) 군목판관이었을 때(爲群牧判官), 손님이 오면(客至), 일찍이 술자리를 마련하지 않은 적이 없다(未嘗不置酒). 호 세 번 돌고(或三行), 혹 다섯 번 돌고(或五行), 일곱 번을 넘지 않았다(不過七行), 술은(酒) 시장에서 사 오고(沽於市), 과일은(果) 배와 밤, 대추, 감뿐이었고(止梨栗棗柿), 안주는(肴) 포와 젓갈, 나물국뿐이었고(止脯醢菜羹), 그릇은(器)..
2025. 1. 5.
[소학집주(小學集註) 선행(善行) 실경신(實敬身) 6-78] 평소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張文節公爲相, 自奉如河陽掌書記時.(장문절공위상 자봉여하양장서기시) 所親故規之曰, 今公受俸不少, 而自奉若此.(소친고규지왈 금공수봉불소 이자봉약차) 雖自信淸約, 外人頗有公孫布被之譏. 公宜少從衆.(수자신청약 외인파유공손포피지기) 公嘆曰, 吾今日之俸, 雖擧家錦衣玉食, 何患不能.(공탄왈 오금일지봉 수거가금의옥식 하환불능) 顧人之常情, 由儉入奢易, 由奢入儉難.(고인지상정 유검입치이 유치입검난) 吾今日之俸, 豈能常有, 身豈能常存.(오금일지봉 기능상유 신기능상존) 一旦異於今日, 家人習奢已久, 不能頓儉, 必至失所.(일단이어금일 가인습치이구 불능둔검 필지실소) 豈若吾居位去位身存身亡如一日乎.장문절공이(張文節公) 재상이 되어(爲相), 자기를 봉양하는 것이(自奉) 하양 장서기 시절과(河陽掌書記時) 같았다(如). 친한 친구인 사..
2025. 1. 5.
[소학집주(小學集註) 선행(善行) 실경신(實敬身) 6-77] 근검 절약하는 생활
李文靖公治居第於封丘門外, 廳事前僅容旋馬. 或言, 其太隘, 公笑曰, 居第當傳子孫. 此爲宰輔廳事誠隘, 爲太祝奉禮廳事, 則已寬矣.이문청공이(李文靖公) 봉구문 밖에(於封丘門外) 살 집을 짓는데(治居第), 청사 앞이(廳事前) 말 돌리는 것을(旋馬) 겨우 허용할 정도였다(僅容). 누군가 말하길(或言), 그것이 너무 좁다(其太隘)라고 하자, 공이 웃으며 말하길(公笑曰), 살 집은(居第) 마땅히(當) 자손에게 주어야 한다(傳子孫). 이것이(此) 재보의 청사가 되기에는(爲宰輔廳事) 참으로 좁지만(誠隘), 태축과 봉례의 청사가 되기에는(爲太祝奉禮廳事, 則) 너무 넓다(已寬矣)라고 했다. * 宰輔(재보): 임금을 돕고 모든 관원(官員)을 지휘(指揮)하고 감독(監督)하는 일을 맡아보던 이품(二品) 이상(以上)의 벼슬. [..
2025. 1. 5.
[소학집주(小學集註) 선행(善行) 실경신(實敬身) 6-76] 고시랑 형제의 청렴함
柳玭曰, 高侍郞兄弟三人, 俱居淸列, 非速客, 不二羹胾, 夕食齕蔔匏而已.(유반왈 고시랑형제삼인 구거청렬 비속객 불이갱자 석식흘복포이이)유빈이 말하길(柳玭曰), 고시랑에게(高侍郞) 형제가 셋인데(兄弟三人), 모두(俱) 청직에 있었고(居淸列), 손님을 부른 때가 아니면(非速客), 국과 고기를 둘 이상으로 하지 않았고(不二羹胾), 저녁밥에는(夕食) 무와 박을 깨물 뿐이었다(齕蔔匏而已)라고 했다. [集解] 高氏兄弟, 唐人, 長釴(亦), 翰林學士, 次銖(殊), 給事中, 次鍇(皆), 禮部侍郞. 速, 召也. 不貳, 無兼味也. 胾, 切肉也. 蔔匏, 菜名.[集解] 고씨 형제는(高氏兄弟), 당나라 사람으로(唐人), 맏아들 고식은(長釴), 한림학사였고(翰林學士), 둘째 고주는(次銖), 급사중이었고(給事中), 다음 고개는(次鍇..
2025.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