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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五書) 읽기1297

[소학집주(小學集註) 선행(善行) 실명륜(實明倫) 6-53] 이상가의 집안이 번성한 이유 溫公曰, 國朝公卿能守先法, 久而不衰者, 唯故李相家. 子孫數世至二百餘口, 猶同居共爨, 田園邸舍所收及有官者俸祿, 皆聚之一庫, 計口日給餉, 婚姻喪葬所費, 皆有常數, 分命子弟, 掌其事. 其規模大抵出於翰林學士宗諤所制也. 右, 實明倫.온공이 말하길(溫公曰), 나라와 조정의(國朝) 공경 가운데(公卿) 선인의 법을 지켜서(能守先法), 오래 하고도(久而) 쇠하지 않은 것은(不衰者), 오직(唯) 옛(故) 이상가 집안이다(李相家). 자손이(子孫) 몇 대에 걸쳐(數世) 200여 명에 이르렀는데(至二百餘口), 오히려(猶) 함께 살면서(同居) 밥을 같이 지어먹고(共爨), 농지와(田園) 객점이(邸舍) 거둔 수입과(所收及) 관직에 있는 사람의 봉록을(有官者俸祿), 모두(皆) 한 창고에 모아서(聚之一庫), 식구 숫자를 헤아려(計口) .. 2025. 1. 3.
[소학집주(小學集註) 선행(善行) 실명륜(實明倫) 6-52] 개도 감화시킨 강주 진씨 가족 江州陳氏, 宗族七百口.(강주진씨 종족칠백구) 每食設廣席, 長幼以次坐, 而共食之.(매식설광석 장유이차좌 이공식지) 有畜犬百餘, 共一牢食. 一犬不至, 諸犬爲之不食.(유축견백여 공일뢰식 일견부지 제견위지불식)강주의 진씨는(江州陳氏), 일족이(宗族) 700 명이었다(七百口). 밥 먹을 때마다(每食) 넓은 자리를 펴고(設廣席), 어른과 아이가(長幼) 차례대로 앉아서(以次坐, 而) 함께 먹었다(共食之). 기르는 개 100여 마리가 있었는데(有畜犬百餘), 함께(共) 한 우리에서 먹었다(一牢食). 개 한 마리가(一犬) 오지 않으면(不至), 여러 개들이(諸犬) 그를 위해(爲之) 먹지 않았다(不食). [集說] 陳氏曰江州, 今九江府. 陳氏, 名褒, 南唐人. 十世同居宗, 犬知愛其類, 和順之所感也.[集說] 진씨가 말하길(陳氏.. 2025. 1. 3.
[소학집주(小學集註) 선행(善行) 실명륜(實明倫) 6-51] 유공탁의 가법이 매우 엄했다 唐河東節度使柳公綽在公卿間, 最名有家法.(당하종절도사유공탁재공경간 최명유가법)당나라(唐) 하동절도사(河東節度使) 유공탁은(柳公綽) 공경 사이에 있어서(在公卿間), 가법이 있는 것으로(有家法) 가장 명성이 있었다(最名).  [集解] 公綽, 字子寬. [集解] 공탁은 자가 자관이다(公綽, 字子寬). 中門東有小齋, 自非朝謁之日, 每平旦輒出至小齋, 諸子仲郢皆束帶, 晨省於中文之北. 公綽決私事, 接賓客, 與弟公權及群從弟再會食, 自朝至莫不離小齋, 燭至則命一人子弟, 執經史, 躬讀一過訖, 乃講議居官治家之法, 或論文, 或聽琴, 至人定鍾, 然後歸寢, 諸子復昏定於中門之北. 凡二十餘年, 未嘗一日變易. 중문 동쪽에(中門東) 작은 방이 있어서(有小齋), 조회에서 알현하는 날이 아니면(自非朝謁之日), 새벽마다(每平旦) 번번이(輒) 나.. 2025. 1. 3.
[소학집주(小學集註) 선행(善行) 실명륜(實明倫) 6-50] 사람은 몰라도 하늘은 안다 韓文公作董生行曰, 淮水出桐栢山, 東馳遙遙, 千里不能休, 淝水出其側, 不能千里, 百里入淮流.(한문공작동생행왈 회수출동백산 동치요요 천리불능휴 사수출기측 불능천리 백리입회류) 壽州屬縣有安豊, 唐貞元年時, 縣人董生召南, 隱居行義於其中.(수주속현유안풍 당정원년시 현인동생소남 은거행의어기중) 刺史不能薦, 天子不聞名聲, 爵祿不及門.(자사불능천 천자불문명성 작록불급문) 門外惟有吏, 日來徵租更索錢.(문외유유리 일래징조갱색전)한문공이(韓文公) 동생행을 지어(作董生行) 말하길(曰), 회수가(淮水) 동백산에서 나와(出桐栢山), 동으로 달려(東馳) 멀리 흘러서(遙遙), 천 리를 가도(千里) 멈추지 않는데(不能休), 비수는(淝水) 그 옆에서 나와(出其側), 천리를 가지 못하고(不能千里), 백 리를 가서(百里) 회수에 들어가(入.. 2025. 1. 2.
[소학집주(小學集註) 선행(善行) 실명륜(實明倫) 6-49] 9대가 한 집에 살 수 있는 까닭 張公藝九世同居.(장공예구세동거) 北齊隋唐, 皆旌表其門.(북제수당 개정표기문)  麟德中, 高宗封泰山, 幸其宅, 召見公藝, 問其所以能睦族之道,(인덕중 고종봉태산 행기택 소견공예 문기소이능목족지도) 公藝請紙筆以對, 乃書忍字百餘以進.(공예청지필이대 내서인자백여이진)  其意以爲宗族所以不協, 由尊長衣食, 或有不均, 卑幼禮節, 或有不備,(기의이위종족소이불협 유존장의식 혹유불균 비유예절 혹유불비) 更相責望, 遂爲乖爭.(경상책망 수위괴쟁) 苟能相與忍之, 則家道雍睦矣.(구능상여인지 즉가도옹목의)장공예는(張公藝) 9대가(九世) 함께 살았다(同居). 북제와 수, 당 시대에(北齊隋唐), 모두(皆) 그 문에(其門) 칭송하는 표식을 했다(旌表). 인덕 연간에(麟德中), 고종이(高宗) 태산에 봉(제사)하고(封泰山), 그 집에 들러서.. 2025. 1. 2.
[소학집주(小學集註) 선행(善行) 실명륜(實明倫) 6-48] 왕응이 항상 엄격했다 王凝常居慄如也.(왕응상거율여야) 子弟非公服, 不見, 閨門之內若朝廷焉.(자제비공복불견 규문지내약조정언) 御家以四敎, 勤儉恭恕.(어가이사교 근검공서) 正家以四禮, 冠婚喪祭. (정가이사례 관혼상제)왕응이(王凝) 늘 거처하는 것이(常居) 엄격했다(慄如也). 자제가(子弟) 공복을 입지 않으면(非公服), 보지 않았고(不見), 규문 안에서(閨門之內) 마치(若) 조정에 있는 듯했다(朝廷焉). 네 가지 가르침으로 집을 다스렸으니(御家以四敎), 근면, 검소, 공손, 관용이었다(勤儉恭恕). 네 가지 예로 집안을 바르게 했으니(正家以四禮), 관혼상제였다(冠婚喪祭).  [增註] 御, 治也. [增註] 어는 다스림이다(御, 治也). 聖人之書及公服禮器不假, 垣屋什物必堅朴, 曰, 無苟費也. 門巷果木必方列曰, 無苟亂也. 성인의 책과(.. 2025. 1. 2.
[소학집주(小學集註) 선행(善行) 실명륜(實明倫) 6-47] 최효분과 형제의 예의바름 崔孝芬兄弟, 孝義慈厚.(최효분형제 효의자후) 弟孝暐等奉孝芬, 盡恭順之禮, 坐食進退, 孝芬不命則不敢也,(제효위등봉효분 진공순지례 좌식진퇴 효분불명즉불감야) 鷄鳴而起, 且溫顔色, 一錢尺帛, 不入私房, 吉凶有須, 聚對分給.(계명이기 차온안색 일전척금 불입사방 길흉유수 취대분급) 諸婦亦相親愛, 有無共之.(제부역상친애 유무공지)최효분 형제가(崔孝芬兄弟), 효성스럽고(孝) 의리 있고(義) 자애롭고 온후했다(慈厚). 동생 효위 등이(弟孝暐等) 효분을 받드는데(奉孝芬), 공순한 예를 다하고(盡恭順之禮), 앉고, 먹고, 나아가고 물러남에(坐食進退), 효분이 명하지 않으면(孝芬不命則) 감히 하지 않았고(不敢也), 닭이 울면(鷄鳴而) 일어나서(起), 우선(且) 안색을 온화하게 하고(溫顔色), 한 푼의 돈과 한 자의 비단도(.. 2025. 1. 2.
[소학집주(小學集註) 선행(善行) 실명륜(實明倫) 6-46] 도연명이 아들에게 일꾼을 보내며 陶淵明爲彭澤令, 不以家累自隨. 送一力, 給其子, 書曰, 汝旦夕之費, 自給爲難, 今遺此力, 助汝薪水之勞. 此亦人子也. 可善遇之.도연명이(陶淵明) 팽택의 현령이 되어(爲彭澤令), 아내와 자식을(以家累) 자기를 따르게 하지 않았다(不自隨). 일꾼 하나를 보내(送一力), 그 자식에게 주면서(給其子), 편지에서 말하길(書曰), 네가(汝) 아침저녁의(旦夕之) 비용을(費), 스스로 공급하는 것이(自給) 어려울 것이니(爲難), 지금(今) 이 일꾼을 보내서(遺此力), 너의 나무하고 물 긷는 수고를(汝薪水之勞) 돕도로 한다(助). 이 사람도 또한(此亦) 남의 자식이다(人子也). 잘 대우해주어라(可善遇之)라고 했다.  * 家累(가루): 집안 생활(生活)에 관한 근심 걱정, 한집에 거느리고 사는 식구(食口). * 旦夕(단석).. 2025. 1. 2.
[소학집주(小學集註) 선행(善行) 실명륜(實明倫) 6-45] 방통이 자손에게 편안함을 남겨주다 龐公未嘗入城府, 夫妻相敬如賓. 劉表候之. 龐公釋耕於壟上, 而妻子耘於前, 表指而問曰, 先生苦居畎畝而不肯官祿. 後世何以遺子孫乎. 龐公曰, 世人皆遺之以危, 今獨遺之以安. 雖所遺不同, 未爲無所遺也. 表嘆息而去.방공이(龐公) 일찍이(未嘗) 성부에 들어온 적이 없고(入城府), 남편과 아내가(夫妻) 서로 공경하는 것이(相敬) 마치 손님을 대하듯 했다(如賓).유표가(劉表) 그를 방문했을 때(候之), 방공이(龐公) 농상에서(於壟上) 밭 가는 일을 멈추었고(釋耕, 而) 아내와 자식들은(妻子) 앞에서 김 매고 있었는데(耘於前), 유표가 가리키며(表指而) 묻기를(問曰), 선생이(先生) 밭 가운데(畎畝) 고생하고 있으면서(苦居而) 기꺼이 관록을 받지 않으니(不肯官祿), 후세에(後世) 무엇으로(何以) 자손에게 남겨 줄 것인가요(.. 2025. 1. 2.
[소학집주(小學集註) 선행(善行) 실명륜(實明倫) 6-44] 소광이 재산을 탕진한 이유 疏廣爲太子太傳, 上疏乞骸骨, 加賜黃金二十斤, 太子贈五十斤.(소광위태자태부 상소걸해골 가사황금이십근 태자증오십근) 歸鄕里, 日令家供具設酒食, 請族人故舊賓客, 相與娛樂.(귀향리 일령가공구설주식 청족인고구빈객 상여오락) 數問其家, 金餘尙有幾斤, 趣賣以供具.(수문기가 금여상유기근 취매이공구)소광이(疏廣) 태자의 사부가 되었다(爲太子太傳). 글을 올려(上疏) 사직을 청하자(乞骸骨), 황금 20근을(黃金二十斤) 더 내렸고(加賜), 태자가(太子) 50근을 주었다(贈五十斤). 고향으로 돌아와(歸鄕里), 날마다(日) 집안 식구들로 하여금(令家) 술과 음식을 차리게 하고(供具設酒食), 친척과 친구, 손님을 청해서(請族人故舊賓客), 서로 즐겼다(相與娛樂). 자주(數) 집안에 묻기를(問其家), 금이 남은 것이(金餘) 여전히(.. 2024.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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